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경영권 승계 ‘완결판’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7.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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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서 다시 확인된 ‘삼성의 힘’

7월17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참석자 중 70% 가까운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다. 삼성 측은 두 회사의 합병이 삼성물산의 신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건희·이재용 오너 일가가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게 된 게 이번 합병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합병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8부 능선을 넘었다고 재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진행되어온 삼성그룹 3세 승계 작업이 당분간은 숨 고르기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대주주 자격을 얻은 만큼 급박하게 계열사 재편에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또다시 계열사 상장이나 재편에 나설 경우 오히려 부정적 여론을 키울 수 있다.

삼성물산은 7월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대회의실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제1호 의안인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 이로써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9월1일자로 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으로 출범하게 됐다. 주총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는 이날 낮 12시47분쯤 “1억3235만5800주가 투표에 참여해 9202만3660주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 위임장을 제출하거나 현장 표결로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의 참석률은 83.57%로 집계됐다. 전체 주식 총수(1억5621만7764주) 대비 합병 찬성률은 58.91%다. 반면 확실한 반대표는 엘리엇(7.12%)과 메이슨캐피털(2.18%)을 포함한 외국인 및 소액주주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향후 합병 무효 청구소송을 내거나 통합 삼성물산 주주로서 삼성을 상대로 공세를 펼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 지분(7.12%)은 1 대 0.35 비율로 계산하면 통합법인에서는 2.03%로 줄어든다.

7월17일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최치훈 사장이 의사봉을 두들기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합병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가 된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9.4%를 가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활용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합병 전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4.06%, 제일모직은 7.21%를 보유하고 있었다. 두 회사가 합병함에 따라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11.27%가 됐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또 다른 주요 주주인 삼성생명 지분(7.21%)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20.76%)과 제일모직(19.34%)이 1대와 2대 주주다. 종합해보면 이 부회장은 본인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0.57%와 특수관계인 및 계열사 지분을 합쳐 17.64%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됐다. 또한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 순환출자 구조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에서,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해졌다. 이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남은 것은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통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7.2%) 고리를 끊는 것과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좀 더 늘리는 것이다. 삼성은 한 차례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을 다시 추진하고, 제일모직 및 삼성물산에 흩어져 있는 건설 사업 부문을 합치는 등의 사업 재편 마무리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은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잠시 주춤했지만 합병안 통과가 주총 참석자의 70% 가까운 압도적 찬성으로 이뤄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삼성그룹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시켰다. 사실 주총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삼성그룹은 한 표가 아쉽다며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주주들이 합병안 찬성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의 여론전이 엄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삼성의 완승으로 끝났다. 특히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가와 소액투자자들이 삼성 측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계열사 재편이 오너 일가를 위한 편법적 경영권 승계 과정이었다는 지적이 부각된 것은 삼성그룹과 이건희·이재용 오너 일가에게는 두고두고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20여 년 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통해 편법적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제일모직 통폐합, 삼성SDI·삼성석유화학 사업 재편, 삼성SDS·제일모직 상장, 방산·화학 4사 매각 등을 통해 승계 작업을 가속화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사실상 오너 일가를 위해 헤쳐 모인 셈이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희생도 불가피했다. 제일모직 주가는 거의 최고가에서, 삼성물산은 거의 최저가에서 합병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합병은 한국 사회에도 많은 숙제를 던져줬다. 외국계 투기 세력의 공격을 막을 만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과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단 현재까지의 시점에서만 본다면 이번 합병 과정에서 다수의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그룹은 앞으로도 4세 및 5세 승계를 계속하고자 할 텐데 과연 이런 식의 부의 세습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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