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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최고 부국 싱가포르의 두 얼굴

리셴룽 총리 ‘형제의 난’으로 망친 싱가포르 이미지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Fri) 20:00:00 | 14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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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5일 싱가포르 중심가의 래플스 플레이스(Raffles Place). ‘싱가포르의 금융 1번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은행, 증권, 보험 등 각종 금융사가 밀집돼 있다. 일부 회사는 1층에 따로 라이브 방송룸도 갖췄다. 국내외 방송사와 연계해 각종 금융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우리나라 은행들도 이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DBS은행에 근무하는 레이첼 황(여)은 “이곳 금융사에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은 고소득자이기에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출퇴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원래 래플스 플레이스는 한 선원을 기린 이름이다. 싱가포르는 19세기 초까지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1819년 싱가포르강 하구에 상륙한 스탬퍼드 래플스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중계항으로 개발하면서 발전했다. 그 뒤 영국은 싱가포르를 1824년 정식 식민지로 만들어 1963년까지 통치했다. 래플스는 그 공로로 귀족 작위를 받았고, 그의 성을 딴 거리가 생겼다. 영국은 더욱 큰 유산을 싱가포르에 물려줬다. 개방성과 효율성, 실용주의, 기회균등주의, 영어 등이다.

 

개방성과 효율성은 싱가포르 항만에서 잘 드러난다. 싱가포르의 면적은 718㎢로 서울(605.5㎢)보다 조금 더 크다. 하지만 싱가포르항은 세계 최대, 최고의 환적 항만으로 명성이 높다. 지난해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년대비 10% 증가한 3090만TEU로, 상하이항(3713만TEU)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실제 싱가포르항에는 2~3분마다 컨테이너 선박이 입항한다. 대부분의 작업장은 무인자동화시스템을 갖췄다. 화물을 내리고 싣고 운반하는 일련의 작업을 사람 없이 기계가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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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로 경제위기 극복

 

세계 각국의 선박이 싱가포르 항만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적과 회사를 따지지 않는 싱가포르항만청(PSA)의 개방정책과 각종 인센티브 때문이다. 싱가포르항은 전 세계 120여 개국, 600개 항구와 연결됐다. 어떤 배든 입항하면 즉시 연료를 공급해 준다. 효율적인 무인자동화시스템은 인력비용을 낮춰 터미널 운영비를 20% 이상 줄여준다. 여기에 PSA는 12시간 내 환적화물을 반출할 경우 하역비의 35%를 감면해 준다. 또한 정박기간을 5일 이내로 단축하면 입항비의 10%를 할인해 준다.

 

항만과 가까운 센토사 섬에서는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다. 센토사는 본래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이란 뜻을 가진 한적한 섬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곳에 2006년 카지노를 유치했다. 이에 따라 2007년 말레이시아 겐팅그룹이 49억 달러를 투자해 2010년 2월 싱가포르 최초의 복합 카지노인 리조트 월드 센토사를 개장했다. 지난 9월4일 찾은 센토사 카지노는 입구에서 출입객의 신분증을 검사했다. 외국인은 무료로 입장시켰지만, 싱가포르인에게는 100싱가포르달러(약 8만3900원)의 입장료를 물렸다.

 

이는 외국인을 타깃으로 돈을 벌겠다는 뜻이다. 실제 객장 내 수백 개의 테이블에서는 억양이 강한 중국인들이 바카라, 룰렛, 블랙잭 등을 즐기고 있었다. 카지노 위층에는 수십 개의 명품매장이 즐비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센토사 외에 미국 샌즈그룹이 55억 달러를 투자한 샌즈 리조트가 있다. 샌즈그룹은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토지를 60년간 임차해 마리나 베이에 축구장 2개 규모로 복합 카지노를 건설했다.

 

싱가포르는 엄격한 법집행으로 유명하다. 법률에 규정된 벌금 조항이 너무 많아 ‘벌금 천국’이라 불린다. 이런 ‘도덕국가’에 도박 산업을 유치한 이는 리셴룽(李顯龍) 총리였다. 리 총리는 국부(國父)인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의 장남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친 뒤, 고촉통(吳作棟) 전 총리에게서 대권을 이어받았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카지노 유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박 산업은 2008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금융위기는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싱가포르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리조트 월드 센토사와 마리나 베이 샌즈가 문을 열면서 외국인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었다. 2009년 968만 명에 불과했던 관광객은 지난해 1640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객이 뿌린 돈은 246억 달러(약 27조7980억원)에 달했다. 또한 4만여 개의 일자리가 새로이 생겨났고 매년 10억 싱가포르달러(약 8385억원)의 세수가 창출됐다. 이에 반해 도박 중독, 범죄 증가, 가정 파탄 등 부작용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해외로 나가 도박했던 싱가포르인들이 국내에서 돈을 써 국부 유출을 막았다.

 

 

리 총리 ‘의혹’ 터져 국가 이미지 실추

 

이렇듯 별 탈 없이 싱가포르를 재도약시켰던 리셴룽 총리는 최근 큰 곤욕을 겪고 있다. 지난 6월부터 동생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리콴유의 장녀 리웨이링(李瑋玲·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과 차남 리셴양(李顯陽·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은 “사후에 자택을 허물라고 했던 아버지의 유언을 뒤엎고 리 총리 부부가 들어가 살면서 아들로의 3대 세습을 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자신들이 국가기관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기치 않은 ‘형제의 난’으로 리씨 일가의 세습정치가 불거지면서 싱가포르의 이미지가 추락했다. 7월15일에는 400여 명이 유일한 집회허용 장소인 스피커스 코너에 모여 리씨 형제들을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싱가포르는 국민의 것이지 리씨 가문의 것이 아니다”고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리 총리는 8월초부터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고 형제들이 제기한 각종 의혹을 해명했다. 하지만 8월 중순 리셴양의 큰아들 리성우가 본국에서 신변위협을 느껴 출국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 9월4일 차이나타운에서 만난 말레이계 오스만은 “리 총리의 권력남용에 대한 의회의 조사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라며 “극소수 중국계 엘리트가 정치와 경제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대해 말레이계와 인도계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싱가포르는 외국인을 제외한 주민 340만 명이 중국계(74.3%), 말레이계(13.4%), 인도계(9.1%)로 구성됐다. 하지만 고위 관리직과 부유층의 90% 이상은 중국계가 독차지하고 있다.

 

리틀 인디아에서 만난 인도계 산제이는 “모든 싱가포르인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지만 집권당인 인민행동당의 당원과 중국계 부유층에겐 관리와 교원 선발에서 특별혜택이 주어진다”면서 “싱가포르에 부정부패가 없는 건 관리들이 다 부자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자조했다. 2014년 5만6337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내리막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 지난 1분기 -1.9%까지 기록하며 침체된 경제 등까지 겹쳐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은 심화되고 있다. 동남아 최고 부국의 명성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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