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채권’ 위에 쌓은 CJ그룹 경영승계 전략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 13:42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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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家 후계자들-(8) CJ그룹] 이재현 회장 자녀, 현금화된 ‘무기명 채권’으로 계열사 지분 매입

 

‘상속·증여세율이 50%에 달한다. 별도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희석돼 안정적으로 소유·경영권을 승계할 수 없다.’ 2005년 CJ그룹이 작성한 내부문건의 일부다. 2013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 문건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며 세금을 피하기 위한 계획이 담겼다. 당시 재산 승계의 대상이 현재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이 회장의 딸 이경후(33) CJ그룹 상무와 아들 이선호(28) CJ제일제당 과장이다.

 

당시 CJ의 승계계획은 이랬다. CJ의 홍콩 지주사 CJ글로벌홀딩스가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한다. 이후 CJ 비자금으로 이를 이 회장 자녀 명의로 사둔다. 그리고 CJ글로벌홀딩스를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 문건대로라면, 홍콩의 CJ글로벌홀딩스는 당시 CJ 상속계획의 정점에 있는 회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06년 CJ는 홍콩에 CJ글로벌홀딩스를 만들고, 이를 2008년 홍콩 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검찰은 2013년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CJ를 수사하면서 CJ글로벌홀딩스에 주목한다. 이 회사의 대표이자 이 회장 측근인 신아무개 부사장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신 부사장은 파기환송심 끝에 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과 벌금 223억원을 확정 선고받았다.

 

올해 경영 복귀가 예상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

 

 

CJ “10여 년 전 승계 문건은 아이디어 차원”

 

당시 검찰은 신 부사장이 뇌물 공여에도 관여한 것으로 파악했다. ‘승계 문건’이 작성된 1년 후인 2006년 7월과 10월에 신 부사장이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30만 달러(약 3억3600만원)를 전달한다. ‘CJ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하면서다. 현재도 CJ글로벌홀딩스는 CJ제일제당이 100% 지분을 보유한 홍콩의 자회사로 남아 있다. 다만 이 회사가 2005년의 내부문건대로 상장됐거나 BW나 CB를 저가에 발행했는지는 검찰수사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CJ글로벌홀딩스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진 않다. CJ 측은 “CJ글로벌홀딩스가 BW나 CB를 발행하지 않았고, 승계 문건이 있었다면 아이디어 차원이었을 것이다.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신 부사장은 당시 CJ글로벌홀딩스 대표라는 직책을 맡았을 뿐, CJ글로벌홀딩스 자체가 수사 대상이 된 적은 없다”고 설명한다.

 

CJ 오너 일가 4세(범삼성가 이병철 창업주 기준) 승계자들이 공식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취득한 것은 아버지 이재현 회장에게 500억원대 재산을 물려받은 이후다. 검찰에 따르면, ‘세무조사 무마 청탁’ 사건이 발생한 2006년은 이경후 상무와 이선호 과장이 이재현 회장에게 500억원대 무기명 채권을 받은 시기다. 세법상 무기명 채권은 자금 출처 조사와 증여세 부과를 면제받는다.이 때문에 당시 CJ 측이 증여 사실을 시인했음에도 이 사안은 검찰수사 대상이 아니었다. 세무 업계 관계자는 “무기명 채권을 현금화한 증여는 세금이나 출처 조사가 면제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금액이 큰 데다 검찰수사에 연루된 적이 있는 자금이 법률적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당시 세무 당국의 ‘소극적 대응’이 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재현 회장의 자녀는 2006년 이후 BW와 CB가 아닌 그룹 계열사의 ‘공식 지분’을 취득하기 시작한다. 매입 자금은 이 회장에게 증여받은 500억원이 종잣돈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선이다. 아들인 이선호 과장은 2006년 설립된 씨앤아이레저산업 지분을 38% 매입한다. 2010년 이후 이 과장은 CJ파워캐스트 지분 24%를 매입하고, 이후 CJ E&M 지분 0.68%도 보유하게 된다. 딸 이경후 상무도 마찬가지로 2006년 씨앤아이레저산업 지분 20%를 사들이고, 이 회장에게서 2010년 CJ파워캐스트 지분 12%도 매입한다. CJ 지분 0.13%도 보유하게 됐다. 계열사 지분 이외에 이 회장 자녀는 2010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170억원을 주고 빌딩도 사들였다.

