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말하는 이 땅에서 ‘폴리테이너’로 살아가는 법
  •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8 16:53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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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치적 성향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

 

김제동은 꼬장꼬장하지만, 밉지 않은 말투를 가졌다. 묵직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콕 집어 하는 습관은 간혹 오해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군 사령관 부인을 ‘아주머니’라고 불러 영창에 다녀왔다”고 밝히자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상 조사를 요청했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이 결국 거짓말 논란으로 번졌다. 특정 정치인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을 일삼아왔던 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회 된다면 박 전 대통령 얘기 들어보고 싶다”

 

이 땅의 대표적 ‘폴리테이너’(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라 불리는 김제동을 만난 건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김제동의 톡투유》)가 방송 100회를 맞은 날이었다. 그의 표정이 밝았다.

 

“지난 몇 달간 광화문 광장 등에서 제일 많이 떠든 놈이 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적어도 《김제동의 톡투유》에서만큼은 말을 줄이고 듣는 입장이 됩니다. 듣는 즐거움이 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4시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입이 간지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게 보이더군요.”

© 베이직 하우스

 

김제동에게 ‘표현’은 시작이고 끝이다. 그에게 ‘말’에 얽힌 일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한 언행과 정치색은 몇 차례 구설에 올랐고, 덕분에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하차해야 했다. 혹자는 그의 이런 행보를 두고 “주목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꼬집는가 하면, 혹자는 “사이다 발언”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김제동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이 제 정치 성향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엔 관심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에서 한 개인이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당연하다 생각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인이 매체를 통해 그 성향을 드러내는 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자유니까요. 저를 오해하시는 것도, 제 의도를 곡해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저에 대한 이미지를 정해 놓고 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제 이미지를 국한시키다 보면 고정관념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는 고소나 고발로 조치를 취하고 있어요. 인격 모독 같은 건 용납할 수 없거든요. 저도 저를 지킬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합법적이지 않은 세력과 타협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김제동은 대화 내내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헌법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까?” “헌법에서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되묻곤 했다. 헌법에 관한 이야기라면 몇 시간이고 지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헌법 37조 1항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마치 연애편지 같지 않나요? 여기에 적어놓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는 뜻으로 들렸죠. 헌법 어디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 구절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소신껏 드러내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겨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앞장서서 외친 김제동.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광화문 광장으로 뛰쳐나갔고,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투사 이미지를 덧입은 김제동, 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역시 할 말은 했다.

 

© 베이직 하우스

 

“영창 발언,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어”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다 지켜봤습니다. 결정이 난 순간, 제 몫이 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촛불집회위원회에서 참석을 요청해 왔지만 거절했어요. 국민이 이룬 성과고 축제의 장인데, 제가 공을 받는 게 불편했습니다. 파티에까지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유일하게 나가지 않은 촛불집회일 거예요. 저는 박 전 대통령과는 소통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분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고 싶어요. 그동안 이야기하시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요. 지금도 하고 싶은 말은 수십 가지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교적 솔직하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김제동에게 앞에서 언급한 ‘영창 발언’ 논란에 대해 물었다. 김제동은 억울한 듯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돌아오는 답변이 김제동스럽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창에 대한 발언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그분들과 무슨 게임을 했는지까지도 정확하게 기억납니다. 거짓말을 한 부분이 있다면 ‘아주머니’라고만 발언한 거예요. 그때 저는 ‘어머니’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썼던 것 같거든요. 국정감사에서 불러주면 이런 이야기를 다 하려고 했는데 안 불러주더라고요.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김제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에서 ‘말 잘하는 사람’으로 데뷔해 그동안 《해피투게더》(KBS2), 《힐링캠프》(SBS) 등을 거쳐왔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말 한마디로 박수를 이끌어내고 공감을 얻어왔다. 세간의 이목이 ‘정치’를 향해 있는 지금, 김제동은 무슨 말을 할까. 10년 만에 진보 정권이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는 김제동의 심경은 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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