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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부 무관심 속에 무너진 ‘마약 청정국’

1인당 치료 예산 ‘5000원’꼴∼중독자 중 2%만 국가지정 전문기관 찾아 치료

김종일·조유빈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3(Tue) 11:02:31 |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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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성실하고 머리가 좋았다.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것도 약대에. 국가고시에 합격해 약사가 됐다. 이른바 ‘엄친아’다. 부모님은 강남에서 잘나가는 음식점을 운영한다. ‘강남 최고의 현금 부자’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남부러울 게 없다. 하지만 숨겨진 아픔이 있다. 사랑하는 이가 동성(同性)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 상처를 받았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 마약이라는 늪에 빠졌다.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애인이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 믿었던 엄마는 보석금을 내주지 않았다.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나오는 ‘해롱이’ 유한양(이규형 분)은 마약 상습 복용자다. 보다 못한 애인과 부모 손에 감방에 머물게 된다. 그는 감방에서도 감기약 등을 계속 과다 복용한다. 약 기운으로 좀비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해롱거린다고 해서 ‘해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간이 약이었다.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원망은 점차 자책으로, 자책은 반성으로 이어진다. 결국은 독하게 약을 끊기로 결심한다. 출소할 때는 정말 약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출소 직후 경찰의 함정수사에 빠진다. 결국 해롱이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대고 다시 감옥에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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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국내 마약 사범 30만 명 육박”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마약과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냈다. 먼저 마약은 한번 손대면 정말 끊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처절한 노력에도 해롱이는 단 한 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을 바로 눈앞에 두고 마약에 다시 손을 댄다. 마약 중독의 무서움에 대해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또 드라마는 ‘서울대 출신 약사’ ‘부잣집 자식’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는 해롱이를 통해 마약 중독이 학력이나 소득 등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마약 중독자를 국가가 어떻게 바라보고 관리하는지를 여실히 그려냈다. 해롱이는 감방에서 감기약 등을 과다 복용할 때도, 약을 끊기 위해 사투를 벌여 나갈 때도 체계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다. 재활 프로그램은 언감생심이다. 국가는 형기를 채운 해롱이에게 다시 ‘유혹의 덫’을 놓는다. 국가는 마약 중독에 대한 치료나 재활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마약 중독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다시 감옥으로 보내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통계를 하나씩 뜯어보면 아찔한 현실이 드러난다. 우선 통계는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는 통설이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7 마약류 백서’에 따르면, 처벌받은 마약류 사범은 2012년 9255명, 2013년 9764명, 2014년 9984명, 2015년 1만1916명, 2016년 1만4214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통상적으로 국민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마약 청정국가’로 인정한다. 한국은 이미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약 30명이다. 

 

문제는 이렇게 수사기관에 적발된 수치가 마약 중독자의 전체가 아닌 빙산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단속되지 않은 마약 중독자가 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중앙경찰학교 초대 마약 교관 출신인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마약류를 투약하지만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범죄(暗數犯罪)를 감안해야 한다”며 “유엔은 암수범죄를 계산할 때 검거된 수치에 20배를 곱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마약 사범은 28만4280명으로 30만 명에 육박한다. 

 

마약 사범의 급증은 그만큼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편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마약 거래는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非對面)’ 방식으로 주로 이뤄진다. 그만큼 단속은 쉽지 않다. 게다가 마약을 구입하기 위한 비용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필로폰은 1회 투약분(0.03g)이 10만원, 대마초 1회분(0.5g)은 1만원, 엑스터시 1정에 3만~4만원 선이다. 위험도에 비해 가격 자체가 아주 높지 않은 셈이다. ‘단골’이 되면 가격은 더 낮아진다. 

