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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1등 감독 만들어준 선수들이 고맙다”

[인터뷰] 편견 깨고 승부사 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여성 감독 첫 프로스포츠 정규리그 우승

김흥순 아시아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8(Sat) 15:29:58 | 14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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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배구에서 흥국생명의 시대가 열렸다. 흥국생명은 3월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홈경기에서 3대0으로 이겨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2007~08 시즌 이후 9시즌 만에, 통산 네 번째 정상에 올랐다.

 

여자부에서 가장 많은 우승 횟수다. 축포가 터지고 선수단이 펄쩍 뛰며 기뻐할 때, 박미희 감독(54)은 코트 한쪽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는 “선수들이 1등 감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감정을 억누르느라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 여성이라는 수식어와 은연중에 겪었던 편견을 이겨냈다는 성취감 때문이리라. 박 감독은 배구와 야구, 축구, 농구 등 국내 4대 프로스포츠에서 유일한 현역 여성 사령탑이다. 2014년 5월7일 부임해 3년째 팀을 지휘하고 있다. 배구에서는 2010~11시즌 GS칼텍스를 이끌었던 조혜정 전 감독(64)에 이어 두 번째다.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사령탑이 우승까지 달성하기는 박 감독이 처음이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프로스포츠에서 우승을 이끈 여성 사령탑이 됐다. 박 감독은 “1등 감독 만들어줘 고맙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 연합뉴스


여성만의 장점으로 편견을 깨다

 

박 감독은 부임할 때부터 ‘여성’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주목받았다. 그만큼 스포츠계에 여성 지도자가 설 자리는 좁다. 그가 선수단을 통솔하고, 팀을 꾸려나갈 구상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주위에서 ‘언니 리더십’이나 ‘이모 리더십’ 같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성별과 무관하게 지도자로서 동등한 경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남성 중심의 지도 방식을 깨는 일은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부임 초에는 ‘여성 감독에게 져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했다. 남성 코치들을 통솔하면서 팀을 이끄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허심탄회하게 술자리를 같이하거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그런 부분에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어려움이 있을 때 고민을 토로할 상대도 마땅치 않았다. 비시즌 때 가끔 골프를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지만 훈련과 경기가 한창일 때는 이마저도 엄두를 낼 수 없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어려움 때문일까. 박 감독 이전의 여성 사령탑들은 프로무대에서 고전했다. 선배인 조혜정 전 감독은 4승20패를 기록하고 한 시즌 만에 물러났다. 다른 종목에서도 여성 감독의 성공사례는 드물다. 여자프로농구(WKBL) 첫 여성 지도자인 이옥자 감독(65)은 2012년 KDB생명에서 13승22패를 기록하고 1년 만에 사퇴했다. 실업무대를 포함해 국내 스포츠 여성 감독 1호인 농구 국가대표 출신 박신자 전 감독(76)도 1982년 신용보증기금 창단 감독에 내정됐으나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박 감독은 동성(同姓) 문화를 여성 지도자가 고전하는 원인으로 꼽았다.

 

“스포츠에서 남성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는 자연스럽지만 여자 선수들은 여성 감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만큼 신뢰감이 부족하고 부담스럽게 느낀다. 거리감을 좁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박 감독은 소통이 해답이라고 믿는다. 지도자와 선수 이전에 후배라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여자 선수들이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먼저 인지하고 면담하거나 마음가짐을 꼼꼼하게 짚어주면서 동기부여를 한다. 자유로운 스킨십도 여성 감독의 ‘특권’이다. 훈련을 쉴 때는 선수들과 볼링을 치거나 커피를 즐기며 대화를 하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주장 김나희(28)는 “선수들 표정만 봐도 기분을 잘 안다. 사소한 부분을 잘 챙기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심어준다”고 했다.

 

기술적으로는 “거미줄처럼 끈끈한 수비와 매 세트 20점 이후 뒷심을 살리는 경기 운영”을 강조한다. 이를 발판으로 2011~12시즌부터 3년 동안 5~6위로 처진 팀을 반등시켰다. 부임 첫해 4위에 이어 지난 시즌에는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챔피언결정전에 나간 2010~11시즌 이후 5년 만이었다. 정규리그 중반까지 1위를 달리다가 외국인 공격수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고비도 있었다. 올해는 이 약점을 지웠다. 1~2라운드 10경기를 2위(7승3패)로 출발한 뒤 3~4라운드를 4승1패로 마쳐 독주 체제를 갖췄고, 5라운드도 3승2패로 버텨냈다. IBK기업은행과 잠시 선두 경쟁을 했을 뿐, 3위 현대건설(승점 41)을 18점 차로 앞서며 순항을 계속했다. 박 감독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예상을 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고 했다.

 

 

흥국생명은 3월7일 KGC인삼공사를 꺾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흥국생명의 우승은 9시즌 만이다. © 연합뉴스

“물러날 시점, 내가 정하고 싶다”

 

그는 선수 시절 화려했다. 광주여상 3학년 때인 1981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고, 이듬해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좌우 공격수는 물론 센터와 세터까지 병행하며 ‘만능선수’로 통했다. 실업배구 미도파에 입단해서는 데뷔 첫해 신인상(1983년)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MVP) 6회, 인기선수상 4회, 베스트 6에 다섯 차례 이름을 올렸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넓은 시야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영리한 플레이로 ‘코트의 여우’라는 별명도 얻었다.

 

코치 경험도 없이 곧바로 사령탑에 올랐으나 두드러진 이력과 재능을 살려 기어이 ‘우승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더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딪쳤지만 앞으로는 여성 지도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선수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선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통합우승을 바라본다.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다. 2·3위 팀이 대결하는 플레이오프 승자와 3월24일부터 5전3승제로 격돌한다. 챔프전 우승은 2008~09시즌 이후 명맥이 끊겼다. 박 감독은 “우리 선수들한테 최고의 목표를 제시해 주고 싶다”고 했다. 여성 사령탑으로서 포부도 유효하다. 그는 “감독을 시작하면서 정한 꿈이 있다”고 했다. 밝히기는 어렵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언제까지 감독을 하고, 어느 시점에 물러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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