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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北 도발 속 대북지원, 장고 끝 악수(惡手)?

문재인 정부, 대북제재 강화하는 국제사회와 불협화음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30(Sat) 09:00:00 |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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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북지원 카드를 꺼냈다. 영유아와 임산부를 비롯한 북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데 국제기구를 통해 8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번 대북지원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아동·임산부 대상 영양 강화식품 제공사업(450만 달러)과 유니세프(UNICEF)의 아동·임산부 대상 백신 및 필수의약품 제공, 영양실조 치료제 지원 사업(350만 달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지원을 결정한 터라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9월21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지원을 의결한 뒤 통일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며, 구체적인 지원 시행은 추후 전반적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북지원 결정 일주일 전부터 언론에 지원방침을 흘려 여론을 떠본 뒤 수위를 조절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국민 비판여론과 싸늘해진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북지원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지원은 문재인 정부 첫 대북 인도적 원조다. 박근혜 정부도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도발 이후 사실상 문을 닫았다. 국제기구를 경유하는 방식의 대북지원은 2015년 12월 유엔인구기금(UNFPA)의 북한 인구센서스 사업에 80만 달러를 지원한 게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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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달러 對北 원조 비판여론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대북지원 재개를 꾀하는 걸 두고 정부가 전략적 사고 없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통일부가 대북지원 방침을 떠보기 위한 브리핑을 한 건 9월14일이다. 하지만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에 지원 입장을 꺼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추가도발을 감행하려는 정황이 포착된 상황에서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북공조를 둘러싼 불협화음까지 나온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9월15일 북한 도발 대응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지원 방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미 국무부도 불편한 감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북한의 도발행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동안 대북지원 과정에서 나타난 전용(轉用)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대북지원 물품을 빼돌려 군사용이나 고위층 선물용으로 써온 사실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유엔 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이라 전용 가능성이 없다고 정부는 설명하지만 북한에 주재하는 유엔이나 국제기구 관계자들도 북한 당국의 전용을 막을 제대로 된 현장접근이나 모니터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호소하는 게 현실이다.

 

북한은 1999년부터 10년간 북한으로 보내진 제주 감귤과 당근 대부분을 김정일의 간부 선물용이나 고위층 식자재(건강주스나 요리)로 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감귤 4만8328톤, 당근 1만8100톤을 북송하는 데 23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빼돌려진 것이다. 북한 동포에게 비타민을 보충해 주고, 따뜻한 남녘의 풍미를 전달하는 취지가 빛이 바래버린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 초 감귤 대북지원은 중단됐다.

 

대북 식량지원도 마찬가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쌀 30만톤과 옥수수 20만톤을 보낸 걸 시작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연간 40만~50만톤의 쌀을 북한에 보냈다. 하지만 지원된 쌀이 군부대로 들어가는 정황이 첩보위성 등을 통해 확인됐고, 최전방에서는 진지 구축에 남한 쌀포대가 쓰인 장면이 관측됐다. 당시 차관 형식으로 보낸 쌀 지원 대금은 모두 7억2000만 달러에 이르지만 북한은 갚을 생각을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용 자재·장비와 경공업 원료 등을 포함해 모두 9억3060만 달러(1조521억원)의 상환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보내려 했지만 북한은 아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대북지원 단체 관계자는 “빼돌리기 정황이 속속 드러난 데다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대북지원 호소가 먹히지 않고 있다”며 “기부자가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도너 퍼티그(donor fatigue)’까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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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연일 대남 도발 위협

 

문제는 북한이 도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남북관계나 북한의 태도를 봐가며 실제 지원 시기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9월초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2375호가 나오자 곧바로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쏘아 올렸다. 그러고는 “미국이 감당하지 못할 핵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군사적 공격능력을 계속 질적으로 다지며 곧바로 질주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가도발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예고다.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위협발언을 직설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점도 문제다. 김정은은 8월말 서해 연평도 타격을 가상한 훈련 현장을 찾아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시기에는 볼 수 없던 호전적 행보다. 게다가 북한은 추석 명절을 계기로 한 남북 이산상봉 제안 등 인도적 사업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북한 당국이 억류 중인 우리 국민들에 대한 석방 문제에도 호응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중국에서 집단 탈북·망명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의 송환 등을 주장하며 인도적 사업에 차단봉을 내걸었다.

 

연초부터 탄도미사일 도발 질주를 시작한 북한은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핵실험 도발에 이은 새로운 유형의 대남·대미 위협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집권 초 대화에 연연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대북응징’ ‘재개 불능’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중도·보수층의 마음을 잡는 데 집중해 왔다. 초반 고공 행진하던 지지율의 하락에 국민들의 안보위기감도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국면에서 꺼내든 대북지원 재개 카드에 비판여론이 쏠리면서 자칫 유화적 대북노선이 초반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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