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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①] (단독) ‘실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上)

실미도부대 공작원 유족들 文 대통령에 보낸 탄원서 입수…사망 24명 중 11명 유족 미확인, 4명은 유해도 못 찾아

김지영 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Mon) 11:01:00 |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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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후 한반도 분단은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분단을 악용한 위정자들의 ‘빨갱이’ 공작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한 수많은 양민학살과 간첩조작사건들, 진보당 조봉암과 인혁당사건, 민청학련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분단 적폐의 뿌리는 깊다. 뒤늦게 국방부·검찰·국정원 등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밝힐 수 있는 진실엔 한계가 있다. 세상 떠난 관련자들과 입 다문 증언자들이 진실을 흐릿하게 한다. 

 

남북 냉전은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유발했다. 그나마 남북 정규군 충돌과 피해는 ‘공개’된 아픔이었다. 하지만 절대보안에 부쳐진 무수한 휴전선 충돌들. 사망 사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은 군(軍) 사망 통지서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북파(北派)공작원들. 모두 분단의 편린들이다. 민간인으로 북파 임무를 수행했던 또는 준비했던 북파공작원 목소리는 2000년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가운데 1971년 8월23일 발생한 ‘실미도사건’도 큰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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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은폐로 짙은 어둠에 갇혔던 실미도부대 실체가 제대로 빛을 본 건 2004년. 강우석 감독 영화 《실미도》를 통해서였다. 1100만 명 이상이 영화관을 찾았고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 국방부는 ‘실미도사건 진상조사TF’(국방부 TF)를 구성했다. 국방부 TF는 같은 해 5월27일 발족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에 ‘실미도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과거사위는 실미도사건을 2호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사건 발생 36년 만이었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는 2006년 7월 ‘실미도사건 진상조사보고서’(실미도보고서)로 묶였다. 북한 침투를 목표로 1968년 4월1일 창설된 북파공작원 훈련소. 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 일명 ‘실미도부대’ 실체 일부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8·23사건은 실미도부대에서 3년4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던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23일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면서 비롯됐다. 서울 진입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 경찰 2명과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사건 현장에서 공작원 20명은 사망했고 4명은 살아남았다. 그 4명도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인 1972년 3월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족들 “시신 찾아 명예회복시켜 달라” 

 

과거사위는 2005년부터 8·23사건 공작원 유해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국방부 TF의 실미도사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1년 8·23사건 나흘 후인 8월27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 벽제공동묘지에 사건 당일 사망한 공작원 20명이 가매장됐다. 그리고 2005년 11월 여기서 20명의 유해가 발굴됐다. 발굴 유해는 국방부가 신축한 경기도 고양시 제○○○○부대 안에 있는 제7지구 봉안소에 안치됐다. 

 

그런데 유전자 검사 결과 봉안소에 안치된 20명 가운데 9명만 유족이 확인된 것이다. 나머지 11명은 유해 상태가 나빴다. 유전자 분석이 불가능했다. 이에 11명의 유해는 화장을 마친 뒤 한데 섞여 유골함 11개로 나뉘었다. 

 

8·23사건 현장에서 생존한 4명의 유해 발굴도 진행됐다. 과거사위는 공군2325부대(서울 구로구 오류동 소재) 사격장에서 1972년 3월10일 사형 집행된 김병염·김창구·이서천·임성빈 등에 대한 매장지 탐문도 벌였다. 하지만 유골을 찾는 데 실패했다. 과거사위는 2006년 “오류동 사형수 4명은 벽제 지역에 매장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7년 7월 국방부 인권담당관실이 작성한 ‘시신 미발굴 실미도 공작원 유해찾기 탐문 결과’를 보면 “시신 미발굴 공작원의 매장지역은 2007~08년에 걸쳐 공군 주도로 시신 발굴 작업을 시행한 바 있던 벽제리 묘지가 정확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매장 추정 지역이 10년 후 바뀐 것이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벽제묘지에서 유해를 찾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1993년 묘지법 발효 이후 무연고 묘를 일제히 정리하면서 합동분묘를 조성한 적이 있다. 이곳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1998년 8월 벽제 지역 대홍수로 묘역이 대규모 유실됐을 때 이들 유해도 함께 유실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결국 4명의 유해가 현재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현재 제7지구 봉안소엔 이들 4명의 유족 가운데 위패 봉안을 유족이 동의한 2명(김창구·이서천)만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병염·임성빈 유족은 위패 봉안에 반대했다. 이들 2명은 위패는 물론 유골함도 없다.  봉안소엔 공작원 20명 유골함과 사형수 2명의 위패만 모셔져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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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vs 살인범, 정부도 ‘오락가락’

 

정부는 2008년 4월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보상액은 공작원 부모가 생존해 있을 경우 400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유족들은 3000만원 선이었다. 유족들 동의로 8·23사건 46주기인 2017년 8월23일엔 실미도 공작원 합동봉안식까지 거행했다. 외형상 그리고 절차상 실미도사건에 마침표가 찍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부 유족은 “실미도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거다. 아직 찾지 못한 유해들도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역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었음을 자인한다. 실미도보고서를 통해 “실미도부대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공작원들이 살해되고 공금횡령으로 인한 열악한 처우 등 인권유린 및 불법행위가 있었음은 파악”됐으나 “상부의 개입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관련자들의 증언거부 등의 사유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작원 유족 가운데 8·23사건 당시 생존했으나 이듬해 3월10일 사형된 김병염·임성빈 유족들은 그동안 청와대와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에 꾸준히 민원을 제기해 왔다. 보상금 지급도, 합동봉안식도 끝났는데 이들은 왜 국방부 민원실을 계속 드나드는 것일까. 공군2325부대의 ‘공작원 모집결과 보고서’(1968년 4월 작성)에 따르면, 임성빈은 공작원 선정 당시 충남 연기군 전동면 금사리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나이는 22세. 특기와 주요 경력란엔 ‘당수(5급), 행상’으로 기록돼 있다.   

 

6월19일과 8월13일 두 차례 임성빈의 여동생인 임일빈·임충빈씨를 만났다. 기자와 만난 이들은 “보상금을 더 달라고 국방부를 찾아다니는 게 절대 아니다”며 “보상금은 더 받을 생각도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민원 제기가 자칫 돈 문제로 비칠까봐 우려했다.

 

임일빈씨는 “1968년 3월에 오빠(임성빈)가 갑자기 소식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오빠만 애타게 찾으시며 기다리시다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영화 《실미도》가 나온 뒤 누군가 나한테 ‘당신 오빠도 거기(실미도) 간 거 아니냐’라고 해서 찾아봤더니 정말 거기 있었던 거다”고 말했다. 임씨 부친은 6·25 참전 중 총상을 입었고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장남 임성빈은 8남매를 키우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일찌감치 행상에 나섰고 실미도부대에 입소했다. 

 

※계속해서 ☞[실미도②] (단독) ‘실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下)편이 이어집니다.

 

※‘실미도’ 특집 연관기사 

☞[실미도②] (단독) ‘실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下)

☞[실미도③] 감언이설에 포섭당한 민간인들

[실미도④] 인간 병기 위해 지옥 훈련 ‘죽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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