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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족’이라며 고개 숙였던 親盧 ‘주류’되어 당권 잡는다는 親朴

7월 전당대회 앞두고 부활 시나리오 짜는 친박계

박혁진 기자·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ㅣ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2(Mon) 11:30:00 |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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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참패로 인해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은 자유한국당이 또다시 친박(親朴)과 비박(非朴) 간 계파 갈등이란 고질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대 대선 기간 자중하던 친박계가 다시 당권 장악을 위한 물밑 움직임을 시작하고, 여기에 비박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부터다. 2007년 17대 대선 후 민주당 최대 계파였던 친노(親盧)계가 정권 재창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폐족’(廢族)을 자처하며 물러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친박계는 내년 지방선거를 발판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2020년 총선을 통해 차기 대선까지 바라본다는 로드맵을 세우고 있다. 반면 비박계는 친박계가 물러나야 보수가 살 수 있다며 사실상 인적 청산 작업에 돌입할 태세다. 양측 모두 “싸우면서 새 길을 찾는 과정”이라며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친노계와 비슷하게 멸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계가 발호(跋扈)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19대 대선이다. 지역보다는 이념 대결 양상을 보인 이번 대선이 강경 보수를 대변하는 친박계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것이다. 대선 이후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친박계 중심으로 당을 재건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하게 퍼지고 있다.

 

5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출구조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오른쪽 두 번째)와 정우택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 © 시사저널 박은숙


 

홍준표 추대론에 불쾌한 친박계

 

‘주류 당권론’으로 불리고 있는 이러한 주장에 불을 지핀 인사는 친박 핵심인 유기준 의원이다. 유 의원은 5월16일 아침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적은 숫자를 가진 소수의 인원이 당을 이끈다면 그 당이 뭐가 되겠냐”며 “수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류가 돼서 당을 이끄는 게 정상적”이라고 밝혔다. 누가 봐도 주류인 친박계가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이날 오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강성 친박 의원들의 비슷한 주장이 이어졌다. 친박 의원들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는 한편,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비공개로 전환된 의총에서 김태흠·이장우 의원 등 강경 친박 의원들은 “선거에 졌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정우택 원내대표의 사퇴와 조기 전대 개최를 요구했다. 이들은 “홍 전 지사가 처음부터 이기려고 뛴 게 아니고 (득표율이) 20%가 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뛴 것이냐”며 비난했다.

 

친박계가 당권 장악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당권 도전설이 급속하게 퍼지는 데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대선에서 홍 전 지사를 도왔던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 대표 추대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홍 전 지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곽상도 의원은 이날 의총에서 “홍 전 지사가 내 지역구에 여섯 번 왔는데 주민들의 의사를 다 모아 당을 살릴 수 있는 불씨를 만들었다”고 홍 전 지사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에 유 의원은 “(홍 전 지사가) 당권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며 “본인은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인데 추대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홍 전 지사에 맞서 당권 장악에 나선 인물은 친박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다. 홍 의원은 차기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며 홍 전 지사의 대항마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에서 하나로 일치해 당의 위상을 높이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노력했던 때의 모습을 생각해야 한다”며 친박 후퇴보다 당 통합을 주장했다. 그는 외연 확장도 주장했다. 홍 의원은 “앞으로 정권을 찾아오기 위해 25% 지지율로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외연 확장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이 이처럼 점차 격화되고 있지만, 정작 친박계의 숨통이 트이도록 만들어준 주역은 홍 전 지사다. 홍 전 지사는 지난 대선 기간 중 당 통합을 내세워 친박계에 대한 징계 해제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 핵심 3인의 징계가 해제됐고, 정갑윤 의원도 복당했다. 박근혜 정권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김재원 의원은 경북 의성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원내로 진입해 친박 재건에 힘을 보탠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대표적 친박인 최경환(왼쪽), 윤상현 의원이 3월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밤샘 검찰조사를 받고 귀가하는 박 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박계가 친박계의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는 기저에는 대선 승리라는 ‘대의’를 위해 홍 전 지사가 친박 징계 해제를 주도했음에도 오히려 ‘홍준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배신감’이 깔려 있다.

 

홍 전 지사가 5월17일 미국에서 체류 중 남긴 SNS 글에는 친박계에 대한 이러한 배신감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박근혜 팔아 국회의원 하다가 탄핵 때는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었다”며 “감옥 가고 난 뒤 슬금슬금 기어 나와 당권이나 차지해 보려고 설치기 시작하는 자들이 참 가증스럽다”고 비난했다. 이어 “다음 선거 때 국민들이 반드시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며 “더 이상 이런 사람들이 정치권에서 행세하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 전 지사는 친박이 당권 장악을 위해 집단지도체제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전 지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친박계를 정리해야만 보수 세력이 부활할 수 있다”며 친박계를 정면공격했다.

 

홍 전 지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습하려는 마당에 친박계가 당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게 비주류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측에서 당권에 도전하실 분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분들이 다시 전면에 나선다는 데 대해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성은 비상대책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대선 이후 친박계 사면으로 지금은 ‘도로 친박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범보수 대통합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이 ‘친박 청산’이라면 국민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친박 인사들의 2선 후퇴 및 청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5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내 친박계 의원들을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 페이스북 캡쳐


 

비박계 “범보수 통합 위해 친박 2선 후퇴 필요”

 

하지만 여전히 당내 최대 계파를 자처하는 친박계가 순순히 물러설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5월17일 열린 자유한국당 중진 간담회에서 홍문종 의원은 홍 전 지사의 ‘바퀴벌레’ 발언에 대해 “그동안 선거하면서 ‘하나가 되는 게 당이 사는 길이다’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무슨 바퀴벌레고, 탄핵 때 어쩌고…”라며 “제정신이냐. 낮술 드셨냐”고 홍 전 지사를 맹비난했다. 유기준 의원 역시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현행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서는) 당 대표로 나갔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당을 위해 헌신할 방법이 없다”며 “(비주류인) 나경원 의원과 신상진 의원도 집단지도체제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집단지도체제로의 전환이 계파를 초월한 다수의 의견이라며 홍 전 지사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당권 경쟁이 간단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이 희박한 이유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때문이다. 한국당은 오는 7월쯤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선출할 예정이다. 여기서 선출된 지도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이끌게 되는데, 공천과 관련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어느 계파든 이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바른정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한 의원들도 결국에는 비슷한 이유로 돌아온 것을 보면 이런 사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기초자치단체장에 출마하려는 당원들이 바른정당 소속으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급속하게 이탈한 것에 국회의원들이 위기감을 느껴서 탈당하게 된 것”이라며 “어느 계파든 당권을 장악해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주지 못한다면 사실상 몰락의 수순을 밟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의 계파 간 싸움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위한 ‘제로섬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한국당 내 비박과 친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당권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계파색이 옅은 초선그룹과 바른정당에서 돌아온 ‘복당파’ 의원들의 표심이 당권의 향방을 가를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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