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③] 봇물 터진 김정은 ‘회담 쇼’…평양 외교라인 속 탄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 10:57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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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눈치 보며 중·러와 연쇄 접촉

북한과 미국의 2차 정상회담 일정이 11월6일 미 중간선거 이후로 잡히면서 평양과 워싱턴이 향후 어떤 막후 줄다리기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 6월 싱가포르에서의 첫 만남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핵화와 북·미 관계 진전을 둘러싼 치열한 힘겨루기를 펼쳐왔다. 

 

미국은 북핵 폐기를 목표로 한 ‘비핵화’ 어젠다에 집중한 반면, 북한은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해제라는 두 가지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과 트럼프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할 경우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관계와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0월7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고 돌아오자마자 ‘중간선거 뒤 북·미 정상회담’이란 일정을 공개 언급했다. 전례 없이 발 빠른 모양새다. 장소와 관련해서도 “싱가포르를 제외한 3~4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다. 김정은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관련, 사찰단을 초청하겠다고 밝히는 등 비핵화 검증과 관련해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자 고무된 모습이다.

평양의 대미라인은 물론 대남·외교 부문은 초비상 상황에 돌입한 형국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매머드급 대외 일정이 연말까지 빼곡히 잡혀 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의 김정은 대외 일정은 이례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문 대통령은 10월8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정상회담 외교 일정이란 점이 북측 인사들에겐 고민거리다. 9월 평양 정상회담에 이어 연쇄적으로 이뤄질 예정인 정상외교는 김정은과 핵심 엘리트들에게 체제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비중이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오른쪽 두 번째)이 10월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중·러 3자 외무차관급 회담을 마친 뒤 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평양의 대미·대남·외교라인 초비상

우선 거론되는 건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이다. 김 위원장은 올 들어 3차례나 시 주석과 만나 북·중 관계를 복원하고 혈맹관계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전후해 이뤄진 시 주석과의 교감을 통해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과 만난 뒤 김 위원장이 비핵화나 대미 관련 입장을 강경하게 취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불만을 표출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김 위원장을 주시하는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러시아는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든든한 후견 역할을 했다. 중국이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에 밀려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유엔 제재에 찬성표를 던지고 이행에 나설 때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냉랭해진 틈을 비집고 북한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치중했고, 여기에는 푸틴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다. 이런 측면에서 조속히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공조를 다질 필요를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러 관계를 고려할 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째 만남을 갖기 이전에 푸틴과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부담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후 정상회담 개최 입장을 밝힌 직후 김 위원장의 외유를 준비하는 북한 항공기가 러시아를 오간 것으로 볼 때 러시아 방문 일정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도 더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3차례나 김정은 위원장이 베이징 등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시 주석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가는 김정은에게 중국 민항기를 내줄 만큼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올해 안에 시 주석이 방북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지지와 후견 역할을 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란 얘기다. 외교 당국자는 “김정은 방러와 시진핑 방북 등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언급이 폼페이오의 방북 이튿날 나왔다는 점에서 일정 공개가 북측과 충분히 교감된 상태에서 이뤄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안으로 미국·중국·러시아와의 정상회담 일정을 소화함으로써 내년 외교 전략을 짜는 데 논의 사항을 반영하려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과의 4차 정상회담 일정도 더해질 공산이 크다. 9·19 평양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서울 답방’을 약속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올해 안에 방문이 이뤄질 것이란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노동당의 대남·외교 참모들에겐 미·중·러 등과의 정상회담 못지않게 긴장되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서울 방문이 초유의 상황인 데다 남한 내 반대여론이나 돌발상황 가능성 등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에서다. 문 대통령의 서울 방문 초청에 김정은이 “참모들은 대부분 반대했다”고 밝힌 것도 경호·의전 등에서의 문제와 함께 정치적인 부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일정표가 이같이 비중 있고 복잡한 정상회담 일정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연말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만 모두 4개의 각기 다른 정상회담을 치러야 하는 데다, 다뤄야 할 의제나 이행 문제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김정은과 아베 총리의 만남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하반기 김정은 외교 일정 강행군

문제는 이들 정상회담이 비핵화 등 북한 이슈는 물론 한반도 정세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립각을 세운 상황이라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푸틴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가세해 대북 접근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다.

2011년 말 김정일 사망으로 집권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말까지 단 한 차례의 정상회담 일정도 갖지 못한 채, 핵·미사일 도발과 권력 내부 다지기에 집중했다. 올 초 유화 국면으로 돌아서면서 본격화한 대남·외교 행보에 각 3차례의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연말까지 짜인 정상외교 예상 시간표를 고려하면 이제 절반을 치러낸 셈이다. 평양의 대남·외교라인의 김정은 참모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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