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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젠더이퀄리티, 젠더평등, 그리고 평등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5(Thu) 12:00:00 |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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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남성, 트랜스젠더남성, 트랜스젠더여성, 트랜스, 트랜스남성, 트랜스여성, 트랜스섹슈얼, 시스젠더, 젠더퀴어, 팬젠더, 폴리젠더….

 

이게 다 무슨 말일까. 호주의 퀸즐랜드 공과대학에서 젠더 연구를 진행하면서 익명으로 한 설문에 등장하는 젠더들이다. 젠더 하면 여성 또는 남성만 생각해 온 우리의 통념이 무색하게도, 이 설문에는 무려 33가지 젠더가 적혀 있었다. 이 수많은 젠더들이 ‘젠더 이퀄리티’라는 말의 앞쪽에 있는 젠더라는 말의 내용이다. 한 인간의 육체에 깃들 수 있는 사회적 성별이 이토록 다양하다니.

 

이렇게 섬세하게 젠더를 구분하는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로 다른 개체를 평등하게 존중하기 위해서다. 아무래도 말의 질감상 ‘양성평등’이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남자와 여자 두 패로 갈라 ‘집단 대 집단으로 평등하다’고 말하는 느낌을 준다. 여성들 간의 차이, 남성들 간의 차이도 많은데, 다 무시된다. 집단 내부의 위계라든가 집단에 섞여들지 못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그러다 보면 동물농장의 슬그머니 바뀐 구호가 현실이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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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이란 말의 양성은 심지어 젠더가 아니라 생물학적 성 구분을 자동으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젠더 이퀄리티는, 사회 내에서 각자가 어떤 성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더라도, 다시 말하면 자기의 정체성이 어떠하더라도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젠더 이퀄리티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에 양성평등으로 번역해 썼다. 이유는 당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젠더를 남성/여성 두 가지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랬다가 젠더가 양성이 아니라 성별 구분임을 좀 더 분명히 하고자 성평등으로 바꾸었다. 번역어만 바꾼 것이다.

 

일부 기독교계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에 성평등 용어에 반대한다고 했다. 당연히 무식한 말이다. 양성평등이란 말을 ‘나머지 모든 차별 승인’의 의미로 바꿔 써도 무방할 정도다. 현실에 존재하는 동성애자들을 ‘없는 존재’로 주장하는 이분들의 행태가 더욱 무참한 것은, 여성가족부를 향한 이 공격이 결국 가부장적 ‘정상 가족’을 제외한 모든 유사가족 형태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상해 본다. 내가 110세 때, 남편과 딸로 이루어진 가족공동체가 아니라 98세에 만난 다른 여성과 함께 살던 중이었을 수도 있고, 그녀가 아픈 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각종 관공서 일을 대신 해 주어야 하며, 마침내 내 주검을 처리해 주어야 한다. 물론 나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사회적 보호와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이 일을 치러내야 한다면, 노인 동반고독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의 이런 보호를 젊은 시절에 받으면 왜 안 된다는 말인가.

 

말 한마디에도 배어 있는 딱 두 쪽뿐인 세상의 폭력성이 새삼 두렵다.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스테레오타입화된 미투 이미지가 소외된 피해자들을 더 외롭게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 대신 펜스룰이 어떻고 하는 그 무식 찬란함이 “성평등이 성폭력을 막는다”는 구호 대신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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