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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출산 후 얼마든지 선수생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뷰] 99개 메달 끝으로 은퇴 선언한 ‘아시아 최고 여검객’ 남현희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2(Sun) 10:01:00 |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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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를 더 채우지 못해 99개의 메달로 마무리된 남현희(37·성남시청)의 펜싱 인생은 처절하고 애달프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까지, 그는 쉼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다섯 번의 아시안게임에서 남현희는 6개의 금메달(개인전 2개·단체전 4개)과 2개의 동메달(개인전·단체전)을 따내며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여검객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펜싱 역사상 유일한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땅콩검객’이라는 별명 그대로 그녀의 키는 153cm. 작은 키에 손과 발도 작았다. 215mm의 발 사이즈에 맞는 펜싱화가 없어 선수생활 내내 3겹 이상의 양말을 껴 신고 230mm의 펜싱화를 신었다. 손이 작고 손가락이 가늘다 보니 펜싱검 손잡이도 맞지 않았다. 펜싱화와 검뿐만 아니라 펜싱계의 온갖 선입견과 싸우며 한국 여자펜싱의 역사를 장식해 온 남현희.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단체전 동메달 획득 후 99개의 메달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펜싱대표팀 선수들과 귀국 후 휴가 중인 남현희와 연락이 닿았다.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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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은퇴한 건가.

 

“정말 은퇴했다(웃음). 그런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휴가를 마치면 다시 훈련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다.”


메달이 100개가 아닌 99개에서 멈췄다는 게 많이 아쉬울 텐데.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도 경기할 때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들보다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다리를 찢으면서 동작을 연습했던 게 통증으로 이어졌다. 치료 기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부상은 곧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펜싱 시스템이 그런 시간을 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해야만 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의 시스템이 어떠하다는 얘기인가.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세계랭킹을 유지해야 한다. 국제대회 10개, 국내대회 6개를 뛰어야 하고 국내 3개 대회에 출전해서 대표 선발전을 치러야 한다. 즉 3개 대회에서 나온 성적을 합산해서 대표팀 선수를 선발하는 것이다. 16개 대회를 치르다 보면 부상이 뒤따른다. 제대로 치료할 시간도 없이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지난 5월초, 독일 오픈대회 64강전에서 무릎을 다쳤다. 귀국 후 병원을 찾았더니 무릎 연골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하더라. 과감히 수술대에 올랐고 수술받은 날부터 재활훈련에 돌입했고 한 달 만에 나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여자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성적을 내긴 했지만 햄스트링이 찢어지면서 또다시 통증이 이어졌다. 그 상태에서 아시안게임까지 치른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할 수 있지 않았나. 남현희 선수 정도면 충분히 그 정도 얘기를 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얘기했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내가 계속 뛰어야 하니 이렇게 바꿔 달라고 말하기가 싫었다. 분명 그로 인해 손해 보는 선수가 나온다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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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는 남현희·전희숙 선수가 출전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16강전에서 만나는 바람에 메달 획득에 어려움이 있었다. 16강전에서 전희숙 선수를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희숙이랑 약속한 게 있었다. 예선전 잘 치러 결승전에서 만나자고. 그런데 너무 일찍 만났다. 희숙이는 아시안게임 2연패를, 난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 기록이 걸려 있었다. 수영의 박태환과 아시안게임 6개의 금메달 획득으로 공동 1위를 기록했던 터였다. 설령 결승이 아닌 준결승에서라도 만나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16강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당시 난 엉덩이뼈 통증이 심했다. 20년 넘게 검으로 상대를 찌르며 왼발을 내미는 동작을 반복했던 결과였다. 왼쪽 엉덩이뼈가 오른쪽보다 비대해진 게 통증으로 나타났다. 엉덩이 통증에다 햄스트링은 찢어진 상태였지 수술한 무릎도 좋지 않다 보니 희숙이와의 경기를 앞두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만약 가까스로 희숙이를 이긴다고 해도 그다음 선수를 만나 이 몸 상태로 겨룰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단체전도 남아 있는데 자칫 심각한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대표팀에 민폐만 끼치는 상황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갈등과 고민을 반복했다. 게임 들어가기 전에 희숙이 얼굴을 봤는데 그도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심을 했다는 건가.

