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권력 ‘넘버2’ 혈전 군부 장악에 사활 건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0 09:36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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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간 암투 첩보

북한 권력 핵심부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노동당과 군부 고위 인사들이 권력투쟁이나 이권다툼 형태의 갈등을 빚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포착되고 있다는 게 대북 정보 당국의 전언이다. 특히 북한 권력의 ‘넘버2’ 그룹으로 불릴 만한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간에 사활을 건 암투가 진행 중이라는 첩보가 줄을 잇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김정은 체제 내부의 균열상으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다.

 

평양 파워엘리트 중심부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된 건 지난 1월 중순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몰락하면서다. 그는 김정은 체제 출범 첫해인 2012년 정보기구인 국가안전보위부 부장을 맡아 무소불위의 힘을 드러냈다. 그런데 대장(별 넷)에서 소장(별 하나)으로 강등되고 가택에 연금되는 사실상의 숙청을 당했다. 부부장급 부하들이 이미 공개 처형된 것으로 미뤄볼 때 재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2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처형하는 데 일등공신이던 김원홍이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것이다.

 

2016년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5주기를 맞아 김정은 노동장 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 및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앞줄 오른쪽 끝)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보위성 내세워 전횡 일삼던 김원홍 ‘숙청’

 

이런 김원홍의 몰락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배후로 최룡해 부위원장이 지목된다. 보위성이란 막강한 공안통치 기관을 장악한 김원홍을 못마땅하게 여긴 최룡해가 노동당 조직지도부 등에 포진한 자신의 심복들을 내세워 보위성 검열과 당 생활지도를 추진했다는 것이다. 앞서 보위성은 당 중앙위 과장급 인사를 체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숨지게 한 일로 빌미를 줬다. 간부들의 평가와 보직 등을 관장해 ‘노동당 속의 당’으로 불리는 조직지도부는 이를 문제 삼아 보위부의 전횡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은이 격노해 김원홍을 숙청해 버렸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김원홍이 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와도 대립각을 세우는 무리수를 둬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도 있다. 보위성 조직이 군부 관련 현안에 지나치게 개입하려 하자 황병서가 격분해 제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총정치국은 군에 대한 ‘당적(黨的) 통제’를 책임진 기관으로 군부 쪽에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 결국 황병서는 조경철 보위사령관(우리의 기무사령관에 해당)을 동원했고, “김원홍이 군단장·사단장급 이상 보직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하는지 24시간 철저히 감시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한다.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서로 간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김원홍의 전횡이 작용했다는 진단이다. 김정은 정권 초기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수장에 오른 김원홍은 당시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부장이던 황병서와 사전 협의도 없이 김정은에게 직보를 올리는 건 물론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작전국 간부 수십 명을 소환하는 등 무리수로 갈등을 키워 나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북한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황병서와 김원홍의 관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황병서와 김원홍 사이에 끼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다 화를 당한 사람도 있다. 북한 대남총책인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김원홍의 아들 김철 청봉무역 사장에게 이권을 챙겨주는 것으로 환심을 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달가울 리 없던 황병서는 김영철이 자기의 기관을 내세워 외화벌이에 욕심을 내고 월권행위를 한 점 등을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김영철은 결국 지난해 일정기간 혁명화 교육을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황천길 입구까지 다녀온 김영철은 황병서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벼르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보위성을 내세워 전횡을 일삼던 김원홍이 전면에서 사라지면서 최룡해-황병서 둘 사이의 권력 갈등은 윤곽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양상이다. 겉으로만 보면 최룡해는 노동당을, 황병서는 군부를 각각 관장하며 권력분점을 잘 이뤄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갈등과 대립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 출범 직후인 2012년 4월 2인자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앉았다. 하지만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그를 견제했던 황병서는 “최룡해가 군부 내에 자신의 인맥을 구축해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해임된 최룡해의 뒤를 이어 총정치국장에 오른 게 바로 황병서다.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은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황병서, 최룡해보다 2인자에 더 가까워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황병서가 최룡해보다 2인자 자리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서 노동당과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한 상태란 점에서다. 2014년 5월 군 총정치국장에 오른 이후 3년 가까이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대목도 황병서가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롤러코스터 타듯 임명과 해임, 강등과 숙청을 반복해 온 북한 권력 핵심의 모습에 비춰봐도 탄탄한 입지다.

 

하지만 최룡해 또한 만만치 않은 존재다. 이른바 ‘빨치산 2세’로 북한 정권 수립에 일정한 지분을 가진 집안이란 점이 강점이다. 그의 아버지 최현(1982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을 북한 관영매체들은 아직도 “수령에 대한 진짜배기 충신”으로 찬양하며 치켜세운다. 최룡해가 근로단체 담당 국무위원급으로 힘이 많이 빠진 상태지만 어떤 식으로든 재기를 노릴 게 분명하다.

 

둘의 권력 갈등은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누가 더 확보하느냐로 압축된다. 그런데 서로 상대를 무너뜨릴 비장의 카드로 ‘군부 쿠데타’를 꼽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황병서는 ‘최룡해 세력의 무장 반발’을 우려하는 비밀보고서를 김정은에게 보냈다. 빨치산 후손으로 군부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반격을 노리는 최룡해도 황병서가 군부 내 정치·군사·보위 부문 장성들을 묶어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김정은 왕국에서 ‘넘버2’ 자리를 둘러싼 권력암투가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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