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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회고록] “탄핵 같은 일 또 있어선 안 되지만 같은 상황이면 ‘방망이’ 잡겠다”

朴 국회의장, “극도의 편파방송이 여론 왜곡…선동성은 毒”

박관용│前 국회의장 정리=김현일 대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29(Sat) 11:00:32 |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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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회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정을 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이 대화와 타협으로 원만히 해소되지 못하고 끝내 탄핵소추라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 입법부 수장으로서 애석하고 참담한 심정 금할 길 없습니다.(중략) 이제 우리 모두 소모적 대립과 갈등을 털어내고, 평상심을 갖고 냉철한 자세로 자기 직분에 임하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합심 단결하여 난국을 헤쳐나간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전통을~.” 박관용 국회의장이 2004년 3월12일 저녁, 탄핵소추와 관련된 일련의 절차를 마무리한 다음 발표한 대국민 호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에 즈음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호소문은 그러나 단 한마디도 전파를 타지 못했다. 밉건 곱건 나라 최고 원로 중의 한 사람이, 더구나 당시 최대 현안인 대통령 탄핵 의사봉을 두드린 주역의 공식 성명이 단 한 줄도 방송되지 않았다. 하루 10시간 가까이 이 관련 방송을 하면서도 그랬다(KBS1 TV의 경우 탄핵 의결 다음 날인 13일, 12시간 동안 뉴스를 송출했고, 탄핵 특집만도 9시간40분. 당일 MBC 뉴스데스크는 밤 10시30분까지 2시간 반 동안 진행). 박 의장은 사태의 중심에 있는 입법부 대표의 대국민 호소를 완전 묵살한 이 한 가지만도 편파방송의 충분한 증거라고 비판한다. 탄핵을 ‘의회 쿠데타’로 매도하는 등의 편파방송엔 핑곗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보도 태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사태 주역의 발표 한 줄도 방송 안 해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던 시각,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의 한 공장을 시찰 중이었다. 3월12일 오후 5시, 노 대통령은 청와대 도착과 동시에 대통령 권한을 정지당했다. 그러나 64일 뒤 헌법재판소의 탄핵 청구 기각 결정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 의장의 유감은 정치권 상대방보다 이를 보도한 언론, 특히 TV방송으로 향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지만 언론은 최소한의 중립적 위치를 견지해야 함에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이 대목을 낱낱이 밝힌 것도 이런 때문이다.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한 고건 총리와 김우식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고 총리에겐 ‘공권력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필요한 부수 조치가 끝났음을 확인하고 국회를 나섰다. 국회를 둘러싼 시위대는 온갖 욕설이 새겨진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탄핵을 비난했다. 한남동 의장 공관이 아닌, 아들 집으로 갔다. 어린 손자에게 ‘너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한 것일까?’라고 물었다. 그가 알아들을 리 없고…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최선은 아니었지만 이 나라 의회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했단다’라고 답했다. ‘그럼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자문(自問)에는 ‘그런 불행한 사태가 없어야 하겠지만 의회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라고 단호하게 자답(自答)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공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때 한 가지를 빠뜨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국민들께 직접 말씀 드리는 것을 잊은 것이다. 차 안에서 문안을 다듬었다. 하지만 방송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런 자세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된다. 본인의 호오(好惡)와 상관없이, 응당 알려야 할 것을 까뭉개는 것은 타기할 행태다. 여권이 작용했겠지만 그렇더라도 심했다. 국회 의결 당일은 그나마 찬반 의사를 고루 듣는 듯했으나 이후는 비판 일변도였다. 

 

사태의 핵심 중 핵심인 내게 그 흔한 인터뷰를 요청해 오는 기자도 없었다. 탄핵 의결 나흘 만인 16일 일본 아사히TV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쇄도하는 인터뷰 신청으로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그에게 ‘당신이 최초’라고 밝히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얼마 뒤의 뉴욕타임스 기자도 어이없어 했다. 국내 TV로는 17일 MBC가 처음이다. 담당 PD는 그들을 못 미더워하는 의장실 공보관에게 ‘말씀하신 것을 모두 수용하고 의도적 편집은 않겠다’고 약속하곤 22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방송된 건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켜 의장으로서 괴롭다’는 딱 한 줄이다. 6초 동안. 탄핵안 처리의 정당성·불가피성을 강조한 대목은 단 한 줄도 방송되지 않았다. 탄핵안 의결을 후회하는 것으로 비치도록 편집한 것이다.”

 

“지상파 3개 방송사 중 SBS가 KBS·MBC보다 나은 편이라지만 말 그대로 ‘상대적’이었다. 탄핵 첫날 SBS는 찬반 양측 각 3명의 패널리스트를 초청, 방담을 진행했다. 탄핵의 법적 타당성 등 논쟁의 핵심 대상 등을 둘러싼 참석자들의 논전도 그런대로 이뤄졌다. 그러나 잠시였다. 탄핵 회오리가 잠잠해진 그해 6월 한국언론학회가 작성한 관련 보고서는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3월12일부터 20일까지 9일간의 탄핵 뉴스를 분석한 결과, 찬성이 반대 인터뷰보다 4배 많았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앵커 멘트에선 탄핵 반대가 27건이었고, 찬성은 SBS 단 1건이 있었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게 언론학회의 발표다.”

정치권력이 자신의 입김이 닿는 방송사에 자신의 사람들을 포진시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활이 걸린 싸움에서 가동할 수 있는 최대한을 동원하는 것 또한 능히 짐작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한 달라야 했는데 너무도 다르지 않았다는 게 박 의장의 탄식이다.

