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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상대가 진정으로 뉘우쳤을 때 가능한 것”

‘제주 4·3항쟁’ 다룬 기자 출신 손석춘 작가의 6번째 팩션 《파란 구리 반지》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7(Wed) 20:00:00 | 14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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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유대인 출신인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대담집 《세기와 용서》에서 “나치를 용서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나치의 학살은 당대 인류라면 누구나 분노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꼭 한 민족에서만 이뤄졌던 건 아니었다. 난징대학살과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등 또 다른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 우리 민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친일파들은 해방 후 살아날 구멍으로 이승만 정권에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거대한 구조 속에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1948년 4월3일의 제주도였다. 내년으로 70년을 맞는 ‘제주 4·3사건’은 얼마나 진실이 알려졌고, 그에 합당한 반성과 용서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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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집착하는 것은 빚진 역사에 대한 예의”

 

그 진실을 향해 언론인 출신 소설가인 손석춘 작가가 묵직한 돌직구를 날렸다. 작가의 신작 《파란 구리 반지》는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여순항쟁·한국전쟁 이후까지를 담고 있는 팩션이다. 작가는 한겨레 기자로 활동하던 2001년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편의 소설을 출간했는데, 모두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을 설계한 팩션이었다.

 

작가는 왜 그토록 팩션에 집착했을까. 홍대 앞에서 잠시 만난 작가는 “난 항상 역사에 빚진 느낌으로 살아왔다. 이 땅을 만들어낸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온전하게 다시 살려 진실을 대면시키고,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팩션을 선택했다. 이번 소설도 4·3항쟁의 진실을 찾아서 그들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쓴 것이다”고 말했다.

 

제주도 출신이 아닌 작가가 4·3항쟁을 소설의 배경으로 하기 위해선 수많은 자료를 찾아야 했다. 4·3항쟁 진상보고서를 중심으로 제민일보 연재 등 이 사건의 내용을 찾아내 소설의 뼈대를 세웠다. 소설의 주인공 강인혁이나 고은하·박병도 등도 이런 자료들을 들춰내다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소설의 시작은 미국이다. 제주도처럼 반딧불이가 있는 메릴랜드 호숫가에서 기무라 아키코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고은하는 일본인 간병인을 구하는 집을 찾아갔다가 아베 노부유키라는 이름의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77세의 고령이지만 성적 희열을 느끼려, 늙은 간병인인 그녀에게 돈을 쥐여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노인이 그녀 인생에서 가장 악마로 작용했던 인물임을 서서히 감지해 간다.

 

그들의 악연은 제주도가 고향인 고은하가 대구사범에서 공부하던 1940년 전후로 거슬러 간다. 고은하는 어릴 적 고향에서 인연이 있던 강인혁을 만나 사랑을 키운다. 두 사람은 학교 안에서 일본과 맞서려는 학생들로 구성된 ‘민속연구회’로 활동하다가 조직 사건을 만들려는 경찰의 대대적인 검속에 걸린다. 다행히 강인혁은 급히 피신해 지리산으로 가지만, 고은하는 경찰서로 끌려가 가장 처절한 인연이 되는 박병도를 만난다. 일본 경찰보다 더 악질적인 친일 경찰 박병도에게 진저리 치는 상황을 경험한 고은하는 곧바로 강인혁이 있는 지리산 빗점골로 향한다. 두 사람은 재회해 사랑을 완성해 간다. 그리고 이들에게도 해방은 찾아왔다. 복잡한 정치적 흐름 속에서 이미 사랑이 무르익은 두 사람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고향 제주도를 선택해 돌아와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제주는 정치적 격랑의 중심에 선다. 특히 혼돈을 이용해 존재를 만들려는 친일 경찰 세력은 1947년 삼일절 행사에 참석하다가 기마대에 치인 아이 사건을 오히려 폭력의 시작점으로 만든다. 일반인에 대한 무차별 총격으로 분노와 혼돈은 커간다. 이미 ‘붉은 섬’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이북 출신의 친일 세력으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로 내려오면서 그 혼돈은 극치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고은하는 해방 전 대구에서 자신의 몸을 능욕했던 친일 경찰 출신인 박병도를 다시 만나는 처참한 상황에 이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대한 폭력 속에서 두 사람의 삶도 안타까운 외줄타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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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제주항쟁·한국전쟁 등이 소설 배경

 

작가는 일제 말기부터 해방·제주항쟁·한국전쟁 등의 역사를 소설의 배경에 놓고 있다. 그간 써오던 팩션들과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이번 소설에서도 역시 박헌영이 스치고 있다. 박헌영은 작가가 그동안 전작에서 한 번도 놓지 않았던 인물이다. 작가가 팩션에서 박헌영에 집착하는 것은, 그가 일제강점기 치열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였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에서조차 버림받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작 《코레예바의 눈물》은 박헌영의 첫 부인으로 곡절 많은 현대사를 살다간 주세죽의 삶을 다뤘다.특히 《코레예바의 눈물》은 영화로도 준비 중이어서 당대 최고의 미녀였던 주세죽의 캐스팅도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설의 주 배경인 4·3항쟁은 현기영의 《순이 삼촌》 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초보적인 진실 파악조차 돼 있지 않아 섣불리 용서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살인의 기록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병도가 자기 자식조차 잔혹하게 살해하는 모습을 두고, 작가에게 ‘용서’에 관해 물었다. “역사에서 용서는 상대가 진정으로 뉘우쳤을 때 가능합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전두환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지금 그 죄를 부정하는 것을 보면 잘못된 용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발전을 만드는 진짜 용서는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뼈를 깎는 반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보수는 진짜 보수가 아니라 수구적 퇴보가 된 것입니다.” 

 

 

New Books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장현갑 지음│불광 펴냄│1만6000원

 

 

한국 심리학계를 대표하는 장현갑 교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심리학 교과서다. 자기 혈육을 잃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넘어서, 자기 구원으로서의 명상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76년간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응어리진 고통에 맞서 터득한 지혜, 그리고 이 순간에도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이들에게 들려주는 진짜 조언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 

 

 

아들러의 감정수업

게리 D. 맥케이·돈 딩크마이어 지음│김유광 옮김│시목 펴냄│1만5800원

 

 

 

《미움받을 용기》로 이미 한국 독자에게 깊숙이 파고든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분노·우울·불안·죄책감 등의 감정에 접근한다. 감정의 목적을 밝히고, 그 목적과 감정을 수동적으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건설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새로운 목적과 감정을 선택할 것인지 독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 

 

 

슈퍼피셜 코리아

신기욱 지음│문학동네 펴냄│1만5000원

 

 

 

아시아, 한·미 관계 전문가인 신기욱 스탠퍼드대학 교수가 낸 첫 한국어 대중 서적. 한국을 잘 아는 내부인인 동시에 국제관계의 역학 속에 놓인 한국을 보는 외부인의 시점에도 익숙한 저자는 그만의 시선으로 교육·정치·문화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풀어낸다. 특히 북한 이슈를 둘러싼 안보문제, 한·미 관계 해법, 한국의 외교노선 등에 대한 그의 실용주의 통찰이 돋보인다. ​ 

 

 

불평등이 문제다 

김윤태 지음│휴머니스트 펴냄│1만6000원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돼 중간계급이 사라지고 있으며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한국은 뚜렷한 분열의 길을 걸어왔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 사회가 여기서 더 나빠져서는 안 된다고 우려한다. 아동·청년·노인이 모두 살기 어려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이 불평등을 줄일 마지막 기회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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