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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하나의 장르로 굳어진 ‘리메이크’

시공간을 뛰어넘은 ‘소통’으로 사랑받는 리메이크작들의 특별함

정덕현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3(Sat) 17:00:00 |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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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표된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 리메이크(Remake)는 이제 거의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제 작품 서너 편 중 하나는 리메이크일 정도로 보편화된 제작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 도대체 ‘과거의 재탕’인 리메이크가 이처럼 각광받게 된 이유가 뭘까.

 

이제 대중문화 안에서 ‘리메이크’는 일상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때 소설이 그 원작 자리를 차지했던 시절을 넘어 이제는 그 자리를 웹툰이 차지했지만, 리메이크는 소설이든 웹툰이든 그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강풀의 웹툰이 화제가 되어 거의 모든 작품이 영화화되고, 윤태호의 《이끼》나 《미생》이 영화화와 드라마화되면서 리메이크 원작으로서 웹툰이 중심축으로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올해만 해도 소설 원작인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나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작품들이 리메이크되었다. 즉 리메이크 소재의 양상은 소설에서 웹툰 이런 방식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소설에 웹툰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무한히 증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본격 소설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장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화된 《성균관 스캔들》이나 《바람의 화원》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들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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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제는 리메이크가 국적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하얀거탑》이 국내에서 리메이크되어 큰 화제를 일으킨 이후, 일본 원작의 리메이크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다메 칸타빌레》 《심야식당》 《직장의 신》 《시티헌터》 《봄날》 《닥터 진》 《여왕의 교실》처럼 거기에는 장르도 소재도 다양하다. 최근 들어 이런 해외 원작 리메이크는 한때 정서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터부시해 왔던 미국 드라마들까지 시도되고 있다. 물론 성패는 작품마다 달랐지만, 《굿와이프》나 《안투라지》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작품들의 등장은 이제 리메이크가 넘지 못할 경계는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젠 어쩌면 원작이 더 귀해진 시대에 접어든 듯하다. 세상은 넓고 무수한 콘텐츠들이 갖가지 형태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니 그 콘텐츠들을 갖고 다시 만드는(Remake) 작업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다가오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리메이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이미 성공한 작품이 갖는 인지도와 보다 작은 위험부담일 것이다. 리메이크된다는 사실엔 이미 그 작품이 일정 대중들을 상대로 성공을 거뒀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 그렇게 검증된 작품이 주는 안정감은 작품 기획자들로서는 매력적일 수 있다. 실제로 윤태호 작가의 《미생》 같은 작품은 웹툰의 엄청난 성공과 함께 리메이크된 드라마의 동반 성공으로 양자에게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 바 있다. 이것이 성공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기존 원작에 형성된 팬덤을 리메이크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점도 큰 이점이 아닐 수 없다. 윤태호 작가의 《내부자들》이 단적인 사례다. 웹툰으로 시작해 영화로 결말을 낸 이 작품은 웹툰에 주목된 관심을 영화 쪽으로 끌어내면서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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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메시지와 가치, 리메이크의 전제

 

하지만 리메이크가 가진 인지도는 정반대 관점으로 작용하면 오히려 한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즉, 워낙 원작의 아우라가 큰 작품의 경우는 리메이크작이 원작과 비교되는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작년에 방영됐던 황미나 작가 원작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나 윤미경 작가의 《하백의 신부》 같은 작품은 원작의 팬덤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무게감을 이겨내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만화나 웹툰 원작의 경우는 캐릭터의 외모가 직접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른바 ‘싱크로율’에서부터 이미지 충돌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한계는 리메이크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에 벌어질 때 생겨나는 정서적 충돌이다. 문화가 달라 어느 나라에서는 대단히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어도, 다른 나라에서는 시큰둥해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안투라지》나 《크리미널 마인드》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에서는 굉장한 인기를 누렸지만, 그 정서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참패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리메이크 성패의 관건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근 tvN에서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에 방영됐던 동명의 작품을 4부작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노 작가 본인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일컫는 이 작품은 2011년 영화로도 리메이크되었다. 그리고 2017년에 드라마로 다시 리메이크된 것이니 시간 간극이 21년이나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시간을 뛰어넘어 이번 방영되고 있는 리메이크 작품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실 드라마라고 하면 가장 트렌디하다고 일컬어지는 대중문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21년이란 시대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이 작품이 시대의 변화와 큰 상관없이 통용되는 보편적인 메시지와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가족의 양태는 20년 전과 지금이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은 남아 있고(오히려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에 대한 향수는 더 커진다), 특히 노희경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은 시대가 바뀌어도 또 국적이 다르다고 해도 누구나 공감하는 가치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리메이크된 일본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국내 원작이지만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굿닥터》, 그리고 웹툰이었다가 드라마화되거나 영화화된 무수한 작품들이 가진 공통점들은 형식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고유한 메시지에 대한 공감대가 자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른 시대, 다른 국적이어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데서 나오는 이야기의 원천이 같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하는 리메이크의 가장 큰 전제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화해 가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가족에 대한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향수는 여전하지만, 그 가족이 보여주는 삶의 양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해지는 것이 시대적·공간적인 변용이다. 이러한 일종의 ‘코드 전환’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면 리메이크 작품은 소비 대중들의 호응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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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공간적 변용, 리메이크의 관건

