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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중년여성 팬들, 꽉 짜인 사회 속 공공연한 일탈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피겨 스타’ 하뉴 유즈루 보러 평창 찾은 日 중년여성 팬들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5(Mon) 11:55:09 | 1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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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긴장돼서 밥을 못 먹겠어. 내가 연기하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뛰고 아무것도 못하겠어. 어쨌든 경기장에 빨리 가요.”

 

오랜 친구 가네타니 미와(金谷美和·49)씨는 불안인지 기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으로 아침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전날 그렇게 맛있다고 큰 그릇 가득 담아 내온 빨간 육개장을 비우고 내일도 먹고 싶다고 해서 굳이 안내한 곳이었는데 몇 수저 뜨지 못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무르익어가던 2월17일 아침, 강릉의 경기장 근처에 깔끔하게 차려진 식당에서 저와 가네타니씨는 피겨스케이팅 경기 관람을 위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네타니씨는 대학원 동기로 인연을 맺어 벌써 23년이나 사귀고 있는 친구이자 함께 연구도 하는 공동연구자입니다. 재해지역 조사 때는 같은 호텔에서 1년에 서너 번 정도 일주일씩 머물고 한국에 조사차 나와 여러 곳을 함께 다닌 적도 있습니다. 즉 아주 잘 아는 사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이번 나들이는 뭔가 달랐습니다. 연구자로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선수 하뉴 유즈루(羽生結弦)의 팬으로 경기 관전을 위해 온 것입니다. 누군가의 팬이 된 그녀를 경기 내내 볼 수 있어 신선했습니다. 일상을 잊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식욕조차 잃고 하뉴 선수에 빠진 그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기장에 가보니 그녀와 비슷해 보이는 팬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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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줄 서서도 하뉴에 대한 정보 공유

 

저는 TV를 통해서만 봤던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동행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일본에서 사귄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가 가고 싶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다행히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웠다는 티켓을 구해 함께 관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작 시간보다 일찍 경기가 펼쳐지는 아이스아레나에 들어가 보니 이미 열성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긴 줄이 만들어져 있는 화장실 역시 오늘의 경기에 대한 기대와 염원으로 꽃을 피웁니다.

 

“오늘은 트리플 러츠를 할까요? 아마 오른발이 아프니 어렵겠지요?” 

“글쎄요. 어제 너무 좋았어요. 아름다움 그 자체죠.”

 

주저 없이 그리고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화장실에 줄을 서 있는 잠깐의 시간에도 하뉴 선수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마음을 토닥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관객의 80%는 일본인 관객처럼 보였습니다.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장기를 들고 있거나 남극에 가도 춥지 않을 방한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지요. 일본 미디어가 호들갑스럽게 한국의 겨울은 혹한이라 강조했기에 장내에 도착한 사람들은 한 꾸러미의 겉옷을 들고 있거나, 외투를 벗지 않고 땀을 흘리며 좁은 자리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일본 어딘가의 경기장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일본인 관객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10대부터 80대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주로 여성 관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식당에서부터 내내 함께했던 분은 70대를 바라보는 노부부로 이 경기를 보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합니다. 

 

“4대륙선수권대회(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관전하고 그 장소에서 알게 된 하뉴 선수의 한국인 팬에게 티켓과 숙소를 부탁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늙은이는 이런 곳에 오지 못하지요. 하뉴 선수 팬은 모두 한마음이기에 서로 잘 통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분도 거듭니다.

 

“4대륙대회 때 중국인 팬도 만났는데 한국인 팬이 이번 평창 티켓을 구해 줬다고 했어요. 다음은 베이징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지요. 아마 그때도 서로 만날 것 같아요. 4년 후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하뉴 선수가 그때까지 현역이라면 말이지만요.”

“그 사이에 서로 왕래하고 친구가 되어 있을 거예요.”

 

참 흥미로웠습니다. 평소엔 개인정보는 물론이며 희로애락을 필요 이상으로 내비치지 않는 중년 이상의 중류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뉴 선수 팬일 것이라는 조짐만 보여도 무방비 상태로 말을 나누고 감정을 교류합니다.

 

평창으로 향한 고속전철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나 싶더니 바로 연락처를 주고받습니다. 갖고 있던 하뉴 선수 관련 기념품을 교환하고 서로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갈라쇼에 왔던 어떤 여성 팬은 호외로 나온 신문을 종이가방 가득 가져와 모두에게 나눠주더군요. 그것도 팬들 사이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하뉴 선수 사진이 좋다는) 신문사의 것이었기에 많은 사람이 손을 벌려 받아 갔습니다. 물론 그냥 받지 않고 각자가 갖고 있던 기념품을 그녀에게 주고 가서, 그녀의 다른 종이백 안엔 기념품이 쌓여 갔습니다.

 

강릉의 식당과 길가, 심지어 경기장의 좁은 화장실 안에서 줄을 서서도 하뉴 선수의 팬다운 작은 단서만 보여도 스스로 감정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일념으로 말을 걸고 경계심 없이 답합니다. 모두 하뉴 팬이라는 이름하에 오픈마인드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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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뉴 팬’이라는 이름하에 ‘오픈마인드’

 

경기가 시작되자 모두 예의 바른 관전을 합니다. 잘하는 선수에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혹시 점프에서 실수가 나오면 “아!” 같은 안타까움의 감탄사가 나오지만 바로 힘내라는 손뼉을 더 힘껏 칩니다.

 

피겨스케이팅은 스포츠 경기지만 공연적인 성격도 강합니다. 나라별로 응원을 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높은 수준의 연기를 보고 싶은 마음도 커서 기량이 높은 선수를 힘껏 격려합니다. 좋은 공연을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관중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하뉴 선수의 연기입니다. 다른 선수에게 보냈던 격려의 박수나 잘했을 때의 환성과는 격이 다른 우레와 같은 응원과 환희였습니다. 연기를 마친 뒤엔 예의 바르기만 했던 그녀들이 보이는 유일한 일탈 행위의 하나, 곰 인형을 굵기가 서로 다른 소나기처럼 퍼부어댑니다. 팬이 아닌 일반 일본인에겐 비난받는 행위로 평판이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있는 그녀들은 마냥 행복한 듯이 보입니다.

 

제 친구 가네타니씨는 인형을 던지진 않았지만 하뉴 선수가 연기를 마치자 아침에 느꼈던 긴장이 풀렸는지 허기를 느낀다면서 좋아하더군요. 집에 돌아온 그녀는 팬들이 드나드는 블로그를 심야까지 보며 많은 정보를 연구하듯 탐하고 있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녀가 하뉴 선수의 팬이 되면서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기술과 관련 용어를 마스터하기 위해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다고 들려줍니다. 제가 놀라는 표정을 하자 자긴 아무것도 아니라며 평창까지 올 정도의 팬은 거의 그렇다고 말합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는 팬들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거주지와 관계없이 팬들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하뉴 선수를 중심에 두고 함께 바라보고 있는 사람끼리는 절대적인 신뢰가 통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경기장이나 아이스쇼를 보는 주변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 들여놓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는 10여 년 전 한류 바람을 일으켰던 중년 부인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꽉 짜인 듯한 일본 사회 안에서 그녀들만의 비밀스러운, 그러면서 공공연한 일탈이 시대의 스타를 통해 공인되는 현상에 대해 다음 호에 좀 더 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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