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육’은 性的 환상일 뿐
  •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05 11:08
  • 호수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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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납치·감금해 자신의 성적 욕망 채우려 한 사건 또 발생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다 보면 때때로 ‘저 사람을 작게 만들어 주머니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고 싶다’란 생각도 하게 된다. 보고 싶을 때, 원할 때 언제나 함께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아무리 사랑한대도, 자신의 주도권을 언제나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랑을 꿈꾸고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일본에서 ‘소녀 납치 감금’ 사건이 또 일어났다. 다행히 범인은 체포되었지만, ‘안전한 치안국가’로 유명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욱이 범인은 항공자위대 대위인 야마우치 도시히사(38)로, 유튜브에 ‘가출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고1 여학생의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찾아가 그녀를 납치했다. 그리고 자신의 관사에 가둬두고 한 달을 함께 지내다 체포됐다. 일본에서는 지난해에도 도쿄의 명문대학생이 온라인에서 알게 된 어린 여학생(15세)을 납치해 2년간 감금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미성년인 소녀를 납치해 자신만의 공간에 감금한 채 ‘자기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사육’(사육이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말이지만, 이들의 방식은 말 그대로 ‘사육’이다)하는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으로, 이런 유형의 범죄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3069일’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던 오스트리아의 10대 소녀 납치 사육 사건은 무려 8년 동안 이루어진 범죄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10살 소녀 나타샤 캄푸쉬는 볼프강 프로클로필이란 30대 남자에게 유괴당한다. 나타샤 역시 그의 집 지하에 꾸며놓은 1.5평의 작은 방에 감금된 채 그에게 성폭행을 수시로 당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밥을 굶기고 때리는 등의 갖은 학대를 당하며 8년을 살아낸다. 나타샤는 납치범인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주며 함께 살다가 방심한 틈을 타 8년 만에야 탈출에 성공했다.

 

영화 《롤리타》 © ㈜풍경소리

 

납치 범죄를 ‘순정남의 사랑’으로 사실 왜곡

 

미국에서도 제이시 두가드라는 11살 소녀가 등굣길에 한 부부에게 납치돼 18년간 감금된 채 그들의 성노예로 살았다. 두가드는 그 기간 동안 월경을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변태적인 성관계를 하고, 납치범의 딸을 둘이나 낳아 기른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남자 혼자서가 아니라 부부가 합심해 11살 소녀를 납치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감금해 누구의 눈에도 띄게 하지 않던 납치범 부부는 두가드가 그들에게 협조하고, 아이들도 낳아 기르며 도망갈 것 같지 않자 쇼핑도 함께 나가고 놀이동산에도 갔다. 그러나 두가드는 점점 그들에게 길들여져, 오히려 남들이 자기를 알아볼까봐 두려워 조심하게 된다. 그야말로 몸뿐 아니라 정신도 구속돼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자에 갇힌’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10대 소녀를 납치해 감금하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며 사는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소아성애(小兒性愛)’의 대표소설이라 할 수 있는 《롤리타》에서는 37살의 불문학자 험버트가 12살 롤리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와 결혼을 한다. 교통사고로 갑자기 아내가 죽자 고아가 된 롤리타의 보호자가 되어 롤리타를 데리고 2년여 동안 여행하며 함께 산다. 겉으로는 자상한 계부였지만, 그는 롤리타와 성행위를 하고, 그 보상으로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그러나 감금한다. 롤리타는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도 만났지만, 결국 험버트가 아니면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곁에 머물 수밖에 없는 감금상태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또 제니퍼 린치 감독이 만든 영화 《Boxing Helena》(국내에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라는 어처구니없는 제목으로 개봉된 바 있다)를 보면, 유능한 젊은 외과의사 닉은 옆집의 뛰어난 미인 헬레나에게 빠져든다. 그런데 헬레나는 닉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게다가 그의 파티에 와서 조롱하기조차 한다. 그 헬레나도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것을 목격한 닉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두 다리와 두 팔을 잘라 그녀를 몸체만 남겨둔다. 헬레나는 살아 있는 토르소가 되어 닉의 돌봄을 받는다. 닉은 상자에 앉힌 그녀 주변을 꽃으로 장식하고,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예쁜 옷을 입히고 극진히 돌보는데, 그런 닉의 모습에 헬레나는 감동하고 사랑을 고백한다는 이야기다.

 

소녀 사육에 대한 영화는 일본이 역시 유명하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소녀 납치 사건을 영화화한 《여고생 유괴 사육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로맨틱한 납치’라는 광고 카피를 달고 2005년 국내에서도 《완전한 사육》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각 편마다 등장인물과 줄거리가 달랐지만, 주제는 ‘남자가 여자를 납치해 가둬두고 길들이면, 여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남자에게 마음을 열고 급기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시리즈 중 가장 인기를 모았던 1편이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1999)이다. 조깅을 하던 평범한 여고생을 중년의 이혼남이 납치해 자신의 하숙방에 가두고, 그녀가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섹스를 원한다고 말할 때까지 극진(?)하게 그녀를 돌보는 이야기다. 나중에 구출된 소녀는 자신은 ‘납치되지 않았다’며 ‘그를 사랑해서 섹스도 하고 함께 살았다’고 대답한다. 이른바 범인에게 인질이 동조하고 따르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랄 수 있을 터인데, 오히려 영화에서는 ‘납치’ ‘감금’이라는 범죄의 측면이 아니라, 자신을 ‘자발적’으로 사랑할 때까지는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는 ‘순정남의 사랑’으로 사실을 왜곡한다.

 

영화 《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 《완전한 사육》 © 조이앤키노·조이앤시네마

 

 

성인 여자 만날 자신 없어 어린 소녀 납치

 

그러나 이것은 일부 남자들이 가진 성적 환상 중 하나일 뿐이다. 특히 누군가를 감금하고 자신만을 의지하게 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어릴 때 어머니와의 애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기 쉽다. 《완전한 사육》의 남자주인공처럼 강간해서 억지로 결혼한 아내와 자식에게 결국 버림받은 한심한 남자이거나, 아주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험버트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 속에서 지금도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는 남자들이다. 유능한 외과의사 닉도 방탕한 생활을 하는 어머니에게 내쳐진 남자이며, 제이시 두가드를 납치한 범인도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소심한 약자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이들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데 자신감이 없어 성숙한 성인 여자를 만나 관계를 이끌 힘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힘이 없는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감금한다. 이렇듯 누군가의 삶을 스토킹하거나 감금하고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그와 같은 비슷한 학대를 당한 사람이기 쉽다. 사랑처럼, 폭력적인 관계 역시 가족 안에서 배운다. 사랑은 내 안에 그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날아오고 싶도록 편안한 어깨가 되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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