 

“개인전에 올인할지 아니면 단체전에 올인할지 여부다. 그동안 단체전은 내가 성적이 좋았을 때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개인전은 16강전 이후 내 몸 상태를 장담할 수 없었다. 만약 상대가 외국팀 선수였다면 이런 생각도 안 했겠지만 아끼는 후배가 아닌가. 개인전 16강전은 최선을 다한 경기가 아니었다. 100개의 메달을 채우고 은퇴하려던 계획은 거기서부터 틀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단체전에서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획득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에 36대45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1, 2번 주자로 나선 선수들이 한 점도 따지 못한 채 10점을 헌납하며 일본한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18대35로 뒤진 상황에서 내가 피스트에 올랐는데 13점을 몰아치며 31대39로 따라붙었지만 벌어진 점수차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여자 플뢰레 단체전 아시안게임 5회 연속 금메달 기록이 중단됐다. 결과는 아쉽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좀 더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을 텐데.

 

“20여 년 동안 금메달을 갈구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나의 대회를 마무리하면 다음 대회에서 또다시 금메달을 목표로 하게 되고.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몸이 아픈데도 성적이 나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많다고, 부상이 잦다고, 출산했다는 이유로 날 평가절하하려 했지만 여자 플뢰레 선수들 중 세계랭킹이 가장 높았고 그걸 계속 유지했다. 성적을 냈던 게 날 버티게 해 줬다. 또 하나는 메달 수였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메달을 세어 보니 지금까지 내가 획득한 금·은·동 메달이 98개더라.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메달을 따면 100개를 채우고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99개에서 멈춘 것이다. 그런 동기부여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모두 마쳤을 때 회한이 몰려왔을 것 같다.

 

“너무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다. 단체전을 마치고 나선 이런 생각도 들더라. ‘그래 남현희, 6년 동안(출산 후 복귀해서) 잘 참았다’라고. 전희숙과의 16강전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휴대폰을 켰는데 휴대폰에 가족, 지인들이 보낸 문자가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가 ‘넌 금메달을 못 땄지만 이미 우리한테는 영원한 금메달리스트’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개인전의 아쉬움을 그 문자로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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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선수가 결혼 후 출산하게 되면 은퇴는 자연적인 수순이었다. 다른 종목도 아닌 움직임이 많은 펜싱은 출산 후 복귀한 사례가 없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큰 고민이 백일 지난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소속팀 감독님의 권유로 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출산한 지 100일 만에 강훈련에 돌입했다. 내 성격상 뭔가를 시작하면 거기에 집중하고 몰두한다. 대표팀 선발전에 도전했다면 나름 단단한 각오를 했던 것이고, 개인적인 문제는 혼자만의 고민으로 남겨두려 했다. 결심한 이상 뒤는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펜싱선수도 출산 후 얼마든지 선수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출산 후 100일 만에 강훈련을 시작했다는 게 놀랍다. 

 

“사실 무섭고 두려웠다. 괜히 선발전에 나갔다가 창피만 당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는 게 아닐까 싶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나한테는 인생을 건 도전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후배들 자리 빼앗는 선배의 욕심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몸 상태였다. 출산 전에는 내가 어느 정도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 지금이 베스트인지 아니면 어려운 상황인지, 모든 부분에서 체크가 가능했다. 열네 살부터 펜싱을 시작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 혼자만이 알 수 있는 몸속 데이터들이 존재했는데 출산 후에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들과 훈련 강도에 차이를 두면서 천천히 몸을 끌어올리는 방법이 필요했을 듯한데.

