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열풍 타고 여성 시청자 홀린 《미스티》 김남주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5 14:25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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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저항하는 뉴스 앵커 고혜란에 대리만족

 

김남주에게 또 한 번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 따르면, 3월 드라마 배우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김남주가 1위에 올랐다. 김남주가 출연한 《미스티》 역시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TV 화제성 드라마 부문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시청률 40%를 넘긴 국민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2위로 제쳤다. 《미스티》의 시청률은 8% 수준이지만 트렌드를 주도하는 청장년 여성들 사이에서 큰 화제다. 《미스티》에서 김남주가 바른 립스틱은 매출이 전년 대비 36배나 상승했다. 2009년 MBC 《내조의 여왕》에서 억척스럽게 남편을 내조하는 전업주부 역할, 2012년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드라마 제작사 PD 겸 주부 역할로 나왔을 때처럼 인기를 끄는 것이다.

 

이번엔 뉴스 앵커 역할이다. 프라임 시간대 간판 뉴스의 단독 앵커로 무려 7년간이나 자리를 지켜온 최고의 방송 기자 고혜란이 김남주가 연기하는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그녀가 5년 연속으로 올해의 언론인상을 받는 화려한 순간부터 시작한다. 기자 인생의 정점에 선 바로 그때 위기가 찾아온다. 나이 때문이다. 방송국 경영진은 나이 먹은 그녀를 한직으로 내보내고, 보다 젊고 예쁜 후배를 앵커 자리에 앉히려 한다.

 

드라마 《미스티》의 한 장면 © 사진=Jtbc 제공


 

CF처럼 그려진 고혜란에 시청자들 열광

 

그녀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특종을 따내려 한다. 바로 베일에 가려진 인기 프로골퍼 케빈 리의 독점 인터뷰다. 케빈 리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가 10년 전에 동거했던 옛 애인이라는 걸 알아챈다. 그 인연으로 케빈 리 인터뷰는 성사시키지만, 이젠 과거를 폭로하겠다며 내연관계를 요구하는 케빈 리에게 시달린다. 집안에선 빨리 집에 들어앉아 아이를 낳으라는 시어머니 눈치에 시달린다. 남편은 과거 고혜란이 앵커가 되기 위해 아이를 지운 일 때문에 그녀를 백안시하며 이혼까지 요구한다. 젊고 예쁜 후배 기자의 위협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케빈 리가 살해당하며 고혜란이 용의자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위기가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것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커리어 우먼 고혜란의 모습에 시청자가 열광하고 있다.

 

작품은 과거 이영애가 나왔던 CF ‘산소 같은 여자’ 시리즈의 2018년 유부녀 버전 같은 느낌이다. ‘산소 같은 여자’는 이영애가 각각의 전문직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이미지를 나열해 큰 호응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지금보다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영애가 보여준 여성의 사회활동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실에 답답함과 무력함을 느끼던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고, 해당 시리즈는 가장 성공적인 CF 중 하나로 기억될 수 있었다.

 

《미스티》는 고혜란의 당당하고 멋진 이미지를 나열한다. 방송국에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프로 정신으로 보도국 회의를 주도한다. 그녀보다 고참인 남자 기자도 고혜란을 논리로는 당해 내지 못한다. 남자 동료들은 난제를 척척 해결하는 고혜란을 뒤에서 욕하는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질책하는 국장 앞에서도 고혜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힌다. 마치 커리어 우먼 패션쇼라도 하는 듯 의상을 떨쳐입고 ‘워킹’하는 모습을 작품은 슬로 모션으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CF의 특징이 스토리 맥락과 상관없이 멋있는 이미지를 나열한다는 건데, 《미스티》가 바로 그렇다. 작품 초반엔 성공을 향한 욕망으로 가득 차 윤리 따윈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그려졌는데, 중후반엔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변신한다. 출세욕의 화신 같던 사람이 출세가도에 큰 영향을 미칠 권력자, 대기업들을 공격하는 보도를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악을 파헤치는 기자의 모습이 멋있기 때문에 해당 이미지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멋진 여성, 강한 여성, 당당한 여성, 열정적인 여성, 정의로운 여성 등의 이미지를 김남주가 성공적으로 구현해 내자 여성들이 반응했다.

 

여성 시청자들이 고혜란에게 열광한 또 다른 이유는 공감이다. 고혜란이 여성이라서 겪는 위기를 다른 여성들도 비슷하게 겪는다. 고혜란은 말한다. “선배들은 뉴스나인 앵커 맡고 보통 1년 차에 국장 달았어요. 전 지금 7년 차예요. 여전히 직급은 부장이에요. 왜? 여자니까.” 유리천장이다. 여성의 진급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말이다. 고혜란은 누구보다도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그녀를 위협하는 후배는 능력 면에서 미숙한데도, 젊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남성 간부들의 총애를 받는다. 여성을 꽃으로 보는 태도. 우리 조직문화의 고질병이다. 남성이라면 경력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무게감이 더해지고 위상이 올라가겠지만, 고혜란에겐 이제 그만 옆으로 빠지라는 압력뿐이다. 그 때문에 고혜란은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다가 스토커 같은 옛 애인에게 덜미를 잡혀 남편의 의심을 사고 살인 용의자로까지 몰린다.

 

고혜란은 임신과 앵커직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했다. 남성이라면 이런 양자택일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다. 한국 최고의 커리어 우먼이지만 아이 못 낳은 일로 시어머니 앞에선 그저 죄인일 뿐이다. 국장 앞에서 주머니에 손 꽂아 넣고 받아치는 고혜란도 시부모 앞에선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고혜란이 앵커일을 훌륭히 해내자 돌아온 건 “여자가 저 정도 자리에 올라가려면 좀 독하겠어요”라는 뒷담화다. “더럽게 힘드네. 사는 거.” 고혜란의 한탄이다. 사회활동과 집안일을 동시에 하며 ‘슈퍼우먼’을 요구받는 이 땅의 여성들이 고혜란에게 공감한 이유다.

 

드라마 《미스티》 제작발표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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