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수’를 움직이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9.15 17: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놓고 수많은 ‘보수’들이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들을 ‘몸으로 말하게’ 하는 세력은 누구인지, 이들의 ‘대선 전략’은 성공할지 분석했다.
 
‘보수’가 움직이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계기가 되었다. 신문에 광고하는 것은 물론 거리로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막후에 무언가 조직적인 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움직임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근 일련의 흐름을 보면 확실히 과거와 다른 부분이 있다. 군 출신 원로 인사들의 선언을 시작으로 지식인, 전직 경찰청장과 전직 외교관들이 잇달아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서명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넣은 예가 있기는 했지만, 직접 기자 회견을 할 정도로 결집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이다.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본부장 서정갑·국민행동본부)가 올 들어 9월14일까지 일간지에 낸 광고가 29차례에 달하는 것도 주목된다. 국민행동본부는 조선·동아·문화 일보에 광고를 냈다. 최근 ‘보수’ 인사들의 흐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광고를 내면 반응이 바로 온다. 입금되는 돈으로 광고비를 내고 남을 정도다. 보수는 이제 말이 아니라 돈·성명서·집회 등을 통해 몸으로 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극우 단체들이 ‘보수 총궐기’ 주도

이런 ‘보수’의 움직임은 조직적인 것일까. 아직까지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나라정책원 김광동 원장은 “조직적인 것은 아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촉매제가 되어 각 보수 단체들이 목소리를 쏟아내는 형국이다”라고 말했다. 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도 <독립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서로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직능별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2002년 대통령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한 ‘보수’ 단체들은 크게 국민행동본부 같은 군 계열과 기독교 단체, 뉴라이트 인사들 등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보수’로 불리지만 편차가 크다. 이 가운데 ‘극우’라고도 불리는 강경 보수 단체들이 최근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행동력이 있는 국민행동본부가 맨 앞에 서 있다. 이들 뒤에는 조갑제 대표의 말처럼 ‘조선·동아·중앙·문화 일보를 중심으로 한 여론 형성의 사령탑’이 있다.

최근 ‘보수’의 흐름과 관련해 눈에 띄는 모임이 있다. ‘목요모임’과 ‘화요모임’이다. ‘목요모임’은 2주일에 한 번씩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서울클럽에서 열린다. 20여 명의 보수 인사들이 참석해 주요 현안에 대해 전문가가 발제한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한다. 홍준표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도 여러 명 이 모임에 나가 발표를 했다.

행동하는 보수파 “한나라당 못 믿겠다”

‘화요모임’은 매주 화요일 아침에 열린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한 빌딩에서 모임이 이루어지는데, 사회 전반적인 현안을 검토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활동 방향을 논의한다. 군 정보기관에서 근무했거나 폭넓은 해외 정보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동향이 주제에 오르기도 한다.
두 모임에는 서정갑 국민행동 본부장·조갑제 ‘조갑제 닷컴’ 대표· 이동복 전 국회의원·김석우 전 통일부차관·김상철 전 서울시장·박근 사단법인 한·미 우호협회 회장· 박정수 전 해병대 장군· 박용옥 전 국방부차관, 유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모임의 한 인사는 “이들은 ‘보수’라는 말 대신 애국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현 정권이 나라를 위기로 빠뜨리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북한 김정일 정권에 넘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조명하자 고무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성향 때문에 한나라당과 어떤 연계가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한나라당을 기회주의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모임에 참석하는 한 인사는 “사학법 개정이나 대북 정책 등에서 한나라당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인사들은 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정책원 김광동 원장은 “‘보수’ 세력은 새로운 정치 조직을 만들 능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대안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선 대비해 적극적인 행동 펼칠 듯

‘보수’ 세력의 움직임은 한나라당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애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에 별 열의를 보이지 않던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가 “재향군인회 등이 벌이는 전국적인 서명 운동에 당 차원에서 적극 참여하겠다”라고 밝히는 등 보수화하고 있다. 몇몇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시한부 농성을 벌였는데 강대표는 이들을 ‘의병’이라고 추어올렸다. 전국을 돌며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단독 행사 규탄 대회’도 열고 있다. 그렇잖아도 5·31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이후 힘을 얻은 보수 기류가 한나라당내에 더욱 가속·고착화하는 모양새다.

‘보수’ 세력의 움직임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행동이 현 정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대결 전장’인 내년 대선을 그냥 두고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인터넷 대안팀’을 가동하고 대학생들을 조직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대통령선거에서 거푸 패배한 한나라당에 이들 ‘보수’ 세력은 계륵과 같다. 무시하자니 내부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고 한몸이 되자니 ‘도로 민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두 번의 대선은 어떤 당이건 중도 세력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패배한다는 교훈을 보여주었다. 한나라당이 또다시 대선 패배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