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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좌담] 페미니즘 지지하는 이유 밝힌 남성들의 수다

유경민 인턴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1(Wed) 08:00:00 |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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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 페미니즘과 반(反)페미니즘의 충돌은 ‘성 대결’로 보이기 쉽다. 페미니즘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러링(mirroring·남성들이 쓰는 여성혐오 표현을 똑같이 남성을 향해 쓰는 행위)을 필두로 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며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로 이해하고 반발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

 

정말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 명의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 모였다. 이들은 “남성도 페미니즘을 지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용석씨(47)는 ‘메갈 교사’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중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길 주저하지 않는 국어교사다. 서울대 대학생 김영광씨(21)는 고등학생 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인 동생 또한 페미니스트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 단체 운영진인 남기윤씨(23)도 있다. 남함페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남성들이 모여 스터디를 진행하는 모임이다. 최근에는 불법촬영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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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해방 위한 페미니즘

 

이들에게 페미니즘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를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창(窓)인 것이다. 새로운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좌담에 참여한 3인의 남성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해방과 행복을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광(김) : 페미니즘은 ‘나의 해방’이다. 가부장주의는 ‘개인’을, 궁극적으로는 ‘개개인’ 모두를 옭아맨다. 이 구조 속에서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착취당한다. 병역 의무가 대표적 예다. 남성만 군대를 가는 것은 가부장주의가 부여한 성 역할이다.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데, 나 또한 병역 거부 예정자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 거부는 남성으로서의 역할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된다. ‘남성 아닌 남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화된 남성’을 사회가 어떻게 배척하는지 생각해 보라. 가부장주의에서 남성은 착취자지만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다.

 

이용석(이) : 가부장주의가 착취를 위한 도구라는 말에 동의한다. 군대를 다녀와야 남성이 된다는 건 착취를 위해 만든 허상이다. 자본과 권력이 있으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남성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군대를 다녀와야 남성이 된다는 말은 자본과 권력이 없는 남성들이 붙잡고 싶은 ‘최후의 권력’이다. 나는 억압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페미니즘은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돼 왔던 것들을 전복시키는 시각을 준다.

 

남기윤(남) :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차별이 존재하고 스스로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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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연대를 고발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페미니즘은 단단해진다.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바로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약자를 볼모로 자신들의 권력을 증식시키는 카르텔에 대한 내부고발이다. 이른바 ‘남성연대(male bonding)’ 안에서 남성 집단 내부의 여성혐오를 폭로하고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것이다.

 

김 :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에 제한은 없다. 다만 남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남성연대 낙후시키기’가 그 답이다. 남성연대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폭로하는 역할이다.

 

남 : 맞다. 내부고발이 필요하다. 성적 대상화나 외모 평가 등 쉬쉬하는 것들이 일부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려야 한다. 문제제기를 당한 남성들은 잘못을 부정하지 말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나 또한 여성혐오 발언을 해 왔지만 현재는 반성하고 다른 남성들을 제지하고 있다. 

 

이 : 열심히 싸우고 있는 여성들에게 말을 보태는 건 청소년들이 모여서 회의하는데 교사가 자기 생각만 얘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남성 교사나 남성 청소년들을 향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여자 선생님이 페미니즘을 얘기하면 ‘여자니까’라고 치부해 버리던 남학생들도 제가 하면 “선생님은 남잔데 왜 그래요?”라고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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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언어 미러링, 혐오 표현 아니다

 

7월7일 열린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혜화역 시위)’에서 가장 논란이 된 사안은 ‘재기해(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자살을 뜻하는 은어)’라는 표현이다. ‘재기해’ 외에도 ‘자이루’ ‘한남충’ 등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들이 페미니즘 운동에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미러링의 대상이 되는 남성들은 이 표현들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담자들은 여전히 미러링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 : 혐오 표현과 여성들이 하는 미러링은 다르다. 혐오 표현은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나오는 발화다. 반면 미러링은 남성들의 혐오 표현에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약자의 언어다. 조선시대 말 평민 의식이 성장하던 시기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해학이나 풍자와 비슷하다. 가령 학생들을 ‘새끼’라고 지칭하는 교사가 있다고 치자. 어느 날 학생이 그 교사에게 ‘새끼’라고 받아쳤을 때 이는 권력관계에 의한 발화가 아니라 ‘같이 살자’는 표현이다. ‘새끼라고 부르지 말고 인간으로 봐 주세요’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남 : 맞다. 고등학교 시절 ‘김치녀’ 등 여성혐오 표현을 쓰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당시 여성들은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자기검열을 했다. 반면 남성들은 ‘한남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남충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자기검열을 하진 않는다. 이 자체가 권력이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은 극단적이다”라는 말은 ‘메갈리아’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애초에 들어줄 생각이 없는 거다.

 

김 : ‘재기해’라는 단어 하나로 혜화역 시위와 페미니즘 전체를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단 하나의 표현이 불법 촬영 규탄이라는 문제제기를 잠식하는 상황에는 여성혐오가 깔려 있다. 이러한 표현 사용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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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해방될 수 있는 운동 돼야”

 

대담자들은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하다는 조건이 없었다면 혜화역 시위에 참여했을 것인지”라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시위 참가자의 성별을 제한한 점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남 :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하다”는 조건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남성이 위험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험했다. 6월9일 2차 혜화역 시위가 있었던 날, 마로니에공원에서 인권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스프레를 한 남성이 행사장에 와서 난동을 부렸다.

 

이 : 동의한다. 생물학적 여성들만 모이는 시위도 의미가 있다. 시위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궁 없는 것들은 가라’와 같은 운동의 형태가 고착화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근거해 어떤 존재를 배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누구나 성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혐오 가득한 학교를 뜯어고치다

 

좌담 참가자들은 교사 또는 학생으로 교육현장에 속해 있다. 이들에게 최근 학교에서 이뤄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참가자들은 대학을 넘어 초·중·고등학교에까지 퍼진 백래시를 막기 위해 ‘학교 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이란 무엇인가?”가 이들의 고민이다.

 

김 : 페미니즘은 인식론이다. 상식화됐던 것을 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 특히 교사는 앞에서 설명하고 학생들은 받아 적는 형태의 교육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이는 오히려 반페미니즘적이다.

 

이 : 물리적 공간과 생활을 바꿔나가는 게 첫 번째다. 학교는 교육의 장소가 아니라 생활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 곳곳에는 권력 위계적인 요소들이 반영돼 있다. 일단 건물 구조 자체가 그렇다. 화장실에서 위계가 가장 잘 드러난다. 화장실은 철저히 성별 이분법적이다. 교사 화장실은 학생 화장실과 분리돼 있다. 남학생들은 1번부터, 여학생들은 30번부터 시작하는 출석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녹아 있는 성차별을 탈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벌주기 위한 학생생활규정이 아니라 ‘차별금지법’이 포함된 학교생활규칙 제정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성 교사로서 실천해야 하는 두 번째는 ‘권력 놓기’다. 학교의 타 구성원들보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생활지도 방식을 고찰해야 한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성 인식 설문조사를 하면 ‘우리만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으면 뭐 하냐. 성차별적 발언과 행동은 교사들이 더 많이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핵심은 여학생과 여성 교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페미니즘을 말해도 공격받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남 : 어렸을 때부터 가치관을 만들어주는 페미니즘 교육도 필요하다. 유치원생인 조카들이 색과 장난감을 성별에 따라 나누더라. 남함페 모임에는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그림, 글쓰기, 영상 시청 등의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 그래야 니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이라는 트와이스의 《Cheer Up》 가사를 함께 개사하는 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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