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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야 산다” 비수기 극장가의 흥행 공식

최근 극장가 흐름과는 ‘다른 기획’으로 승부하는 《곤지암》 《콰이어트 플레이스》 《덕구》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8(Sat) 10:00:00 |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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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과 4월은 극장가의 전통적 비수기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흥행작이 터졌다. 그 주인공은 250만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 《곤지암》. 공포영화 최적의 개봉 시기로 일컬어지는 여름철도 아니고, 그 흔한 스타 캐스팅 하나 없이 일군 흥행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외국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이순재 주연의 가족영화 《덕구》 등도 차별화된 전략으로 잔잔하게 흥행몰이 중인 영화들이다. 각 영화의 전략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 비결은 하나다. 최근 극장가의 흐름과는 ‘다른 기획’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지금까지 가장 뜨겁게 화제의 중심에 섰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곤지암》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한국 공포영화 시장은 이 영화 한 편으로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하준(위하준)을 포함한 7인의 체험단이 ‘공포 체험의 성지’라 불리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탐험하며 겪는 기이한 일들을 다룬 영화다. 1996년 폐업한 곤지암 정신병원을 둘러싸고 떠돌던 괴담에 제작진이 상상력을 덧입혀, 환자들의 집단 자살과 병원장 실종 이후 섬뜩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는 공포의 장소로 설정했다. 

 

개봉 전 《곤지암》은 곤지암 정신병원이 미국의 대표적 방송사 CNN이 선정한 7대 공포 장소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과, ‘한국형 파라노말 액티비티’나 ‘한국형 블레어 윗치’라 입소문을 내는 데 주력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2007~12)와 《블레어 윗치》(1999)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즉 기록 영상을 가장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공포영화에 녹여낸 대표적 영화들이다. 명백히 가상의 상황이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화면 등으로 공포를 배가시키는 것이다. 《곤지암》은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공식에 충실해 전체 촬영분 중 90%가량을 출연 배우들이 직접 찍었다. 그 결과 마치 관객이 직접 현장을 걷고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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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민감하게 읽고 역발상으로 접근한 공포영화
 

주인공들을 인터넷 방송 진행자로 설정한 것도 주효했다. 자연스럽게 유튜브(Youtube)와 SNS에 익숙한 10대와 20대 초반이 타깃 관객층이 됐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1인 미디어 활동을 펼치며 구독자 수에 따라 고수입을 올리는 ‘크리에이터’를 향한 관심이 높다. 이 유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곤지암》의 경우 실제로 10대 예매율이 동시 개봉작들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간혹 독립영화에서 인터넷 방송 등의 소재를 활용한 《소셜포비아》(2014) 등의 작품이 등장했지만, 상업영화에서 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곤지암》이 최초다. 10대를 중심으로 흥행이 견인되다 보니 “극장 안에 (놀란 관객들이 쏟은) 팝콘이 날아다녔다” 등의 재치 있는 관람 후기가 SNS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28일 개봉한 《곤지암》은 개봉 5일째 100만 명을 돌파하며 대박 조짐을 알렸다. 3월31일 기록한 관객 수 42만3000여 명은 역대 공포영화 일일 최다 스코어였다. 이후 개봉 4주 차에 접어든 현재 관객 수는 260만 명에 육박한다. 오래도록 순위에 변동이 없던 한국 공포영화 흥행 순위 역시 뒤바뀌었다. 《곤지암》은 220만 관객을 동원했던 《폰》(2002)의 흥행 기록을 제치고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315만 명이 관람했던 《장화, 홍련》(2003)의 기록까지 뒤바꾸기는 어려워 보이나 유의미한 기록이다. 순제작비 11억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스타 배우 기용 없이 오직 아이디어와 입소문만으로 승부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곤지암》의 흥행은 뜻하지 않게 4월12일 개봉한 외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도 호재가 됐다. 공포영화 장르를 향한 관심 자체가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 또한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운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에게 공격받는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가족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갑작스러운 사운드로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여느 공포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가 사운드를 활용하는 방식은 정반대다. 소리를 내는 순간 괴생명체의 공격을 받는다는 설정 덕분에 ‘소리 내면 죽는다’는 공식을 적극 활용한다. 주인공들이 눈앞에 바짝 다가선 괴생명체 앞에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고 있는 극한 침묵이 오히려 주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내에서 30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는 이미 전 세계에서 1600억원이 넘는 흥행 수익을 내며 제작비 대비 9배의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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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구》, 진심이 모두를 울렸다

 

《덕구》 역시 차별화된 기획으로 비수기 극장가에서 잔잔하게 선전(善戰)한 영화다. 죽은 아들 대신 어린 손주들과 살고 있는 일흔 살 할아버지(이순재)는 암 판정을 받고, 아이들에게 엄마를 다시 찾아주려 한다. 몇 년 전 그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외국인 며느리를 모질게 내쫓았던 터다. 부모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키우지만,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과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손주들이 너무 어리다.

 

어린이, 노인, 동물,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나서면 흥행은 어렵다는 불문율이 있다. 《덕구》는 이에 정면으로 맞선 영화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과 아이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까지 엮었다. 이 영화의 지향점은 자극적이고 속도감 있는 영화들이 선전하는 최근의 추세와는 정반대다. 모두가 안다고 생각했던, 진부한 소재라고 치부하지만 실상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가족 간 사랑과 정은 이 영화 안에서 ‘보편의 힘’을 발휘한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었다’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영화다’ 등의 관객평은 중장년층까지 극장으로 이끌었다. 《집으로…》(2002), 《마음이…》(2006)와 같이 전 연령층이 함께 볼 수 있는 따뜻한 가족영화가 드물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덕구》는 신선한 기획이 될 수 있었다.

 

《덕구》를 연출한 방수인 감독은 8년간 전국 각지를 돌며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자극적 장치나 주인공과 대치하는 뚜렷한 악역이 없는 것은 감독이 애써 착한 시나리오를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라, 취재한 내용을 취합해 녹인 결과다. 방 감독의 영화적 스승인 이준익 감독이 시나리오를 읽고 ‘책상에 앉아서 쓴 시나리오는 아니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을 정도다. 시나리오의 진심을 알아본 이순재의 노 개런티 출연도 화제가 됐다. 젊은 스타 배우를 앞세워 흥행을 견인하려는 시도는 많은 데 반해, 연륜 있는 장년층 이상 연기자들을 위한 작품이 흔하게 만들어지지 않는 오늘날의 풍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5억원의 저예산으로 완성된 《덕구》는 4월5일 개봉해 관객 수 25만 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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