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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월드컵 66일 전에 감독을 경질했나

유례없는 시점에 할릴호지치 감독 경질한 일본 축구의 속내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9(Sun) 16:13:01 |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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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민적 특수성은 준비성이다. 틈을 허락하지 않는 철저한 계획으로 단계를 밟아간다. 목적 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인내하며 그 완벽한 초기 계획을 따른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대표팀 운영에서 일본은 늘 월드컵이 열리는 4년 단위로 치밀한 준비를 한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다음 월드컵을 치를 감독을 선임한다. 가모 슈 감독을 경질하고 오카다 다케시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엔 4년 임기 중 사령탑을 교체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과정보다 결과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지막 단계에서 집중 투자로 효과를 냈다. 2002 한·일월드컵이 대표적이었다. 필립 트루시에 감독에게 4년을 투자한 일본은 16강에 그친 반면, 거스 히딩크 감독과 1년6개월을 함께한 한국은 4강에 올랐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일본은 “3년6개월간 우리가 앞서도, 마지막 6개월은 한국이 역전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대로 한국은 일본의 그런 치밀한 계획과 준비성을 부러워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 과정에서 일본이 보여준 모습은 180도 다르다. 브라질월드컵이 끝나고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러시아월드컵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던 일본은 6개월 만에 감독을 교체해야 했다. 아기레 감독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를 맡을 당시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아시안컵 직후 사임했기 때문이다. 아기레 감독과 작별한 일본은 2015년 3월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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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릴호지치의 일본 축구 개조는 왜 실패했나

 

할릴호지치 감독 선임 당시만 해도 한국은 부러운 시선으로 일본을 봤다. 바로 브라질월드컵에서 알제리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에 참패를 안기며 16강에 진출했던 명장(名將)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러시아를 꺾고, 독일과 명승부를 펼쳤던 감독을 데려간 일본은 러시아월드컵에서만큼은 한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의 경쟁자를 넘어 최고의 성적을 내겠다는 의욕이 넘쳤다. 할릴호지치 감독도 “일본 축구의 세계화”를 외치며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올 4월9일 일본축구협회는 할릴호지치 감독 경질을 전격 발표했다. 니시노 아키라 기술위원장이 남은 두 달 일본 대표팀을 맡아 러시아로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다. 월드컵 개막을 불과 66일 앞둔 시점이었다. 보편적 시각으로 봐도 그 시점에 감독 경질과 교체는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런 선택을 일본이 했기에 더 의외였다. 게다가 할릴호지치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을 1위로 통과시켰기에 경질 명분도 약했다.

 

일본 언론은 갑작스러운 경질에 놀라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럴 만했다”는 분석도 했다. 이미 경질 발표 전부터 대표팀 운영 방식과 최근 경기력을 놓고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낙제점을 준 터였다.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위기를 불러온 기폭제를 제공한 것은 공교롭게 한국 축구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동아시안컵 한·일전에서 일본은 1대4 완패를 당했다. 한국과 달리 월드컵 최종예선을 여유롭게 통과해 자신만만해하던 일본 축구로선 현실을 깨달은 한판이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기술위원회에 출석해 당시 패배를 분석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시점부터 할릴호지치 감독을 둘러싼 대표팀 내·외부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 때문에 묻히거나 소리 내지 못했던 의견과 증언이었다. 실제로 할릴호지치 감독은 과거 알제리 대표팀과 유럽 내 클럽을 맡았을 때도 직설적이고 모난 성격 탓에 선수단, 팀 수뇌부와 자주 마찰을 일으키는 캐릭터였다. 지난 브라질월드컵 때도 한국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4대2 완승을 거두기 전까지 언론과 살벌한 언쟁을 이어왔다. 일본 대표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본 축구가 세계에서 통하려면 아직 멀었다며 선수와 언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부임 후 일본 축구의 체질을 개조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패스 중심의 조직적 축구 틀에서 벗어나 듀얼(프랑스어로 ‘일대일 대결’을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에서 통하려면 피지컬과 개인 전술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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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도 비즈니스? 스폰서 눈치 본 일본축구협회

 

문제는 접근 방식이었다. 선수들의 체지방을 체크하고,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다음 소집에서 제외했다. 그 잣대와 결과가 서서히 언론에 노출되며 선수들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게다가 할릴호지치 감독은 자신이 지향하는 축구에 맞지 않다며 대표팀 내 영향력이 높은 혼다 게이스케(파추카), 오카자키 신지(레스터 시티),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 등 해외파를 장기간 대표팀에서 제외했다. 선수단 내부에서는 감독의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그러나 할릴호지치 감독은 최종예선을 1위로 통과하며 그런 불만을 잠재웠다.

 

월드컵이 가까워지고, 더 이상 아시아 팀이 아닌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면서 일본 대표팀의 성적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11월 유럽 원정에서 브라질·벨기에에 패했다.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에 당한 3골 차 완패는 일본 축구가 30년 만에 당한 치욕이었다. 만회를 위해 3월 유럽 원정에서 말리·우크라이나와 맞붙었지만 1무 1패였다. 세계적 기준이라는 할릴호지치 감독의 축구가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 모순 앞에 선 것이다.

 

그때부터 감독을 향한 비판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불만을 가진 선수들은 “원래 장점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언론은 감독이 내부 장악에 실패했다며 대표팀을 흔들기 시작했다. 지난 3월 A매치 2연전 후 감독과 선수들이 충돌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대표팀의 경기력은 물론 주변 분위기마저 진흙탕 싸움으로 향하자 팬들의 여론도 악화됐다. 경기력과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바닥을 치며 월드컵 입장권 구입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질 통보를 받은 할릴호지치 감독은 “거짓과 날조”라며 일본축구협회를 강력히 비판했다. 선수들과의 충돌은 사실무근이며, 스폰서의 눈치를 본 협회가 비즈니스 문제로 자신을 경질하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일본축구협회가 연간 3000억원의 거대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기업들의 후원과 방송사의 중계권에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갈등과 부진으로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심리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스폰서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실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할릴호지치 감독의 폭로와 별개로 스폰서들의 의견이 경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최근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후원 기업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다시마 고조 회장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 “선수단 내 소통과 신뢰가 붕괴돼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나카타 히데토시를 비롯한 일본의 유명 축구인들은 이번 경질에 대해 “판단의 타이밍이 한참 늦었다”며 월드컵 실패 가능성이 큰 자충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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