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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어린이책이 덜 팔린대요

인간이 노동력조차 못 될 때 저출산이 온다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3(Tue) 11:00:00 |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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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1987년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마도 지난주 다녀온 2018서울국제도서전에서 들은 한마디가 꼬리를 물고 새끼를 친 결과이지 싶다. “성장세를 유지하던 어린이책 시장이 작년부터 축소되고 있다 합니다.” 지속되는 저출산의 여파일까? 

 

대성황을 이룬 도서전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젊은 여성관객이었다. 페미니즘의 약진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어린이책의 퇴조와 페미니즘의 약진에 상관관계가 과연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출산의 이유가 성차별적 한국 사회에 여성들이 저항한 결과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았다. 이번 도서전의 가장 인기 있는 책 중 한 권이었던 《82년생 김지영》이 그려 보이는 것처럼, 너무나 고단한 엄마로서의 삶을 이제 이미 알기 때문이라고.

 

1987년 6월이 다가올 때, 나는 임신 중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임신중독과 싸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기를 썼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장차 태어날 아이의 미래가 군사독재 타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가 상상한 나라는 지금 언어로 말하면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기꺼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험을 해도 되는 그런 나라.

 

1987년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볼 때, 성별분업적 노동을 포함해 과거와 같은 성차별이 유지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붕괴되는 중이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차별의 문화는 여전한데 차별의 토대가 되던 사회구조는 붕괴되는 중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나 사회에 대한 신뢰는 거의 깨어지고 없다. 한 개인이 맞닥뜨리는 삶의 조건도 훨씬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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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할 때

 

버거운 노동에 몸을 바쳐야만 지상의 방 한 칸은커녕 일용할 양식이 겨우 확보되는데, 미래의 아이를 위한 여유를 비축할 수 있는 여성이 있을까?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공동체를 꾸려갈 믿을 수 있는 반려자도, 든든한 국가도, 이해심 많은 사회도 없는데 미혼모가 될 여성은 얼마나 될까? 여성에게 요구되는 돌봄노동의 덕성은 면제되지 않는데 노동자로서의 새로운 의무는 다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할 여성은 또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점점 더 인간의 노동은 기계의 노동으로 대체되고 더 값싼 노동이 되어 가는 현실 그 자체가 페미니즘의 적이다. 어떤 엄마가 그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 길러 보내고 싶겠는가. 

 

저출산의 위험을 소비자가 줄어들고 노동력이 줄어들고 조세부담자가 줄어드는 위험으로 인식하는 언론의 기조가, 정책의 언어가 페미니즘의 적이다. 이 사회의 근본 가치관이 변화하지 않는 한, 노동력에 불과하고 심지어 노동력도 못 되는 여성들이 엄마가 되고자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기꺼이 하려 할까? 세계관과 가치관 자체를 다시 구성하는 노력 없는 어떤 ‘양성평등’ 정책도 헛되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관점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해법이다. 

 

아이를 낳는 일보다, 그 아이를 키워내는 일보다 더 강렬하게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표현하는 일은 없다.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소년 쿠르디의 시신이 지중해 바닷가에 밀려왔을 때 세계가 울었던 이유다. 그런 희망을 좋아서 포기하는 여성은 드물다. 1987년과 지금은 전혀 다른 세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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