 

ⓒ 시사저널 미술팀

 

 

오너 후계자들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늘려

 

특히 이 회장 자녀의 지분율이 높은 곳은 부동산개발회사 씨앤아이레저산업이다. 지난해 12월 이 회장이 이 회사 보유 지분 42.1%를 이선호 과장과 이경후 상무, 그리고 이 상무의 남편인 정종환 CJ 상무에게 증여했다. 현재 이 과장과 이 상무, 정 상무의 지분 총합은 90%에 달한다. 이 회사는 2015년 말 건설 사업을 CJ건설에 양도하기 전까지 계열사 내부거래율이 90%가 넘었다. 이 때문에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4년 들어 급속도로 CJ 승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회사는 CJ올리브네트웍스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2014년 12월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CJ시스템즈와 화장품·미용용품 유통 계열사 CJ올리브영이 합병해 탄생한 곳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 탄생과 함께 이선호 과장은 이 회장에게서 이 회사 지분 11.3%를 증여받았다. 이후 해마다 오너 후계자들은 CJ올리브네트웍스에 대한 지분을 늘려갔다. 2015년 12월 이 회장은 지분 11.35%를 두 자녀와 조카에게 물려줬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오너 지분 증가와 함께 회사의 ‘덩치 키우기’도 한창이다. CJ파워캐스트는 지난해 10월 이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 CJ파워캐스트 이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흡수합병했다. 한 달 뒤 CJ올리브네트웍스는 CJ파워캐스트를 흡수합병했다. 2015년 기준 재산커뮤니케이션즈의 자산은 957억원, CJ파워캐스트의 자산은 738억원이었다. 그만큼 CJ올리브네트웍스의 몸집이 커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오너 일가는 CJ파워캐스트·재산커뮤니케이션즈 지분을 CJ올리브네트웍스 주식으로 바꿔 받았다. 이선호 과장과 이경후 상무의 지분이 각각 17.97%와 6.91%로 늘었다. 이재환 이사는 이 회사 지분 14.83%를 보유하게 됐다. CJ올리브네트웍스 전체에서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44.07%로 증가한 셈이다. 아울러 CJ그룹 차원에서도 CJ올리브네트웍스의 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15년 기준 CJ올리브네트웍스의 매출 1조1422억원 가운데 28%에 해당하는 3197억원이 CJ 계열사 내부거래를 통해 나왔다.

 

업계에서는 CJ 오너 일가가 보유한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이 향후 CJ 의결권을 확보할 핵심 재원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를 상장하거나, 지주회사인 CJ와 합병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이 경우 CJ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가 크게 늘 가능성이 높다. 이 지분 가치를 통해 세금을 줄여 승계의 편의를 높일 수 있다. 다만 현재 거론되는 CJ올리브네트웍스의 상장·합병은 빨라도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전망도 있다. 현행 세법은 비상장 주식 증여 이후 5년 이전에 합병·상장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익분에 대해 최대 50%의 증여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2014~15년에 주로 이뤄진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 증여 이후 최소 5년은 합병·상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2016년 12월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국회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했다. © 연합뉴스

 

 

“이재현 회장, 올 상반기 내 복귀한다”

 

게다가 재계에서는 지분승계가 진행된다 해도 당장 이경후 상무와 이선호 과장의 경영 주도가 단기간에 이뤄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희귀병을 앓았던 이재현 회장의 건강이 최근 호전돼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탓이다. CJ그룹 관계자는 “CJ 임원 인사를 보면 해외사업부문 상무 승진자가 32명 가운데 12명이다. 이는 해외사업과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얘기다. 회사 내에서도 이재현 회장의 복귀 준비 차원으로 해석한다. 이 회장이 올해 상반기 복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분승계, 이재현 회장 복귀 등 변화를 앞둔 CJ에는 지금 당장 닥치고 있는 악재가 산적해 있다. 우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연루 의혹이다. 당초 CJ그룹은 이 사건 속 ‘피해자’로 비춰졌다. 2013년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손경식 CJ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 뜻이니 이미경 CJ 부회장이 자리를 비켜 달라”고 말한 정황이 드러났다. 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통해 CJ를 압박하려 한 사실도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수첩을 통해 공개됐다.

