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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언어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여성이 똑부러지게 말하는 걸 금기시 하는 사회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3(Thu) 17:00:00 |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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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진달래꽃》 화자는 여성인가? 문학사가들은 이 시의 화자가 여성이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이 질문을 시론 수업의 학생들에게 한 적이 있다. 학생들은 물론 김소월이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시의 화자는 반드시 시인 자신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설명한 다음 물어보았을 때도, 여성 화자가 맞는다는 답변은 절반이 못 되었다. 가장 재미있던 주장은 이러했다. “무슨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아니고, (문학연구자들의) 편견이 심한 것 같아요.”

 

이 의견 자체와 별개로, 이렇게 말한 학생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무의식적으로 ‘여자’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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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나는 말을 똑 부러지게 한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다. 대여섯 살 적 이야기다. “할아버지 진지 드세요” 같은 말뿐 아니라, “저는 지금 심부름하고 싶지 않습니다. 할 일이 있습니다” 같은 말까지, 제법 정확한 문장을 구사해 명료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나의 이런 말하기 방법은 자주 지적질을 당했다. 요약하면 “여자애가 말을 그렇게 똑 부러지게 하니 정 없다”라든가, “못됐다” 같은 지적은 예사고 “주는 것 없이 얄밉게 말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정확하게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으면 말 자체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중에 깨달은 것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라 나의 말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선생님 그 설명은 잘못되었습니다” 대신에 “선생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어물어물 말해야 했던 것이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 대신 “네 생각은 어떠니”라고 해야 남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 있다니, 아니,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니, 도대체 여성은 어떻게 말해야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걸까? 이런 경험을 수많은 여성이 한다. “여자처럼 말하라.”

 

손아람 작가는 여성들의 말하기에 개입하는 사회적 압력의 비밀을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책과 생각들을 들을 때 깜짝 놀라고, 내가 깜짝 놀랐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녹화가 시작되면… 출연자들은 눈높이를 희미하게 감추고, 평소보다 더 부드럽고 더 어눌하게 사랑스럽고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몇 사람 없는 스튜디오가 온 세계의 편견과 감시에 둘러싸인 듯한 기분이 든다.”

 

더 보탤 것도 없이 정곡을 찌르는 이 묘사는, 여자처럼 말하기 위해 이성적 언어가 아닌 감성적 표현을 사용하고, 에둘러야 하고, 얼버무려야 하는 경험을 거의 모든 여성들이 하고 있음의 증빙이다. 여성은 언어 표현상 제대로 된 분명한 생각을 지녀서는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책을 소개하는 방송에 출연하는 작가와 아나운서까지도.

 

북의 현송월과 김여정이 내려왔을 때, 그 여성들의 똑 부러지는 말투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남한 여성들도 똑 부러지게 말할 줄 안다. 똑 부러지지 말라는 사회적 압력만 없다면.

 

위에서 ‘같아요’라고 말한 학생은 남자였다. 내가 교수였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같아요’는 여성의 언어가 아니라 약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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