 

 

憲裁, 위헌·위법이지만 탄핵할 정도 아니다

 

사실 방송사들의 이런 일방적 보도 배경엔 배후 정치권력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방송사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당시 여론이 그래서다. 탄핵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반대여론이 80% 가까웠다. 국회의 탄핵 의결 전 노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의견이 60~70%였고 노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엇비슷했으나 ‘탄핵은 안 된다’ 역시 비슷한 수치였다. 한마디로 ‘잘못은 했지만 탄핵은 아니다’가 국민 다수의 생각인 셈이다. 그런데 이 미묘한 상황에서 야당이 탄핵을 감행했고, 그 결과는 역풍(逆風)이었다. 탄핵 전보다 훨씬 많은 국민이 ‘반대’ 대열에 가세한 것이다. ‘하등 나을 게 없는 국회가, 국회의원이 대통령을 감히~’라는 감성(感性)의 외침이 충격에 휩싸인 국민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차떼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 시비 등 탄핵 직전의 대형 사건사고에 치를 떨던 일반 국민들로선 그럴 만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시위가 연일 계속됐고 전국으로 번져간 게 이상할 게 없다. “대통령의 그간 언행은 ‘아니었다’. 불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탄핵은 ‘정말 아니었다’. 남 구린 것만 탓하는 행태가 괘씸했다.” 이렇게 말하는 보수진영 사람들이 상당했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할 영남에서 열린당이 한나라당을 10% 이상으로 제치고, 50대 이상의 중·노년층이 열린당 지지를 외친 게 우연이 아니다.

 

5월14일 오전10시, 헌법재판소는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했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 이상이 찬성하지 않았고, ‘위헌·위법 행위가 있었지만 탄핵을 할 정도는 아니다’는 게 기각 이유였다. 헌재에서 변론 다툼이 한창일 때 치러진 4·15 총선에서 열린당이 압승하지 않았더라면, 야당이 승리했더라면 헌재의 결정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설(假說)이 없지 않으나 다 부질없는 얘기다. 

 

 

헌법재판소가 기각(棄却​)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청구

 

2004년 3월12일 오후 3시, 국회의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의결서’가 헌법재판소(헌재)에 접수됐다. 청와대에 공식 통보하기 2시간 전이다. 헌재는 여기에 ‘2004.5.14. 2004헌나1’이라는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사건은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접수 18일 만인 3월30일 첫 심리가 진행됐다. 이날의 1차 변론에 이어 4월30일 제7차 변론을 마지막으로 양측의 날 선 공방이 거듭됐다. 그리고 5월14일 오전 10시, 헌재의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이 사건 심판청구를 기각(棄却)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그 후폭풍이 한국사회 전체를 휩쓸었던 ‘탄핵 드라마’ 제2막은 이 한마디로 정리됐다. 탄핵소추서 접수 64일 만이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에서 여당을 지지한 발언 등은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신임투표 제안과 공직선거법 폄하 등은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탄핵사유의 조사가 부족했다’거나 ‘탄핵소추의 적법 절차를 위반했다’는 반대주장은 ‘이유 없다’고 물리쳤다.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2004년 5월14일의 헌법재판소.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 및 헌재 접수로부터 64일, 4·15 총선 29일 후다. ©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대통령 당선자 시절의 부정 의혹이나 측근들의 비리, 불성실한 국정 수행이나 경제 파탄 등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이 부분은 인정하지 않았다. ‘현행 선거법 폄하 발언은 법률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는 것’ ‘국민 앞에서 현행법의 정당성과 규범력을 문제 삼는 행위는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국민들에게 제안한 것은 그 자체로서 헌법 제72조에 반하는 것으로 헌법을 실현하고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의무를 위반한 것’ ‘국민투표제도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등 헌재 선고가 있던 5월14일, 소추 사유에 대한 결정문의 초반만 들으면 탄핵은 기정사실이 된 듯했다. 

 

그러나 주문(主文)은 정반대였다. 헌재는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위해선 그 중대성에 비춰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구성해야 하므로 ‘기각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행위가 수동적·소극적인 위반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헌재는 “문리적(文理的)으로는 탄핵사유가 인정되는 모든 경우에 자동적으로 파면결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직무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위반을 이유로 파면을 해야 한다면, 이는 피청구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헌법적 징벌의 요청 즉, 법익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덧붙였다.

 

 국회가 의결한 탄핵소추안이 송달된 지 180일 내에 헌재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그 자체에 법적 하자는 없다지만 권한대행 체제라는 대통령 부재(不在)의 국가비상상황을 장시간 방치하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논란이 인 것은 당연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진퇴를 가름하는 결정이므로 모든 과정이 엄정·엄밀해야 한다는, 누구도 부인 못할 대목과는 별개로 통치권의 진공(眞空)사태를 장기간 지속시키는 것은 심각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4년 탄핵 정국은 국회의 탄핵 의결 1개월여 뒤 17대 총선을 치러야 했기에 헌재의 결정 시점은 현실정치와 어우러져 더욱 민감했었다. 4·15 총선 전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게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임은 물론, 선거 전후에 따라 헌재 스스로의 탄핵 결정 자체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주지하듯이 ‘탄핵 역풍’으로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대패했다.

 

아무튼 이 같은 후유증 등을 논외로 하더라도 2004년 탄핵 사태는 그 자체만으로도 숱한 숙제를 남겼다. 탄핵의 당위성이라는 원천적 의문에서부터 헌재 결정 타당성과 방법·시한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산적해 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이념과 성향이 비교적 선명한 재판관들로 구성된 헌재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을 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데 따른 점도 크게 작용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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