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수 채우기 비상 걸린 상장사들 “소액주주 모셔라”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3.14 09:16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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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보팅 폐지로 달라진 주총 풍속도…전문가들 “주총 결의 요건 완화 등 보완 대책 필요”

 

주주총회 풍속도가 달라졌다. 상장사들이 소액주주들을 주총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들에게 우편을 보내는 기본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고 주주모임 인터넷 카페에 들러 주총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남기기도 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수수료를 내면서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상장사도 늘었다. 찬밥 신세였던 소액주주들의 가치가 부쩍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다. 주주 권익보호와 투명 경영을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인 ‘섀도보팅(shadow voting·그림자투표)’이 지난해 말 폐지된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찬밥’ 신세였던 수액주주 ‘귀한’ 대접

 

섀도보팅은 주총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장사가 많아지자 1991년 도입된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장사가 섀도보팅을 요청하면 한국예탁결제원은 의결 안건의 찬반 비율에 맞춰 정족수를 채움으로써 형식 요건을 갖춰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섀도보팅이 최대주주 또는 경영진 이익을 위한 의결권 행사에 악용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제도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결국 폐지되는 수순을 밟았다.

 

섀도보팅이 폐지되자 그동안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를 이용했던 상장사들은 소액주주 모으기에 바빠졌다. 상장사가 내건 주총 안건을 통과시키려면 출석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한 까닭이다. 여기에 더해 찬성표가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을 넘어야 한다. 명문화된 주총 성립 정족수는 없지만, 발행주식 총수의 25% 이상이 주총에 참석해야만 정상적인 의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특별결의의 경우엔 발행주식 3분의 1 찬성이 필요하다. 한 코스닥 상장사 IR(기업설명활동) 담당자는 “지난해보다 주주총회 준비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우호적인 주주들이 많다고는 보지만 의결 정족수가 채워질지가 아직 불확실하다. 주주 한 명, 한 명이 중요해진 상황”이라며 “이를 위해 주주카페에 주총 참여 독려 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에 전자투표도 도입했다. 주총 개최일도 주총이 집중되는 날을 피했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20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에서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연임에 대한 찬반 발언을 위해 주주들이 손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 같은 노력에도 의결 정족수를 채울지 자신하지 못하는 상장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감사위원 선임을 앞둔 상장사들은 고민이 더 깊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3% 룰은 대주주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3%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대주주가 50% 지분을 갖고 있더라도 감사위원 선임 결의에는 의결권 행사 시 3%의 지분만 인정된다. 감사를 선임하기 위해선 나머지 22%를 채워야 하는데, 소액주주들이나 우호적 지분 참여가 필요하다. 경남 소재 제조업체의 IR 담당자는 “이번에 감사 선임을 해야 하는데 대주주 지분이 많고 주식 수가 많이 분산돼 있다 보니 정족수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며 “다양한 방법으로 열심히 찾아보고는 있지만 주총 가까이 돼 봐야 정족수 확보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전자투표 제도도 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에 소재한 가전업체 A사 관계자는 “지난해 전자투표를 도입했지만 주주 4명만이 의결권을 행사했다”며 “정부가 강조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번에도 전자투표를 도입했지만 기대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말 기준으로 전자투표 행사율은 주식 수 대비 2.1%, 주주 수 기준으로 0.2%로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일부 상장사들이 섀도보팅 폐지로 혼란을 겪으면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장사마다 주주 구성이라든지 처한 상황이 다른데 일괄적인 결의 요건 탓에 주주들의 찬반 여부조차 묻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소액주주 비중이 높은 상장사의 경우엔 부담이 더 크다”며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주총 결의 요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주주총회 의결권제도 개선방안: 섀도보팅 제도 폐지 이후의 대책’ 보고서에서 “섀도보팅 폐지로 주식이 널리 분산돼 소위 ‘소유지배구조가 좋다’고 평가받는 기업일수록 성원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될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며 “출석한 의결권의 과반수만으로 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소액주주 비중 높은 상장사들 부담 가중

 

상장사의 주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코스피 상장사 관계자는 “현행법상 기업이 소액주주와 접촉하려면 성명과 주소 이외에는 접근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며 “섀도보팅을 폐지해 놓고 정작 상장사가 직접 소액주주 주총 참여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전자투표 외엔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상장사와 주주들의 주총을 보는 태도가 이제 근본적인 변화를 맞을 시점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주주들을 적극적으로 주총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경영 안팎으로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강화해 주주들의 참여를 유도해 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단기 매매 위주 투자 행태에선 기업 경영에 관심을 갖기 쉽지 않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투자하고 성공적인 기업의 성과물을 오래도록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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