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문화인들을 열정으로 교묘히 포장”
  • 고재석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7 16:03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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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 급격히 팽창하는 동안 과노동은 일상화’ 지적

 

“문화 만든다면서 목숨 위협. 세상은 이것을 열정으로 포장.” 영화 평론가 박우성씨가 4월18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지난해 10월26일 세상과 이별한 고(故) 이한빛 CJ E&M(tvN) PD를 염두에 두고 꺼낸 표현이다. CJ그룹은 오랫동안 ‘문화를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왔다. 문화로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겠다고 광고해 왔다. tvN이 ‘즐거움의 시작’이라고 홍보해 왔다. 정작 즐거움을 만드는 일터는 창작자들의 격무와 야근에 의존해 왔다.

 

그런 일터에서 열정은 더 이상 삶을 밀고 나가는 동력일 수 없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은 화려하다. 장막을 걷으면 ‘열정노동’이 현장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한 시나리오 작가와 인디뮤지션의 죽음은 아직도 빈번히 회자된다. 저작권 약탈 등 불공정 행위도 창작자의 삶을 좀먹는 대표적인 적폐로 꼽힌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는 동안 과노동이 일상화됐다고 지적한다. 이제야말로 수면 아래 잠긴 구조적 병폐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충고한다.

 

4월20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청년유니온 회원이 이한빛 PD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미디어오늘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32세였다. 지병과 굶주림이 주된 사망원인으로 풀이됐다. 최씨는 2006년 단편 《격정 소나타》를 통해 ‘제4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유망 예술가였다. 앞서 2010년 11월에는 노래 《절룩거리네》로 유명한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뇌출혈이다. 이씨가 숨진 후 불공정한 음원 수익 배분 구조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 농단 정국을 뜨겁게 달군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 역시 근본적으로 보면 열정노동과 맞물려 있다. 4월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측은 “블랙리스트 사업은 종북 등 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단체에 국가보조금이 지원돼선 안 된다는 국정기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문화계 인사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재판에서 얘기해 놀랐다. 예술창작자에게 성장의 과실이 ‘낙수효과’처럼 흐르지 않는 상황에서 보조금은 중요한 공적 지원 체계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의미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처한 현실도 함께 아울러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도구로 변하고 있다”

 

저작권 약탈 등 불공정 관행도 주기적으로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는 논란거리다. 방송음악 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 사태가 대표적이다. 피해 작곡가들이 공개한 저작물 계약서에 따르면, “창작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독점적으로 영구히 갑이 관리하며, 저작인격권의 행사는 영구히 갑이 행사하며 관리한다”고 적혀 있다. 피해 작곡가들을 지원하는 변호인단은 이를 두고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 위반이라고 밝혔다. 소설가 손아람씨는 “예술가에게 자기 이름이나 작업은 미래의 자산이다. 그걸 지렛대 삼아 다음 작업을 얻고 성장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없어지니 재생산할 여지도 사라졌다”고 이 사태의 의미를 규정했다. 경영자가 창작자 행세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혁규 문화연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문화계 적폐는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정부의 검열이나 행정상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현재 시장에서도 불공정거래와 계약직 중심 고용형태, 야근이 일상화한 노동환경 등 쌓인 문제가 넘친다”며 “그간 문화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는 동안 과노동의 문제가 일상화됐다. 한쪽에서는 권력의 논리, 다른 한쪽에서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도구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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