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까지 뻗은 경찰 인사 부패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1.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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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때만 되면 너도나도 ‘줄 대기’ 혈안…‘경위 1천만원·총경 3천만원·경무관 5천만원’이 정설

경찰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인사·이권 비리’ 회오리에 휘말렸다. 전직 경찰청장부터 총경급 간부들이 비리에 대거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59)은 지난 2009년 함바집 브로커 유상봉씨(65·구속 기소)에게 인사 청탁 등의 명목으로 1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이 터진 후 일선 경찰관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강 전 청장의 경우 굳이 돈을 받지 않아도 퇴임 후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 출신이어서 비(非)고시 출신들에 비해 퇴임 후 입지가 안정적이었다. 여기에다 ‘전직 경찰청장’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변호사로 활동할 경우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실제 강 전 청장은 퇴임 후 대형 로펌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해왔다.

강희락 청장 시절 당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에게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가 파면당한 채수창 전 서울강북경찰서장은 “강희락 청장 시절에 충남 아산 경찰연수원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이때 강청장은 ‘욕먹는 경찰이 되지 말자’라는 말을 열 번도 더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욕먹는 짓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 지난 1월10일 ‘함바집 비리’ 의혹과 관련해 1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서울동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강 전 청장은 왜 금품을 받은 것일까. 이에 대해 한 전직 경찰 간부는 “강 전 청장이 돈 쓸 일은 많은데 판공비에 한계가 있어서 검은돈을 받은 것 같다”라며 경찰 총수라는 자리에서 나름으로 애로 사항이 있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전직 경찰 총수나 지방 청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과 박종환 전 충북지방경찰청장은 “(판공비로) 직원들 밥 사주고 업무 진행하는 데 부족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찰청장의 연간 판공비는 5억5천만원 정도이다. 이를 월별로 따져 계산해보면 매월 4천5백83만원이라는 금액이 된다. 경위급(4~5호봉)의 월급과 맞먹는 액수로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서 강 전 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인사 청탁한 것으로 드러난 경찰 간부는 모두 다섯 명이다. 검찰은 이들의 신상을 파악하고 금품을 제공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이들 간부들은 인사 청탁을 한 뒤에 경정에서 총경으로 승진한 뒤 경찰청과 지방경찰청 등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외에도 유씨를 통해 인사 청탁을 한 총경급 간부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까지 경찰 내부에서는 인사철만 되면 각종 루머가 떠돌았다. ‘누가 얼마를 주었느니’ 또 ‘누구는 힘 있는 누구의 줄을 잡았느니’ 하는 것들이다. 승진 인사가 이루어진 후에는 매관매직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신상과 액수까지 떠돌았다. 이번 ‘함바집 사건’이 터진 이후 경찰 내부에서는 한때 ‘강희락 리스트’가 소문으로 돌았다. 다수 경찰관의 말에 따르면 계급마다 ‘로비 가격’이 매겨지고 있는데, 보통 경위는 1천만원, 총경은 3천만원, 경무관은 5천만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 중 2006년부터 경사 8년이면 자동으로 경위로 승진하는 ‘경위 근속 승진제’가 도입되었다. 하위직 경찰관들은 경감까지 근속으로 승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줄 없으면 돈으로 승진한다’는 문화 팽배

▲ 지난 1월12일 서울시 경찰청 본청에서 열린 전국 지휘관회의에서 조현오 경찰청장 등 지휘부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인사철만 되면 청장을 비롯해 인사 라인에 있는 간부들이 외풍에 시달려야만 했다. 현행 경찰 인사 내규를 보면 총경급 이상 간부는 경찰청장이, 경감과 경정은 각 지방 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다. 경위에서 경감까지의 경우 서장이 추천서를 써주게 되어 있고, 순경에서 경위까지는 서장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순경에서 경위까지의 승진 여부는 일선 서장의 전권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위직 경찰관들의 승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위까지 근속 승진이 가능하지만 서장은 ‘특별 승진’과 ‘심사 승진’이라는 인사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내가 서장 할 때 돈을 가져온 경찰관이 있었다. 한 번은 공개적으로 돈을 돌려준 적도 있고, 청문 감사관을 불러서 ‘본인에게 돌려주라’고 한 적도 있다. 그 다음부터는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경사는 “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경위까지는 얼마든지 승진시킬 수가 있다. 그러니 서장한테 잘 보이고, 줄을 서고, 돈을 갖다 바치면서까지 승진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경급 이상의 간부는 청장 등 최고 지휘부가 로비 대상이 된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재직 시절 나한테 돈 봉투를 들고 오는 간부들이 더러 있었다. 이때는 도로 돌려보내면서 공개 석상에서 간접적으로 경고했다”라고 말했다.

금품은 주로 현금이 오가고 있으며, 돈을 전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이다. 경찰서에 있는 사무실에 직접 돈 봉투를 들고 찾아가거나, 본인이나 부인이 해당 간부의 집으로 방문해서 돈을 전달하는 방법 등이다. 직접적인 로비가 힘들거나 권력 주위에 있는 배경을 내세우기도 한다. 브로커 유씨에게 인사 청탁한 총경급 간부들의 경우 강 전 청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브로커 유씨에게 금품을 제공하며 간접적으로 인사 청탁한 경우에 속한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총경 승진 인사에서 탈락한 경정급 간부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경찰관들 중에서 인사 원칙이 통한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솔직히 줄이 없으면 돈을 주고라도 승진해야 한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나도 인사 청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 만연되어 있는 인사 비리는 어떻게 척결해야 할까. 박종환 전 충북경찰청장은 “모든 것은 총수 한 사람이 좌우한다. 어떤 사람이 총수가 되느냐에 따라 경찰의 독립성·중립성·독자성이 지켜질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경찰은 순혈주의, 폐쇄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을 전향적으로 과감하게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안위원회’를 신설하든지, 지금의 ‘경찰위원회’를 강화해서 청장을 외부에서 공모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찰 조직의 독립성과 투명성 그리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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