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문화②] 재교육 수요 높아지자 ‘대안학교’ 뜬다
  • 김종일·조유빈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3 09:29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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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한 번씩 만나 토론을 하는 독서모임으로 유명한 ‘트레바리’의 한 시즌(4개월) 회비는 최소 19만원이다. 그나마 일반 회원들이 자유롭게 운영하는 모임의 회비가 19만원이지, 각 분야의 전문가가 클럽장으로 참여하는 모임의 회비는 29만원이다. 그런데 트레바리의 재등록률은 60%에 육박한다. 2015년 9월, 회원 80명에 4개 모임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2017년 회원 수 1000명을 돌파해 지금은 모임 208개, 3500명 정도의 회원을 확보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트레바리만의 성공은 아니다. 요리·영화·음악·글쓰기·경제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고 고민을 나누는 ‘문토’는 작년 2개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7개 모임으로 성장했다. 트레바리와 문토 외에도 공통된 취향으로 소통하는 사교모임인 ‘취향관’, 인문예술공유지(地) ‘문래당’, 창작자 커뮤니티 ‘안전가옥’ 등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커뮤니티 모임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배경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트렌드)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점점 각광받는 소확행(小確幸·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현재를 즐기는 사람을 뜻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가치 소비 등이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외에도 트레바리와 문토, 취향관 등이 주목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에 드디어 살롱(salon) 문화가 상륙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어로 ‘사교 집회’ ‘응접실’ 등을 뜻하는 ‘살롱’은 흔히 우리의 ‘사랑방 문화’와 비교된다. 차이점은 18~19세기 프랑스 살롱은 남녀와 신분 간의 벽을 깬 ‘대화’와 ‘토론장’이었으며 또한 ‘문학공간’으로서 문화와 지성의 산실이자 중개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살롱 문화를 불러온 근본적 배경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인생 2모작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스스로 변화해야겠다고 느낀다. 변화의 핵심은 ‘재교육’이다. 읽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을 바꿔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문제는 재교육 플랫폼이다. 대학은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 비쌀 뿐만 아니라 20대 위주의 교육이다. 한국 기업들은 재교육에 비용을 지출하지 않거나 공급자 중심의 재교육을 내놓는다.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대학이 조용히 침몰하고 있는 가운데, 살롱 문화처럼 우리 사회에 스며들 듯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재교육 플랫폼이 있다. 그 대표주자로 ‘신촌대학교’를 꼽을 만하다. 신촌대는 학위를 주지 않는 자치대안학교다. 캠퍼스도 따로 없다. 대학가로 유명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주변 스터디 카페 등을 강의실로 사용한다.  

 

ⓒ 문토·트레바리 제공


학과들도 남다르다. ‘리포터 되볼과’ ‘나만의 동영상 제작해볼과’ ‘이슈가 되는 보도자료 만들과’ ‘자소서 완성해볼과’ ‘스토리텔링 강의기법 키워볼과’ 등 별난 이름의 학과들이 개설된다. 기존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지만 취업과 승진, 이직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주제들이다. 최근 급변하는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자 수강기간도 한 달로 대폭 줄였다. 수강료는 2과목에 8만원이다.

신촌대의 남다른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기존 대학의 문턱은 배우기 위한 문턱뿐만 아니라 가르치기 위한 문턱도 높았다. 신촌대는 가르치기 위한 문턱도 과감히 없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등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신촌대에서 학과를 개설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수업 개설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 인원을 채워야 가능하다. 문턱을 확 낮춘 대신 시장(수강생)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 셈이다.

대학들이 침묵한 부분도 파고든다. 신촌대에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4·16학과’가 개설된 바 있다. 대학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과 달리 신촌대는 세월호 참사를 하나의 담론, 학문으로 다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신촌대의 초대 총장은 누굴까. 민주적으로 투표로 선출됐다. 놀라지 마시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주인공 키팅 선생이다. 가상인물인 것이다. 특정 개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신촌대의 포부가 느껴진다. 키팅 선생의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너희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지 깨달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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