 

하지만 이후 CJ가 청와대와 ‘사면 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통해 CJ 측이 청와대에 특가법상 횡령·배임 등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 회장의 사면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했다. 2015년 말 CJ는 미르·K스포츠 재단에 13억원을 냈고, 지난해 5월 정부 문화사업인 K컬처밸리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점 또한 ‘사면 거래’ 의혹을 키웠다. 이 의혹을 규명하는 검찰수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악재 속에도 CJ의 사업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CJ그룹 전체 실적이 31조원에 달한다는 증권 업계 추정치가 나오고 있다. 이는 CJ그룹 창립 이후 최다 매출액이다. 2011년 연매출 20조원을 넘은 뒤 5년 만에 매출을 10조원 가까이 불린 셈이다. CJ그룹은 2020년까지 연매출 100조원 돌파를 목표로 잡고 있다. 게다가 올해 이재현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설 경우 CJ는 보다 공격적인 해외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CJ 측은 이 회장의 ‘사면 거래’ 의혹과 관련해 “현 정권에서 K컬처밸리 선정과 미르·K스포츠 재단 후원 당시는 이재현 회장의 항소심·상고심이 진행 중이었다. 사면을 언급할 상황이 아니었다”라면서 “K컬처밸리는 CJ그룹이 10여 년간 추진한 미래 핵심 사업이었다. 사면 대가로 1조4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CJ 측은 또 CJ올리브네트웍스 상장에 대해서도 “현재 CJ올리브네트웍스는 상장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삼성家의 적장자’ 자존심 강한 CJ家 가계도 

 

1967년 정계와 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카린 밀수’ 사건. 이 사건은 범(汎)삼성 오너 일가의 후계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2015년 사망)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삼성그룹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후계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사카린 밀수 사건 이후 이 전 회장은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당시 “사카린 밀수 사건에 이병철 회장이 직접 개입됐다”는 투서가 청와대에 날아들었는데, 이병철 창업주는 이를 이맹희 전 회장이 벌인 일이라 의심했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1970년 제일제당 대표이사를 끝으로 삼성에서 물러났다. 이후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 이맹희 전 회장은 동생 이건희 회장과 2012년 상속 재산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맹희 전 회장은 1956년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영기씨의 딸 손복남 CJ 고문과 결혼했다. 손 고문의 동생이 현재 CJ 경영을 맡고 있는 손경식 CJ 회장이다. 이 전 회장과 손 고문은 슬하에 이미경 전 CJ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 이재환 CJ파워캐스트 이사 등 2남1녀를 뒀다. 이 중 장남인 이재현 회장은 1993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가 시작된 이후 CJ그룹을 이끌었다. 당시 이 회장은 어머니 손 고문으로부터 제일제당 주식을 증여받아 CJ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이후 CJ그룹은 1997년 삼성에서 완전 분리돼 재계 14위까지 몸집을 불린다.

 

이재현 회장은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이경후 CJ 상무와 이선호 CJ제일제당 과장이다. 이 상무는 2011년 CJ 기획팀 대리로 입사해 사업관리·기획 업무를 하다 올해 3월 CJ 미국지역본부 통합마케팅팀장을 맡으며 상무로 승진했다. 입사 6년 만이다. 이 과장은 2013년 CJ그룹에 입사해 현재 CJ제일제당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재현 회장의 누나 이미경 전 부회장은 CJ의 문화사업을 주도했지만, 2013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의 동생 이재환 이사는 스크린광고 회사 재산커뮤니케이션즈를 이끌다 이 회사가 CJ파워캐스트에 합병되며 지난해 CJ파워캐스트 등기이사에 올랐다. 하지만 CJ그룹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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