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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평창’ 천기누설, 뒷수습에 골머리 앓는 北

北 노동신문 남북 합의문에 ‘평창’ 등장 안 해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23(Tue) 11:30:01 | 14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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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놓고 우리 내부는 떠들썩한 분위기다. 김정은이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평창 겨울철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한 이후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판문점에서는 1월9일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 당국 간 협의가 줄지어 열리고 언론은 봇물을 이룬 회담 합의내용을 전하느라 부산하다. 불과 보름 남짓한 시간에 북한 선수를 포함한 대표단의 평창행에 합의했고, 140명 규모의 예술단을 파견하는 문제를 다룬 실무협의도 타결됐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개회식 동시 입장 외에도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의 남북 공동훈련과 금강산 지역에서의 공동 문화행사도 타결됐다. 시설점검과 공연 준비를 위한 선발대가 오가고 스위스 로잔에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한이 함께 참여해 단일팀 구성 문제 등을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평양의 분위기는 우리와 큰 온도차가 난다. ‘평창올림픽’이란 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김정은의 대표단 파견 언급 이후 남북 간에 고위급 회담을 위한 여러 사전 논의가 이뤄졌지만 북한 매체들은 이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1월9일 고위급 회담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야 짤막하게 타결 사실만 보도했다. 이튿날 노동신문은 이 소식을 4면 아래쪽에 작은 박스 기사로 다뤘다. 이런 양상은 북한이 230명의 응원단을 평창에 보내는 것을 포함한 실무회담 합의 사실을 다룬 1월18일자 노동신문도 마찬가지다. 마치 ‘평창 소식은 4면 아래쪽에 작게’라는 보도지침이 있는 듯 같은 자리에 편집됐다. 우리 언론이 1면 머리기사와 2~3개 이상의 지면을 할애해 관련 기사를 싣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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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관현악단, 김정은 찬양공연 할까

 

북한의 이 같은 신중 모드는 김정은 신년사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사실 대한민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는 사실은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서는 안 될 비밀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는 관련 보도를 그동안 전혀 다루지 않아왔다. 그런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불쑥 이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이라며 운을 떼버렸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야말로 ‘천기누설’인 셈이다.

 

북한은 신년사 발표 이틀 뒤인 1월3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대남 입장을 내보냈다. 김정은의 위임에 따른 발표라고 밝힌 리선권은 판문점 직통전화 채널 재가동 등을 통보한 뒤 “평창올림픽 경기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 매체에선 ‘평창’이란 단어는 점차 빛을 잃었다. 1월18일 노동신문에 실린 남북 합의문엔 아예 ‘평창’이란 표현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빼거나 삭제한 것이다.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남조선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린 뒤 북한 당국이 그 뒷수습에 얼마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에 예술단과 응원단 등을 파견해 평화 이미지를 선보이고 대남 유화공세를 취하려는 의도를 본격화 하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핵 불바다’ 위협으로 우리 국민을 불편하게 했던 김정은의 이미지를 바꿔보려는 심산도 깔렸다. 선수단 구성보다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에 더 공을 들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500명 안팎으로 잡힐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는 데 따른 부담을 무릅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 체제 찬양·선전과 김정은 우상화 레퍼토리를 고집해 우리 측과 갈등을 빚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남북 실무접촉에 나온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은 2015년 말 베이징 공연 때 장거리미사일 발사 장면이 담긴 공연을 불허한 중국 측에 항의해 전격 철수하는 사태를 주도한 인물이다.

 

북한은 일찌감치 음악을 통한 선전·선동과 체제 결속을 통치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전에 “음악이 때로는 수천, 수만의 총포를 대신했고 수백만, 수천만 톤의 식량을 대신했다”고 말하곤 했다. 또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혁명적인 노래는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은 항일혁명 시기의 문학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가 도달한 진리”라고 밝혔다.

 

세습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도 김일성·김정일의 노선을 따랐다.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 그의 지시로 모란봉악단이 만들어졌다. 관영 매체엔 “원수님(김정은을 지칭)의 음악정치를 앞장서 받들어 나가는 제일 근위병”이란 찬사와 함께 “모란봉악단은 ‘노래폭탄’을 싣고 달린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김정은의 통치코드가 가장 잘 반영된 친솔(親率·김정은이 직접 챙긴다는 의미)악단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처럼 심상찮은 배경을 가진 북한 예술단이 평창을 찾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 대남 선동과 김정은 우상화 레퍼토리를 통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북한이 “잘못하다가는 잔칫상이 제사상으로 될 수 있다”거나 “평화 올림픽이 대결 올림픽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1월15일 기자동맹 간부)는 식의 위협을 가하는 것도 걱정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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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회 보고 돌아갈 대표단 입단속 걱정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을 둘러싼 북한의 걱정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이 산통을 깨트린 상황에서 북한 당국자들은 최고지도자가 남북에 공언한 대표단 남한 파견 임무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남조선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주민들의 반응도 주시해야 한다. 자칫 “남쪽에선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열리는 데 우리는 뭔가”라는 동요의 입소문이 번지면 큰일이다. 평창올림픽에 파견돼 서울 구경까지 하고 돌아갈 예술단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의 입단속도 쉽지 않은 문제다. 마식령스키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인 국제 수준의 시설은 물론 고속철도(KTX) 경험과 번화한 서울 전경 등은 큰 충격일 게 분명하다. 평창행을 앞둔 북한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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