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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在外)국민’을 ‘제외(除外)국민’으로 만드나

국회 미적대다 국민투표법 개정 무산…탄식하는 재외국민

구민주 기자·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6(Wed) 11:00:00 |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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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당시 여야 후보 모두 앞다퉈 공약으로 내걸었던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가 무산됐다. 이유는 국민투표의 대상과 방식을 규정하는 ‘국민투표법’의 일부 조항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 즉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데 근거가 돼 줄 ‘법’이 부재한 탓이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14조1항이다. 해당 조항은 국민투표 대상을 ‘관할 구역 안에 주민등록이 돼 있거나 국내 거소신고가 돼 있는 재외국민’으로만 규정한다. 즉, 국내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거나 국내 주소지를 두지 않은 채 외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국민투표권 행사가 제한돼 왔던 것이다.

 

2014년 7월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민투표권은 대한민국 국민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인정돼야 하는 권리’라는 게 근거였다. 단, 헌재는 여러 행정적 문제를 고려해 즉각 위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2015년 12월31일까지 잠정적으로 해당 조항을 유지한 채 국회에 법 개정을 위한 시한을 줬다. 그러나 헌재 판결 4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국회는 효력을 잃어버린 해당 조항을 고쳐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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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헌재 권위 깔아뭉개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선 선거인명부 작성 등 절차를 고려해 선거일로부터 50일 전인 4월23일까지 법 개정이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국회는 차일피일 개정안 통과 절차를 미뤄왔다. 그러다가 최근 각종 이슈들로 국회 파행을 거듭하면서 결국 마지노선을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동시 투표가 무산된 4월24일 국민투표법 개정이 수년간 방치된 데 대해 “저의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직접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여야는 국민투표법 개정과 개헌 국민투표 무산에 대해 서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이 개헌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개헌 전제조건인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의 발목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지난 3월 발의한 청와대 개헌안을 ‘관제개헌’이라 명명하며 국민투표법 개정을 강조하는 정부·여당을 ‘물타기’라고 비판했다.

 

국민투표권 보장의 기회를 잃은 재외국민들은 이번 법 개정 무산이 여야를 떠나 국회 ‘전체’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회가 애초에 개헌과 국민투표법 개정을 별개의 문제로 다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따지고 보면 전혀 별개의 사안인데, 개헌을 둘러싼 정쟁에 휩쓸려 국회가 재외국민 선거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 의무를 다하지 못한 건 아주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재외국민 선거권과 투표 간소화 등을 꾸준히 제기해 온 이종걸 민주당 의원 역시 5월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재외국민들이 선거권 박탈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국회 내 입법 방해세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될 문제”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재외국민의 투표권은 10년여의 긴 논쟁을 거듭한 끝에 서서히 보장돼 온 권리다. 2007년 6월 헌법재판소가 재외국민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공직선거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투표권을 위한 법 개정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2009년 국회가 해당 조항에 대한 개정안을 최종 통과시켰고, 2012년 19대 총선부터 재외국민들의 투표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대선에선 투표율 75.3%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원·대통령 선거 참여가 가능해진 후 재외국민들은 선거뿐 아니라 국민투표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2014년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논란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

 

김재기 재외한인학회 회장은 “오랜 싸움 끝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얻은 국민투표권 문제를 국회가 묵살하는 건, 곧 국회가 헌법재판소 권위를 깔아뭉개고 있는 행위나 매한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이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이니 향후 대통령이 시행령으로라도 국민투표법 개정을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김 회장은 국회의원·대통령 선거에 대한 투표권에 비해 국민투표권에 대한 재외국민들의 다소 약한 관심도 이번 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1987년 이후 국민투표를 겪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개헌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기 때문에 일부 적극적인 한인단체 외에 일반 재외국민들은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재외국민들이 법적으로 지방선거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정치권이 이들의 여론에 비교적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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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 선거권 부여에 회의적 시각도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 보장 논의를 떠나, 국내 선거에 대한 이들의 투표권이 정말 필요한지 회의적인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납세·병역과 같은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해당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참정권 보장이 자칫 국내 정치권에서 이들의 세(勢)를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교민사회는 이미 대부분 정치적으로 양분돼 있는데 참정권이 보장되면 될수록 이들 사이의 정치적 분열은 더욱 격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칫 표를 노리는 국내 정치인들에 의해 재외국민들이 정치 싸움에 휘말려 대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주장은 재외국민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김동석 미국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는 “재외국민 선거에 예산을 대거 투입하지만 그에 비해 늘 아주 낮은 투표율을 보여왔다. 선거법 위반 문제 발생 시 한국 선거법으로 처벌이 어려워 난해한 상황에 직면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이사는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한국 정치 사정과 정치인 면면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투표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자칫 선거 결과가 왜곡될 수 있음도 우려했다. 실제 재외국민 수는 2017년 기준 약 267만 명이었다. 이들의 표수는 선거 당락과 국민투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갖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권리의 무조건적인 보장을 주장하기에 앞서, 좀 더 신중한 고민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내는 물론 해외 한인사회에서도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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