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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졸라맨 전주국제영화제, 위기를 기회로

나원정 매거진M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2(Fri) 08:31:00 | 1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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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표현의 해방구.’ 5월6일 막을 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이다. 오는 6월1일 19번째 돌을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김선아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 파행 사태를 보며 위기감을 느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부산영화제처럼 20년 넘게 지속되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갖고 있음에도 정부 지원이 한순간 무너지는 지금의 상황이 비상식적이라 느꼈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2014년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강행한 후 정부 지원금이 대폭 삭감되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부산영화제가 겪은 시련을 두고 하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함께 부산영화제 외압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김세훈 위원장 등 혐의에 연루된 일부 인사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있다는 게 영화계 주장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정국이 탄핵으로 마무리된 지금까지 영화제들이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 보장을 두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다.

 

4월29일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북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 많은 방문객들이 오가고 있다. © 뉴스1


전주 등 6개 국제영화제 정부 지원금 일괄 삭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4월 영진위가 발표한 2017년 국제영화제 육성지원사업 총 예산은 지난해 32억원에서 25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전주영화제·DMZ국제다큐영화제·서울국제여성영화제·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제천국제음악영화제 등 지원 대상인 6개 영화제 모두 지원액이 일괄 삭감됐다. 부산영화제는 평균 15억원 안팎이던 지원금이 2015년 8억원으로 급감한 후 2016년 9억5000만원, 올해 7억6000만원으로 3년 사이 ‘반쪽’이 됐다.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 건 다른 영화제들도 마찬가지다. 전주영화제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전년도 6억6000만원에서 올해 1억5000만원이나 줄어든 전주영화제 정부 지원금을 두고 “긴축 재정을 펴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사정 때문일까. 올해 전주영화제를 찾은 일부 기자들은 해외 게스트의 통역 비용 등을 걱정하는 영화제 홍보팀의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이 집행위원장이 말한 ‘긴축 재정’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러나 블랙리스트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국내 영화제들에 울적한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날과 석가탄신일·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와 겹친 덕분일까. 올해 전주영화제는 개막 전 사전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상영작 80편이 매진됐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높은 매진 회차다.

 

지난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상영 프로그램으로 부산영화제의 대안으로 나섰던 전주영화제는 올해 그러한 기조를 한층 강화했다.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기치에 걸맞게 우리 사회 민낯을 파헤친 ‘사이다’ 상영작이 대거 포진했다. 2013년 천안함 침몰을 다룬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개봉 당시 극장들의 돌연한 상영 불가 통보 등 외압설에 시달렸던 백승우 감독은 21세기 때아닌 국정교과서 논란을 시원스레 들여다본 신작 《국정교과서》를 들고 전주를 찾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역전기를 다룬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경상도 성주 주민들의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을 뒤쫓은 박문칠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란나비효과》 등도 주목받았다. 단지 예민한 사안을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성과 완성도 측면에서도 고른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입니다》와 《파란나비효과》는 영화제 호평에 이어 5월25일 나란히 극장 개봉도 앞두고 있다. 내부 주요 인력이 수차례 바뀌는 등 내홍을 딛고 지난해 최다 매진·최다 상영 기록을 냈던 전주영화제가 올해 또다시 흥행 전적을 경신할지 모른다는 예견도 개막 초반부터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부산영화제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내실을 꾀한 것이 적중한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위기 타산지석 삼아 내실 다져

 

부산영화제의 위기를 타산지석 삼은 영화제들은 또 있다. 지난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부천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아왔던 조직위원장 자리를 먼저 나서서 민간에 이양하며 영화제의 구조적 독립성을 보장했다. 부산영화제의 경우 서병수 부산시장이 영화제와 지난한 갈등 끝에 당연직이던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내놨던 것과 대조적이다. 민간에 이양된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 자리에는 사회 고발 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를 연출하고 《천안함 프로젝트》 《국정교과서》 등을 제작한 정지영 감독이 선출됐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앞서 2004년 부천시장과 영화제 측의 갈등으로 김홍준 당시 집행위원장이 물러났던 아픔이 있었다. 지난해 정지영 조직위원장과 최용배 집행위원장은 김 전 집행위원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하며 12년 전의 상처를 정식으로 봉합했다. 제천음악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 등도 저마다 영화제의 독립성 확보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노력에 돌입했다. 부산영화제 사태가 국내 영화제들 사이에서 내실을 다지는 일종의 경종이 된 것이다.

 

현재 영진위에 등록된 국내 영화제는 100개가 넘는다. 지난해 졸속 행정으로 파행을 빚은 광주국제영화제 등 부실 영화제도 여전히 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 성공 후 전국 지자체가 우후죽순 영화제를 양산하던 시절과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무주산골영화제·충무로뮤지컬영화제 등 차별화로 대중에게 명확하게 어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올해 43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19회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 등 독립영화 진영에선 꾸준히 관객에게 사랑받아온 장수 영화제도 적지 않다.

 

부산영화제는 최근 부산시와 오랜 갈등의 골을 딛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부산시는 5월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부산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지원금을 영화발전기금이 아닌 문체부 일반회계에서 편성해 줄 것과 아시아필름마켓 육성을 위해 별도 10억원 배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경을 통해 올해 한시적으로 부산영화제에 시비(市費)를 증액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물론 숙제는 남아 있다. 영화제들의 숨통을 죈 국고지원금 삭감은 어떤 식으로든 풀어가야 할 문제다. 부산영화제는 여전히 영화계 주요 단체의 보이콧에 직면해 있다. 보이콧 철회 조건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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