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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에서 커피 장인 꿈꾸는 고려인

[구대회의 커피유감] 고려인 바리스타 李알렉세이, 한국서 맛본 커피 한 잔에 인생이 바뀌어

구대회 커피테이너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5(Sat) 14:00:02 | 14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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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는 1830년 한인 12가구가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구한말 끔찍한 흉년이 들어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대규모 한인 이주가 있었던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 후 이들은 조선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했다. 과거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 상하이(上海)와 더불어 항일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큰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인 이상설 선생의 유허지(遺虛地·유물 없이 자취만 남아 있는 터)와 일본과 무장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최재형 선생의 생가가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다.

 

 

2년 전 한국서 생애 처음 원두커피 접해

 

한인(고려인)들은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한국어를 잊지 않고 있으며, 선친의 성(姓)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그들은 현재 러시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맡은 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커피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를 걸고 정진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찾아 커피에 푹 빠져 꿈을 착실하게 키워가고 있는 고려인 바리스타, 이(李)알렉세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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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렉세이를 만나기 위해 고려인 문화센터에 갔을 때, 1층 현관에서 고려인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과 마주쳤다. 정중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드렸다. 2층 카페로 향하는 필자에게 그녀는 “한국인이오? 여기는 어인 일이오?”라고 물었다. 조금 어눌한 발음인 것으로 보아 고려인이 분명했다. “네, 할머니. 한국에서 왔고요. 일 때문에 잠시 들렀어요.” “반갑소. 잠시 얘기할 수 있소?” 마치 기대하지 않은 귀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할머니의 성함은 김야나(김정옥)이며, 고려인 2세인 그녀는 1928년생으로 올해로 나이가 아흔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부모님께서 일제 강점기인 1928년 가난과 일본의 핍박을 못 이겨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 같은 해 할머니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젊을 때 구(舊)소련 아래서 공장 노동자로 살았는데, 1965년 우수 노동자로 선발돼 포상을 받기도 했다. 혹시 한국엔 가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의 고향산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지금도 한국이 무척 궁금하고 그립다고 말했다. 현재 자신의 아들은 모스크바에서 고위 군인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별인사를 하고 2층에 위치한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서쪽 창문으로 잘 익은 군고구마 속살 같은 석양빛이 카페 안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카페 맨 안쪽에서는 바리스타 한 명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고 있었다. 다가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그라인더에서 원두를 덜어내 포터필터에 담은 후 탬핑을 하는 손을 관찰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 모르나 동작 하나하나가 군더더기가 없을 만큼 깨끗하고 정교했다. 커피를 받아들고 테이블에 앉아 마셨다. ‘양질의 원두를 구하기 쉽지 않은 이곳에서 이 정도면 바리스타가 할 일은 다한 셈’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올해 나이 26세의 이알렉세이는 고려인 4세다. 그는 알뜰살뜰한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두 사내아이를 둔 가장이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2년제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에서 프로그래밍을 전공했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할 수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아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그 후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그는 한국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가족 부양차 2년 전 한국 땅을 밟았다. 광주광역시의 한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던 중 생애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원두커피를 맛보고 커피에 매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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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문화센터 카페에서 일하며 꿈 키워

 

사실 그가 커피를 처음 접한 것은 16살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모님과 살 때였다. 그러나 그때 그가 마신 것은 원두커피가 아닌 커피 분말을 물에 타 마시는 인스턴트커피였다. 당시에는 나이도 어렸을 뿐만 아니라 커피 맛도 잘 몰랐기 때문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한국에서 커피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마음속에 커피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2년간의 공장 생활을 마친 그는 적지 않은 돈을 쥐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우수리스크로 돌아왔다.

 

그는 아내에게 앞으로 커피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다행히 아내의 허락을 받은 후, 몇 달 전부터 커피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안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제 근로를 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필자는 왜 그가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일생의 직업으로 삼게 됐는지 물었다. “커피가 그냥 좋아요.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고, 사람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주는 과정 자체가 행복해요. 커피 머신 앞에 서면 힘이 나고, 즐거워져요. 그리고 사람들이 제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의 친구들도 커피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혹시 바리스타로 일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사뭇 궁금했다. “제 주변에도 커피를 즐겨 마시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 가운데는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우수리스크에서 커피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음료예요. 그래서 청년들이 관심이 많아요. 커피를 가르치는 학원도 있고요.” 이곳에서 버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그는 비록 빠듯한 살림이지만, 앞으로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 자신의 카페를 차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지만, 그곳은 카페를 운영하기에 여건이 좋지 않아 우수리스크에서 산다고 했다. 이곳에는 처가의 가족들도 있고, 친구들도 많아서 이제는 여기가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산다고.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악수를 나눴다. 물을 많이 만져서인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그의 손은 거칠고 건조했다. 그만큼 그는 커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날 그의 이름을 건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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