 

국내 마약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정작 이를 막을 수사 인력과 치료예산은 오히려 줄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마약 단속 관련 예산은 최근 5년간 역주행했다. 2013년 5억7836만원이었던 마약 단속 관련 예산은 2015년 6억원을 넘겼지만 2017년 다시 5억3667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마약 퇴치 홍보 포스터 제작 등 홍보예산을 제외한 순수 마약 수사비는 3억원에 불과하다. 마약 수사비는 2015년까지는 4억원이었는데 2016년부터 3억원으로 줄었다. 

 


 

경찰 마약 단속 전담인력 142명뿐

 

마약 단속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방청 마약수사대 기준 전국의 마약 단속 경찰 인력은 작년 142명에 그쳤다. 5년 전인 2013년과 같은 숫자다. 마약류 사범은 2013년 9764명에서 2017년 1만4214명으로 50% 넘게 증가했는데 수사 인력과 예산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기준 서울의 마약 수사대 인원은 27명에 불과하다. 큰 공항과 항구가 있어 마약 밀매 시도가 꾸준한 부산과 인천도 각각 13명, 10명에 그친다. 

 

익명을 요구한 마약 수사 관계자는 “경찰이 언론의 주목도가 높은 정치인·연예인 등의 마약 수사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한정된 예산과 수사 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 즉 여론의 환기를 노리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SNS 등 기술의 발전으로 마약 거래 수법은 점점 단속이 어려울 만큼 진화하고 있다”며 “마약 범죄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만큼 예방이 최선이다.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마약과 관련해 국가의 직무유기는 수사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고 재활시켜 다시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돌려보내는 일에는 더더욱 무관심하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을 전국적으로 22개 지정해 놓고 있다. 지정된 총 병상 수는 330개다. 그런데 실제로 마약류 관련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은 사실상 2~3곳뿐이다. 2016년 치료 252건 중 강남을지병원(146건)과 국립부곡병원(86건) 두 곳이 무려 92%를 맡았다. 나머지 20곳은 모두 5건 이하다. 그마저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의 요청을 받고 마지못해 환자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으로 알려졌다. 마약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마약 중독 치료와 재활은 부곡병원과 을지병원 등의 선의에 기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의지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말이다. 

 

병원들이 마약 중독 환자를 꺼리는 이유는 뭘까. 돈 문제가 크다. 정부의 지원 예산이 턱없이 적어 약물 중독 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의 재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약물 중독자는 마약류관리법과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규정에 따라 최대 1년간 전액 무료로 치료 지원을 받는데, 복지부의 2017년 치료보호예산은 7200만원에 불과하다. 입원치료에 월 200만원가량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가 배정한 예산 7200만원은 환자 3명의 1년 치 입원 치료비에 그친다. 월 50만원가량 드는 외래치료를 감안해도 12명이 1년간 치료받을 수 있는 금액에 불과하다. 2016년 적발된 마약 사범이 1만4214명이다. 1인당 배정된 치료 예산이 5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마약 중독자 치료 예산은 2009년 2억3200만원에서 2011년 1억원 수준으로 줄어든 이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예산의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했다. 

 

 

치료보호기관 찾는 비율 2%에 불과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정한 치료보호기관을 찾는 마약 중독자는 많지 않다. 2008년 366명의 중독자가 정부 지정 치료보호기관을 찾았지만, 지난해에는 330명에 그쳤다. 한 해 적발되는 마약 사범이 1만5000명에 육박하는 점을 고려하면, 마약 중독자가 치료를 위해 국가가 지정한 전문기관을 찾는 비율은 2.2%에 불과한 셈이다. 

 

전문가들도 국가가 마약 중독 예방과 치료·재활에 의지가 없다고 질타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국가가 마약 중독자 검거에만 급급하다”며 “재활 및 치료와 관련된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아 현재 한국 마약 중독자들의 사회화 가능성은 ‘0’(제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전 회장은 “중독자가 치료되지 않으면 ‘마약의 수요와 공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수사와 예방, 재활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일관된 정책 수립이 가능한 국가적 통합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관련기사 

☞ “마약 사범 100만 명, 사회화 가능성은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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