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그의 노랫말에 대중이 울고 웃었다
  • 정민아 프리랜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4 10:53
  • 호수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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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 연정》 《네 박자》 등의 작사가 김동찬, 50주년 기념공연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현철의 《봉선화 연정》),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송대관의 《네 박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려봤을 법한 ‘국민가요’들이다. 이 곡들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입에 착착 감기면서도 깊은 공감을 주는 노랫말 덕분이다.

 

《네 박자》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신토불이》 《둥지》 등. 이 수많은 히트곡의 노랫말은 작사가이자 작곡가인 김동찬이 만들었다. 그가 올해로 데뷔 50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공연인 ‘김동찬 가요인생 50년’이 3월22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KBS홀에서 열린다. ‘국민 사회자’ 송해가 진행을 맡고, 남진·현철·김국환·배일호·김혜연 등 그동안 그의 작품으로 인연을 맺었던 가수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4월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작사가로는 드물게 ‘김동찬편’을 방송하기도 했다. 손자뻘 되는 아이돌 가수들이 그가 만든 전통가요를 열과 성을 다해 부르는 모습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작사가로 5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 것 또한 국내 가요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다.

 

스무 살 때인 1968년 작사한 《마지막 데이트》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딘 김동찬은 지금까지 대중가요 500여 곡을 작사·작곡했다. 놀랍게도 그는 ‘전업 작사가’가 아니었다. KBS 음향효과 감독으로서 수십 년을 일하는 틈틈이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어온 것.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대중가요뿐 아니라 가곡·팝페라의 작곡·작사가로까지 범위를 넓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공연을 앞둔 김동찬을 서울 마포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 지난 50년의 음악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사가 김동찬 © 시사저널 최준필

음향효과 감독에 가곡·팝페라 작곡·작사까지

 

“제가 인복이 참 많습니다. 늘 주변에 좋은 인연이 많았어요. 그분들 덕분에 저의 지난 반세기 가요인생이 행복했습니다.”

가요계 데뷔 50년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뜸 자신의 인복을 자랑했다. 사실 그가 품어온 오랜 꿈은 ‘가수’였다. 하지만 가수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가수가 되겠다고 고향을 떠나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그는 현실의 벽에 부닥쳐 꿈을 접고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들어간 첫 직장이 영화 스튜디오인 한양녹음실. 음향효과 담당으로 일하다 보니 당대 최고로 손꼽히던 음악감독과 작곡가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들과 유대관계를 쌓으며 김동찬은 어깨너머로 배운 작곡을 혼자 공부해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래가 있어서 꿈이 생겼고 행복했으니까요. 쉽게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평소 습작한 곡들을 작곡가 정민섭씨에게 보여줬어요. 그분이 ‘작곡은 더 공부해야겠는데, 가사는 참 잘 쓴다’고 격려해 주셨죠. 그렇게 그분이 만든 곡에 가사를 붙여 《마지막 데이트》를 처음 발표하게 됐지요.”

이후 KBS에 입사해 음향효과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도 작사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싶어 작곡도 꾸준히 했다. 하춘화의 《하여간》, 남진의 《상사화》, 김국환의 《달래강》 등 그가 작곡해 발표한 곡도 무수히 많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정받는 음향감독이었다. 《용의 눈물》 《왕건》 《첫사랑》 《전설의 고향》 등 수많은 드라마의 음향효과를 담당하며 대내외적으로 많은 상을 받았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한 번에 해낼 수 있었을까.

 

“음악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즐기면서 했어요. 일상 속 모든 것이 소재가 됐지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혹은 여행 중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봇물이 터지듯 가사가 나왔지요. 물론 가사나 곡이 안 써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과감히 일을 접고 놀러 다녔지요.”

김동찬이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무엇일까. 그는 《봉선화 연정》을 꼽으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곡”이라고 말했다. 이 곡이 크게 뜨면서 금전적인 기반이 마련됐고, 다른 많은 히트곡들을 더 쓰게 된 연결고리가 된 것. 《봉선화 연정》에는 김동찬의 학창 시절 풋풋한 추억이 담겨 있다. 사춘기 때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을 짝사랑했는데, 그때의 설레었던 마음을 시골에 많이 피어 있는 봉선화와 연결시켰다고. 그는 “사춘기는 봉선화 씨앗처럼 손대면 톡 터질 것 같은 때 아니냐”며 웃었다.

 

송대관의 《네 박자》는 맨 처음에 붙인 제목이 ‘뽕짝’이었다. 김동찬은 “일부 사람들 중에선 대중가요를 ‘뽕짝’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너나 나나 똑같은 인생인데 잘난 척하냐’는 반항적인 의미로 일부러 곡 제목을 그렇게 붙였다”면서 “하지만 방송국 PD들이 ‘너무 심하다’고 만류해 《네 박자》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 KBS캡쳐

“대중가요, 우리네 인생과 닮아”

 

이렇듯 일상에 바탕을 두고 추억과 사랑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그의 노랫말 속에는 서민의 애환과 사람의 향기가 있다. 김동찬은 “가요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고 말했다.

 

“모든 노래는 마디로 이루어져 있지요. 우리 인생이 10대, 20대, 30대로 한 고개씩 넘어가는 것과 똑같아요. 가요의 ‘쿵짝’ 리듬은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 같아요. 달리기를 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면 디스코 리듬, 천천히 걸으면 슬로록 리듬이 되지요.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입니다.”

3월22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50주년 공연은 이름 그대로 김동찬의 가요인생 50년을 조명하는 자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공연의 전체 제작비를 자비로 충당해 관객들에게 무료로 공개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에게는 그동안의 히트곡들을 모아 김동찬이 직접 부른 기념음반도 제공할 예정이다. 그는 “제가 만든 곡을 사랑해 주고 많이 불러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김동찬 자신이 만든 신곡을 직접 불러 대중에게 첫 공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평생을 함께해 준 아내에게 바치는 곡인 《참 좋다》와 봄날의 아련한 감정을 노래한 《춘애》 등 2곡이다. 다음은 《춘애》의 가사 일부.

 

“골짜기 가르마 타고, 진달래 머리핀 꽂고, 등성이 타고 오는 봄바람은 뉘 가슴 흔들려는가. 언제나 그리움은 아지랑이로 피고, 겨우내 얼어붙은 내 가슴은 냇물로 흘러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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