 

“내 상황이 그런 호사를 부릴 만큼 여유가 없었다. 가뜩이나 내가 복귀한 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는데 거기서 대우받기를 바랐다면 욕을 더 먹었을 것이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했다. 물론 몸이 정상이 아니다 보니 운동량을 조절해 주길 바랐지만 그걸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아기를 낳은 여성의 몸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다리에 힘을 주면 근육이 긴장하면서 몸에 힘이 붙어야 하는데 출산 후에는 다리에 힘을 주면 쥐가 났다. 양쪽 발바닥은 물론이고 고관절, 대퇴부 뒤쪽, 종아리 근육 등 모든 부위가 뭉치고 아팠다. 출산으로 사라진 근육을 다시 만들려고 애를 썼던 나로선 혼돈의 시간을 맞이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후 치료를 어떻게 받았던 건가.

 

“내가 직접 치료기를 사서 셀프 치료를 했다. 초음파, 마사지 기계 등을 구입해서 사용했다. 큰 국제대회가 아닌 이상 남녀 6개 종목으로 나뉘는 펜싱 경기에 트레이너가 다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셀프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너 없는 상황에서 부상을 당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펜싱 경기 자체가 워낙 격렬한 운동이라 항상 부상 위험이 뒤따랐다. 근육 파열이 가장 흔한 증상인데 휴대용 초음파 기계 덕을 톡톡히 봤다. 내가 상대 선수보다 키가 작기 때문에 많이 움직여야만 한다. 나이 많고 체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근육 손상이 커져 근육 피로도가 빨리 왔고 그로 인해 움직임이 둔해졌다. 트레이너가 있으면 몸을 풀고 시합에 임하는 데 도움을 받겠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 펼쳐지면 내가 해결해야 했다.”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다면 어떠했을까 싶다. 

 

“나이를 먹은 선수는 훈련 때 살짝 방치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고 싶은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이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쉽게 말하지 못한다. 사실대로 말해야 팀에서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준비해 나갈 수 있는데 말하는 걸 꺼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포츠는 환경 자체가 경쟁 구도로 진행된다. 잘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채우기 마련이다. 정상에 있던 내가 사라질 경우 분명 재능 있는 후배가 대신할 텐데, 내가 은퇴하지 않고 선수생활을 이어가니까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난 선수생활 하면서 유독 많은 상처를 받고 성장했다. 그래서 웬만한 비난이나 오해를 받아도 흔들림이 없다. 어쩌면 상처받기 싫어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지도 모른다. 선수생활 중 일부는 그런 부정적인 시각들을 이겨내는 것의 연속이었다. 키가 작아서 못할 거라는, 결혼해서 안 될 거라는, 아이 낳아서 그만둘 거라는, 그리고 복귀해도 별 볼일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들과 싸움을 벌였다.”

 

펜싱선수로는 단신이란 사실이 매번 약점으로 부각됐었다. 선수생활 하면서 10cm만 더 컸더라면, 혹은 팔다리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나.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골반을 더 많이 찢어 발을 내딛다 보니 골반이 틀어졌고,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졌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모든 신체조건에 단 한 번도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승부욕이 더 강해졌고, 더 많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강해지려고 단단해지려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언론에서 나를 두고 ‘미녀검객’ ‘땅콩검객’이라고 부르는데, 난 ‘땅콩검객’이란 표현이 좋다. 만약 내 키가 10cm 더 컸더라면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그토록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후 내가 마음속에 새긴 문구가 있다. ‘남의 성공을 시기하지 마라. 성공의 시기는 누구한테나 오는 것. 단 찾아오는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니 축하해 줄 선수한테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곧 나한테도 그 성공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란 내용이다.”

 

정말 멋진 말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99개의 메달 중 가장 잊지 못할 메달 하나를 꼽는다면.

 

“이번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받은 마지막 동메달이다. 정말 힘들게 준비해서 올라갔고 마지막에는 햄스트링 부상을 걱정하지 않고 다리를 찢고 숨이 차도록 뛰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내자는 생각에 다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받은 마지막 메달이라 가장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메달이 있다.”

 

어떤 메달인가. 

 

“지인들로 구성된 팬클럽이 있는데 그들이 내게 만들어준 100번째 메달이다. 99개에서 멈춘 걸 안타까워한 나머지 개인적으로 만든 메달인데, 그 메달 덕분에 마침내 메달 수를 ‘100’으로 채울 수 있었다. 진짜 메달은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메달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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