 

이러한 코드 전환의 중요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메이크 작품으로 《미워도 다시 한번》이 있다. 이 작품은 1968년 처음 영화화되어 히트를 친 후, 1971년까지 연달아 속편이 제작되었고, 1980년에 《미워도 다시 한번 80》으로 개봉되어 또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워도 다시 한번 80 2부》가 흥행에 실패하고, 2002년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을 만들었던 정소영 감독이 만든 《미워도 다시 한번 2002》 역시 참패하면서 그 오랜 기간의 리메이크 시리즈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09년에 또 드라마화됐지만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런 변화된 결과가 생긴 건 1980년까지 그나마 유지되던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던 며느리의 신파극이나 ‘출생의 비밀’ 코드 같은 것들이 2000년 이후부터 서서히 ‘막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대중들의 정서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즉 변화된 가족의 삶의 양태를 시대에 맞게 변용하지 못한 이 작품은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을 꿈꿨지만 미움만을 받는 작품으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시대적 변용만큼 중요한 것이 국적성이나 장르에 맞는 코드 변환이다. 《하얀거탑》 같은 작품은 오히려 일본 드라마보다 국내의 리메이크가 더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리메이크 작품이 우리네 서열화·권력화·정치화되어 가는 시스템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많은 웹툰이나 만화 원작 작품들의 성패가 갈린 건 만화가 갖는 개연성의 허용치를 드라마나 영화에 얼마나 맞게 코드 변환을 해 줬는가에 따라서였다. 즉 만화로서는 허용되던 조금은 가벼운 개연성의 법칙들은 상대적으로 엄밀한 개연성을 요구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거기에 맞는 변용을 요구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리메이크가 이제 새로운 시대의 제작 방식으로서 그 가치가 드러나는 부분은 단순히 이런 성패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다분히 철학적인 문제일 수 있다. 즉 리메이크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지점들을 연결해 소통시키는 작업이라는 점이다. 리메이크는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콘텐츠를 통해 소통시키기도 하고, 서로 다른 시대의 공기를 콘텐츠를 통해 공유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어떤 리메이크는 이전 세대와 지금 세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음악에서 주로 활용되는 리메이크가 그렇다. 올해도 화제가 되었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은 자연스럽게 1980~90년대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들과 지금 세대들의 감성을 음악 하나로 묶어준다.

 

 

리메이크 범람은 ‘소통의 욕구’ 커진다는 뜻

 

리메이크 작품의 가장 큰 목적은 어쩌면 ‘소통’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봤고, 그들이 얼마나 공감했는가가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건 그것이 모두 ‘소통되었는가’의 지표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리메이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시대와 공간의 대중들을 연결해 주고 소통시켜준다. 물론 어떤 것들은 소통에 성공하고 어떤 것들은 소통에 실패하지만, 그 시도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건 장르나 국적이나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함께 소통하고픈 대중들의 욕망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리메이크라는, 이제는 점점 하나의 장르가 되어 가고 있는 제작 방식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들이 경계를 허물어가는 시대의 새로운 공기를 접하고 있다.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좋아했던 것들을 이제는 우리도 들여다보고, 또 거꾸로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리메이크되어 그들의 열광을 얻는다. 그러면서 서로 이질적이던 정서나 문화 사이에서 어떤 공유점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발견된다. 아마도 이런 리메이크를 통한 교류는 그래서 갈수록 더 빠르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서나 문화 차이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중첩되어 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코드 변환에 드는 비용이나 고민도 갈수록 줄어들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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