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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음식의 샤머니즘...신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믿는 대로 먹는다…음식 속 신앙체계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1.17(Thu) 15:44:21 |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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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의 몸과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가 나고 자란 땅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이 사자성어 자체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불이(不二)’라는 불교 핵심 사상의 확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세상 만물은 겉보기에는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은 모두 이어져 있어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런 믿음은 불가에서 행하는 탁발수행에 잘 드러난다. ‘탁발(托鉢)’이라는 한자 번역어는 ‘식기를 받쳐 든다’는 뜻의 글자 조합이지만, 그 어원인 브라만어는 ‘핀다파타(pindapa-ta)’이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승려의 수행에서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마을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바리때(식기)를 공손히 받쳐 들어 거기 담겨지는 음식이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신성한 것으로 받들어, 조금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엉터리 스님들이 늘어 조계종에서 금지한 지 꽤 되었지만, 원래 이 수행의 뜻은 음식을 통해 하나 됨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우리나라 가정에서 제사음식을 장만할 때 ‘정성’이 강조됐다. © 연합뉴스


신을 위한 음식 장만의 핵심은 ‘정성’

 

기독교에서도 음식은 종교적인 삶을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구약성서의 세 번째 경전인 ‘레위기’는 초기 기독교도들이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잘 보여주는데, 특히 중요하게 강조된 것이 ‘제의(祭儀)의 음식(Food for Ritual)’이다.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희생의 동물을 어떻게 죽이고 어떻게 처리해서 제단에 올려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이 쓰이는 형용사가 ‘깨끗한’과 ‘더러운’이다. 하느님께 바치는 음식은 더러운 요소가 전혀 없이, 정성을 기울여 깨끗하게 장만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깨끗한 음식을 먹어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음식을 제대로 갖추라는 가르침을 그렇게 세세히 반복한 것은, 올바른 음식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정성’은 신적인 존재를 위한 음식을 장만하는 데 핵심 키워드이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한두 세대 이전만 해도 우리나라 가정에서 제사음식을 장만할 때 ‘정성’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었다.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절대 안 되는 것은 기본이다. 조상이 오셨을 때 제사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으면 ‘뱀’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믿음도 전해진다. 제사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은 조상에게 바쳐져 제사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입을 대서도 안 되었다. 옛날 풍습이 엿보이는 글 속에서, 평소 잘 먹지 못하던 아이들이 제삿날 음식 장만하는 냄새에 주린 배를 안고 목이 빠지게 제사 끝나기를 기다리는 대목들이 쉽게 발견된다. 옛날 제사는 자정에 시작해서 새벽 두어 시나 되어야 끝났으니, 그런 기다림이 고단했을 만도 하다.

 

때론 ‘신적 영역을 위한 정성의 마음’이 상당히 세속화되기도 한다. ‘심포지엄(symposium)’이라는 단어는 요즘 학술행사에 많이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연회(banquet)’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나온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엄은 두 파트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음식을 먹는 과정이고, 두 번째는 술을 마시는 과정이다. 각 과정은 신에 대한 감사 의례로 시작된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와 풍성한 먹거리를 주는 땅의 여신 데메테르, 혹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 그때그때 관련된 신들에게 감사의 시를 올리고, 식사가 끝난 후 식탁이 정리되고 술상이 차려지면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감사의 시를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헌정(獻呈)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진다. 이 심포지엄은 고대 그리스 사회의 남성 엘리트들이 누리던 향연 문화였는데, 신들에게 올리는 제례가 세속적으로 변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으로 유명한 서기 100년 전후의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바로 그 책에 ‘위대한 미트라다테스’라고 불렸던 폰투스 왕국의 왕에 대한 얘기도 실었다. 당시 스파르타에는 돼지의 고기와 피, 콩 등을 섞어서 뭉근히 끓여낸 ‘검은 죽’이라는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했는데, 폰투스 왕 미트라다테스는 이걸 꼭 맛보고 싶어 스파르타 출신의 요리사를 비싼 돈으로 고용했다. 막상 요리사가 바친 요리를 먹어보고 그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왕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 죽을 만들기 전에 에우로타스 강에서 목욕재계하고 신들에게 기도했는가?” 신과의 신성한 관계가 음식의 질을 바꾼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음식과 믿음에 관한 관행은 주로 겨울철에

 

음식으로 신(神)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다른 신앙체계에서도 발견된다. 얼마 전 지난 ‘핼러윈데이’ 같은 것도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그냥 하루쯤 일상의 지루함을 깨주는 테마 파티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었지만, 이 이벤트의 기원은 ‘사마인(Samhain)’이라는 고대 켈트족(영국과 인근 섬들에 살았던 고대의 원주민)의 중요한 명절이었다. 그 날짜인 10월31일과 11월1일은 가축을 들에서 거두어 외양간으로 들이고 수확한 곡물과 채소들을 갈무리해서 저장하기를 마친 때다.

 

일 년 중에서 가장 음식이 풍부해지는 이때,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영혼들을 챙길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돌아다니는데, 잘 대접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고, 그러지 않으면 화를 당한다는 믿음과 행동이 생겨나게 됐다. 사마인 전날이면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유령이나 해골로 분장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과자 같은 특별한 음식을 얻어먹는 풍습이다. 이렇게 하면 모처럼 풍성해진 음식으로 죽은 이들의 영혼도 챙기고 가난한 이웃도 도와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풍습은 ‘영혼 케이크(soul cake)’라는 모습으로 남아 아직도 유럽의 가톨릭교에서 일부 지켜지고 있으며, 또 미국 같은 데서 핼러윈데이에 아이들이 이웃을 다니며 과자를 얻는 ‘트릭-오어-트릿(trick-or-treat·대접하지 않으면 나쁜 장난을 치겠다는 뜻)’ 같은 형태로도 남아 있다. 유럽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멕시코나 남미의 국가들에도 비슷한 풍습이, 각 사회의 토착신앙과 살짝 결합한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대보름의 ‘헌식(獻食)’ 풍습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에 속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연중 따뜻한 기후가 유지되는 토양에서 성장한 불교와 달리, 유럽과 동아시아같이 사계절 구분이 뚜렷한 지역의 종교 및 신앙체계에서, 음식과 믿음에 관한 관행은 주로 겨울철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 년 내 먹고 살 걸 장만하느라고 바빴다가, 추수가 끝난 후 모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 것일까. 아무튼 겨울은 예나 지금이나 내면이 성숙해질 수 있는 계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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