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문화①] 대한민국, 살롱 문화에 빠지다
  • 김종일·조유빈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11.12 13:44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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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돈 내고 ‘독서·토론 모임’을 찾을까

주간지의 구독료는 얼마일까. 1부당 4000원이다. 52주, 즉 1년 구독료는 18만원이다. 단순히 4000원 곱하기 52주를 하면 20만8000원이지만, 1년 치를 구독하면 할인을 해 주는 것이다. 주간지들은 정기구독 신청을 하면 다양한 선물을 추첨을 통해 제공하는 이벤트도 펼친다. 그만큼 독자들이 한 번에 18만원이라는 지출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주간지만의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충성도 높은 정기구독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활자 매체의 고민이 깊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한 번씩 만나 토론을 하는 독서모임으로 유명한 ‘트레바리’의 한 시즌(4개월) 회비는 최소 19만원이다. 주간지 1년 치 구독료보다 1만원이 더 비싸다. 물론 책값은 포함돼 있지 않다. 할인도 없다. 그나마 일반 회원들이 자유롭게 운영하는 모임의 회비가 19만원이지, 각 분야의 전문가가 클럽장으로 참여하는 모임의 회비는 29만원이다. 그런데 트레바리의 재등록률은 60%에 육박한다. 2015년 9월, 회원 80명에 4개 모임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2017년 회원 수 1000명을 돌파해 지금은 모임 208개, 3500명 정도의 회원을 확보한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문토의 ‘시네마 레시피’에서 회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주목받는 살롱 문화, 트레바리·문토 ‘급성장’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왜 사람들이 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 독서모임에 참가하고 있는 걸까. 언론계 입장에서 트레바리의 성공은 풀 수 없는 ‘퍼즐’에 가깝다. 언론계에서 “요즘 사람들은 문자 콘텐츠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은 상식에 가깝다. 각 언론사가 카드뉴스나 동영상 뉴스 등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출판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도서 정가제’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신용카드 등으로 책을 사면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까지 도입됐다.

트레바리만의 성공은 아니다. 요리·영화·음악·글쓰기·경제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하고 고민을 나누는 ‘문토’는 작년 2개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7개 모임으로 성장했다. 트레바리와 문토 외에도 공통된 취향으로 소통하는 사교모임인 ‘취향관’, 인문예술공유지(地) ‘문래당’, 창작자 커뮤니티 ‘안전가옥’ 등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커뮤니티 모임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배경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트렌드)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점점 각광받는 소확행(小確幸·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현재를 즐기는 사람을 뜻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가치 소비 등이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외에도 트레바리와 문토, 취향관 등이 주목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에 드디어 살롱(salon) 문화가 상륙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어로 ‘사교 집회’ ‘응접실’ 등을 뜻하는 ‘살롱’은 흔히 우리의 ‘사랑방 문화’와 비교된다. 차이점은 18~19세기 프랑스 살롱은 남녀와 신분 간의 벽을 깬 ‘대화’와 ‘토론장’이었으며 또한 ‘문학공간’으로서 문화와 지성의 산실이자 중개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만,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소통에 갇혀 있었던 한국 사회에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소통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트레바리나 문토 등 대부분의 살롱 모임에서는 누구도 서로의 신상을 묻지 않는다. 나이·성별·학력·직업 등을 밝히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한다. 호칭도 ‘○○님’으로 한다.  

 

① ③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트레바리회원들 ② 문토의 '셰프의 테이블' ⓒ 문토·트레바리 제공



온라인 세대가 오프라인 독서모임 찾는 역설

여기에 몇 가지 역설적인 지점이 있다. 살롱 문화에 기반한 스타트업들은 20~30대를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다. 비(非)대면 온라인 문화에 가장 친숙한 세대가 오프라인 모임을 찾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문 기사나 책을 외면한다고 여겨졌던 2030 세대가 스스로 자기 관심사에 맞는 책을 찾아 돈을 주고 독서모임에 나오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지금까지 관심사와 취향, 가치관으로 연결된 모임이 없진 않았지만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얽혀 모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유료 비즈니스 모델을 상정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살롱 모임에는 대체 어떤 매력 포인트가 있는 걸까. 트레바리와 문토 등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이들을 인터뷰했다.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통, 공감대, 비슷한 취향, 고민, 대화, 즐거움 등의 단어가 자주 들렸다.

“트레바리에서 책을 읽고 생각한 바를 말하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관점을 듣는 일이 즐겁다. 친한 친구들과도 나누기 힘든 공감대를 낯선 이들과 나누는 즐거움이 크다. 단순히 책만 읽지 않는다. 다 같이 미술관이나 전시회도 간다. 모임 후 뒤풀이에서 더 많은 대화를 하고 고민도 나눈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류호씨는 이런 즐거움 때문에 토요일 오후 서울까지 나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류씨는 현재 1~2개 모임에 더 나갈까 고민 중이다. 류씨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낯선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의미 있게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듯했다.

서비스 공급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트레바리는 스스로를 ‘더 나은 우리를 위한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트레바리 관계자는 “독서모임에서 우리는 읽고, 쓰고, 대화하고, 친해진다. 한 번의 모임이 우리 일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이고 정기적인 독서모임은 분명 우리를 조금은 더 주체적이고 합리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독서모임뿐만 아니라 아지트와 이벤트 등 ‘멤버십 서비스’도 함께 운영한다”며 “이를 통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관점과 취향, 그리고 경험을 소개한다”고 덧붙였다. 류씨가 트레바리에서 느끼는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들이 정확히 트레바리가 타기팅하고 있는 전략인 셈이다.

 



“느슨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앞서 “특별한 커뮤티니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유민영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홍보 전문가로 활동하던 시절 이런 흐름을 두고 “새로운 징후들이 우리 옆에 와 있다”며 “느슨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고 예견했다. 그는 “400자 이상 서평을 내야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트레바리라는 스타트업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고 친해지는 것이 서비스”라면서 “자기계발적 취향을 바탕으로 한 친분 관계가 사업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다. 과정이다”고 분석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해마다 발표하는 ‘트렌드 코리아’의 전망도 살롱 문화 확산과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는 “2019년 트렌드 키워드의 큰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원자화·세분화하는 소비자들이 시대적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변화에 적응하면서, 정체성과 자기 콘셉트를 찾기 위해 다양한 살롱의 문을 두드려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 교수팀이 내년 소비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꼽은 ‘카멜레존’은 향후 살롱 문화에 기반한 기업들의 전망을 더 밝게 한다. 김 교수는 ‘특정 공간이 협업·체험·재생·개방·공유 등을 통해 원래의 기능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트렌드’를 내년에 주목해야 할 소비 트렌드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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