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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추적으로 밝혀낸 역사, 한반도에서 서시베리아로...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 박창범 교수의 지도를 다시 보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0.31(Tue) 16: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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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을 붕괴시킨 급속한 한랭화 경향은 약 500년간 지속됐고, 그로부터 본격적인 한랭기가 또 약 500년 동안 이어졌다. 계속해서 기후변화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돌아 기원원년 무렵이 되면서 온난기인 ‘로마시대 기후 최적기’에 들어간다. 그러자 다시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미 1000년 이상 철기문명이 녹아들어 사회의 기초로서 통합되어 있는 한반도는 온난기를 맞아 또 다시 동아시아의 중심으로서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한랭기에도 다른 곳보다 살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지만, 온난기에는 더욱 큰 이점을 제공한다. 

 

이 시기는 역사학적 시대명으로 볼 때  전(前)삼국시대, 혹은 최근에 점점 더 많이 제기되는 가야사에 대한 주장을 고려하자면 4국시대에 해당된다. 앞 제1부에서 보았던 박창범 교수의 한반도 고대 천문관측지 지도가 보여주는 범위를 누렸던 시대다. 다시 한 번 그 지도를 보자.

 

 

 

고구려의 경우는 동심원의 중심이 두 개다. 즉 천문관측소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따라서 고대의 정치중심지였을 지역이 두 군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우선 더 먼 쪽인 우랄산맥 동쪽, 서(西)시베리아 평원은 우리 민족의 땅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멀다. 하지만 이 지역과 한반도의 연결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한국어는 우랄산맥 동쪽에서 알타이산맥 북쪽에 이르는 지역의 원주민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이 지역 중심지인 카자흐스탄과 우리 민족, 특히 고구려의 문화유산에서 공통점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 지역과 한반도의 관련성을 상정하게 되면 그 다음 떠오르는 의문은 당연히 다음과 같은 것일 테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서(西)시베리아 평원에서부터 왔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런 추정은 지금까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세계의 주류 역사학계가 그런 방향으로 인간의 이동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간은 원심력이 작용하듯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므로, 그 방향선상에서 보면 유라시아 대륙 중앙부로 거쳐서 한반도로 오게 된다.

 

하지만 최근 연구되고 있는 DNA 추적 결과는 그 반대방향의 움직임, 즉 한반도에서 서(西)시베리아 평원 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사와 IBM이 공동으로 추진 중인 게놈 추적에 의한 초기 인간 확산 경로 연구 프로젝트 ‘게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의 방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인류는 지금까지 상정되었던 것과는 달리, 단순 확산형 경로가 아니라 보다 복잡하고 유동적인 경로를 거쳐 확산되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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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에 의하면 한반도의 인구집단은 아프리카에서 출발, 아라비아와 인도,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 끝까지 온 인구이동 결과 한반도에 정착했고, 거기서 또 서북쪽으로 이동, 티벳 고원 북부를 거쳐 카스피해 쪽으로 이동해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한반도에서 출발한 인간이 북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텐산 산맥에서 바이칼호 유역에 이르는 비옥한 땅까지 진출했을 가능성도 결코 적지 않다. 고구려 시대쯤에는 아마도 두 지역이 서로 빈번히 왕래하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박창범 교수의 지도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고구려 중심지는 요하유역의 북쪽에 자리한 넌장(嫩江) 유역이다. 대(大)킹간산맥(Khingan Range)과 소(小)킹간산맥 사이에의 넓고도 비옥한 땅이어서 기후가 온난하면 상당히 살기 좋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서 시베리아로 가려면 만주 서북부의 킹간 산맥, 시베리아 동부의 아마르자르 산맥(Amarzar Range) 등이 연이어 있는 높은 산지여서 얼핏 보기엔 사람의 이동이 쉽지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의 3000 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헤이룽 강(아무르 강)이 그 산지들 사이를 흐른다. 기후가 온난할 때라면 배를 타고 이 정도 거리를 커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동남쪽으로는 한강 이북까지, 거기서 만주평야를 품고 서북쪽으로는 서(西)시베리아 평원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인간 집단이 장악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시기엔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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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가 보여주는 백제의 위치는 정확히 요하문명의 터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백제는 요하문명을 승계하고 거기에 철기문명의 유산까지 통합된 상태로 온난기를 만나 선진적인 문명의 꽃을 피웠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근 온라인 담론 공간에 ‘대륙백제설’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이 지도는 이런 담론이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제인들은 요하 유역에서 서해안을 따라 한반도 남쪽까지, 또 거기서부터 일본 규슈 지방을 발판으로 일본 열도 전체까지 활동무대를 확산했을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를 축소시키려 했던 중국과 일본의 오랜 노력 결과, 그 무대가 지금은 한반도 호남지방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지게 됐을 테다.

