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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조건 묻는 거장 감독의 시선 《어느 가족》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작품으로 관심 모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Fri) 17:09:47 |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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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맺어져야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같이 살을 맞대고 의지하며 끼니를 나눠 먹는 구성원들은 가족 말고 어떤 말로 정의 내려야 할까. 그것은 누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어느 가족》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을 가진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다. 

 

원제인 ‘만비키(まんびき·물건을 사는 척하며 훔치는 좀도둑) 가족’은 그가 영화에서 그린 가족의 모습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살아가던 한 가족이 우연히 길에서 발견한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이윽고 어떤 사건들로 인해 이들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난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작품으로, 이전보다 훨씬 깊어진 거장(巨匠)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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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가족영화의 집대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꾸준히 가족영화를 만들어왔다. 부모 없이 저들끼리 방치된 네 남매를 곁에서 가만히 바라보듯 찍은 《아무도 모른다》(2004)가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이력을 시작한 그가 ‘내가 지금 바라봐야 할 도쿄의 아이들은 누구인가’를 고민한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극영화다. 

 

이후 사고로 큰아들을 잃고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여름을 그린 《걸어도 걸어도》(2008), 가족이 함께 모여 살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소망을 주목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동생을 받아들이고 가족이 되는 자매들의 이야기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덧 그렇게도 싫어하던 아버지를 닮아버린 중년 남자와 그 가족의 하룻밤 이야기를 담은 《태풍이 지나가고》(2016) 등이 탄생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고 뒤늦게 진정한 아버지의 자격과 자리를 찾아가는 남자의 이야기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감독의 연출작 가운데 명작으로 손꼽힌다.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법정 스릴러에 가까운 《세 번째 살인》(2017)을 만들면서 당분간 가족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다시 만든 영화이기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지난 10년간 생각해 온 것을 모두 담은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면서, 아버지가 되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기도 하고, 소년의 성장 이야기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간 만들었던 가족영화에서 이야기한 주제의 집대성이라는 말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먼저 흥행으로 증명됐다. 이 영화는 34억 엔이 넘는 수입을 벌어들이며 일본 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었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기록(약 32억 엔)을 깼을 뿐 아니라, 올해 일본 극영화 흥행 1위에 올랐다.

 

그간 감독은 가족영화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족이라는 혈연집단에 가질 수 있는 양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목해 왔다. 가족이므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되레 남보다 서로를 모르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가족의 실상이다. 감독의 표현대로 “소중하지만 동시에 성가신 존재”인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감독은 가족의 조건을 묻는다. 가족을 완성하고 또 단단하게 엮는 것이 핏줄인지 아니면 시간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일본 사회문제로 급부상한 유령연금(수급자의 사망 사실을 속여 연금을 받는 행위), 아동학대 등의 첨예한 이슈들도 이 안에 녹아 있다.

 

극 중 가족은 서로를 ‘선택해’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이다. 할머니 하쓰에(기키 기린)의 아들 혹은 딸을 중심으로 모인 단란한 가족 같지만,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람은 없다.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도 부부가 아니며, 이들의 아들처럼 보이는 쇼타(조 가이리)도 실은 주워온 아이다. 노부요의 자매인 듯한 아키(마쓰오카 마유)도 전혀 뜻밖의 사정으로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젊은 여성일 뿐이다. 새롭게 가족이 된 유리(사사키 미유)에게는 친모가 있지만 그는 아이에게 수시로 손찌검을 하고 학대한다. 그런 엄마에게 아이를 돌려보내는 대신, 따뜻하게 안아주고 밥을 먹이는 이 가족에게 단순히 유괴범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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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월드’의 뉴페이스, 안도 사쿠라의 힘

 

따뜻한 화법 가운데에도 일견 서늘하리만치 날카롭게 인물과 사건의 여백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은 여전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어느 가족》의 인물들을 마냥 감상적이기만 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 가족은 명백히 범죄의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의 환경은 아이들이 자라기에는 불안전하다. 소년 쇼타는 학교에 가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한다. 세상에 기록되지 못한 아이인 것이다. 

 

쇼타는 자신보다 어린 유리에게까지 좀도둑질을 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씩 도덕적 딜레마를 겪는다. 절반쯤은 충동적으로 내려버린 이 소년의 어떤 선택은 결과적으로 가족을 곤궁에 처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상황을 보여주며 영화는 다시 한번 묻는다. 가족의 조건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

 

그럼에도 《어느 가족》은 온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다. 인물들은 유독 자주 서로를 쓰다듬고 끌어안고 또 기댄다. 세상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은 부러지고 꺾이지 않기 위해 서로의 마음에 의지하는 것이다. 여름의 더위와 땀 같은 끈적한 성질의 묘사마저 어느덧 이들의 연대를 말하는 장치가 된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듯 서로를 끌어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계에서 전에 없던 육체성이 강조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키 기린과 릴리 프랭키는 기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한 가족의 축을 담당해 왔던 단골 배우들이다. 다만 이번 영화는 그들 덕에 생기는 안락한 익숙함보다, 노부요를 연기한 안도 사쿠라에게서 나오는 신선한 힘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다. 감독은 안도 사쿠라를 캐스팅하기 위해 원래 40대였던 노부요 캐릭터의 연령대를 낮췄다. ‘N포세대’ 전형에서 권투를 통해 매일을 투쟁처럼 살아가는 여자를 연기한 《백엔의 사랑》(2014) 등을 통해 일본에서는 진즉 실력파로 이름난 배우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케이트 블란쳇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앞으로 내가 하는 눈물 연기는 무조건 사쿠라의 연기를 흉내 낸 것이라 보면 된다”고 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극 중 경찰의 심문 도중 어떤 질문을 받은 노부요가 멍하니 있다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 장면을 두고 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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