 

상대 신라의 정치 중심지가 양쯔강 중류 지역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도를 보자. 여기서 고려할 것은 통일 전 신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기록은 상당부분 가야의 것과 섞여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이 부분에 대해서 단언할 근거는 물론 찾기 힘들다. 하지만 세계 다른 지역의 경우를 보면, 정복자가 피정복지의 유산 중 쓸 만한 것은 자기 것처럼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천문학적 지식 및 기술은 바다를 항해하는 종족들에게서 크게 발달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어두워지면 별빛을 보면서 뱃길을 찾는, 요즘 ‘스타 내비게이션(star navigation)’이라고 부르는 항법(航法)을 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분야에 대한 가야인의 노하우 수준은 동아시아 일대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정상급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로서 가야가 망한 이후에도 신라의 통치자들을 위해 천문학 분야에서 일했던 사람 중에 가야인의 후손이 많았을 것이다. 신라 위정자들의 뜻에 따라, 또 때로는 가야인 후손인 천문학 전문가의 자의로, 가야 이야기는 신라이야기로 둔갑되어 전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동양 고대사 전문가로 높은 평판이 있는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静) 박사는 《文化における歴史》(문화에 있어서의 역사, 2006)라는 책에서 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서기 3~4세기 경, 백제 도래인이 일본에 한문을 전달한 이래 한동안 문자기록은 백제 도래인 출신 및 그 후손들이 담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의 고대사 기록은 이들의 기억 및 관점 위주로 돼 있어서 사실과 편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신라도, 적어도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보다는 훨씬 더 큰 나라였을 것이다. 역시 중국의 영향 하에 역사 왜곡이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해양활동도 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의 지도에서 하대 신라의 국가 경영 규모에는 일본 서북부 지방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역사기록에 선덕여왕 당시 일본에서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실이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야 전성기엔 가야의 해상활동 규모가 훨씬 컸을 것이며, 그런 활동의 흔적이 나중에 신라역사로서 흡수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정하더라도, 상대신라, 혹은 가야의 정치 중심지가 양쯔강 유역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의문이 일반적으로 생길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역사의 틈새를 들여다보면, 의외로 근거가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중국에는 대륙을 통일한 한(漢)나라가 서기 9년 외척 왕망에게 망한 이후 거의 500~600년 동안, 신·후한·삼국시대·위진 남북조·오호십육국 등으로 무수히 많은 나라들로 갈라져 싸우면서 새 왕조가 들어섰다가 금방 망가져 사라졌다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기록에 남은 이 기간의 역사는 주로 양쯔강보다 더 북쪽인 황하 유역을 무대로 하는 것이다. 양쯔강 일대의 역사에 대해서 정사로서 기록된 것은 삼국시대 오(吳)나라 정도다. 그 오나라의 경우조차, ‘삼국지’ 속에서 유명한 손권(孫權)을 제외하면 왕족 손씨의 통치기간도 짧았고 통치력도 별로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가야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기 1세기부터 6세기까지, 중국의 대표적 지배계급 한족(漢族)은 그 비옥한 노른자 땅 양쯔강 유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 북쪽의 선비족 출신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했다고는 하나, 그 범위는 황하유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다음 들어선 당나라 때가 되어서, 그것도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양쯔강 유역까지 통치권 범위 내로 확보하게 된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자기들이 한족(漢族)임을 표방했다. 그러니까 서기 9년 한나라(전한) 멸망 이후 한족이 다시 양쯔강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지는 6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 사이 양쯔강이 만들어내는 이 광활한 옥토와 효율적인 뱃길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뛰어난 항해술과 친화력으로 물길을 따라 세계를 누볐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 개연성을 시사하는 근거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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