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딸이 독립했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8 15:23
  • 호수 1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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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

 

딸이 ‘독립’을 했다. 성년에 이른 자녀가 부모 집을 떠나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일에 독립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결혼이나 전근, 유학 같은 외적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니, 달리 부를 말도 마땅치는 않다. 이로써 우리 가족도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을 일컫던 말)이 아닌 뭐라 불러야 할지 마땅찮은 분산가족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딸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고 어느 나이가 되면 부모를 떠나고, 아들들은 결혼할 때까진 부모 품에서 사는 것을 보는 일이 잦다. 내가 젊었을 때는 그 반대가 일반적이었던 듯하니, 풍속이 많이 바뀌었다. 이미 여성이 혼자 사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다.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왜 딸들은 독립을 할까. 결혼제도 밖에서 혼자 사는 일에 우리 사회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헤어져 따로 살게 된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어떤 권리와 의무를 지닐 수 있을까. 

 

변화하고 있는 풍속과 잘 변하지 않는 통념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과 고통이 발생한다. 홀로 사는 여성이 맞닥뜨리는 세상은 반드시 둘러엎어야 할 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지 않겠나. 나는 페미니스트니까, 이런 일을 탐구해 좀 더 사랑 넘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식과 태도와 정책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바꾸어 말하면, 낯설고 간단치 않은 사람살이의 틈새에서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일을 나는 페미니즘이라 부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후보의 등장 역시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현수막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부터 성폭력 성차별 OUT

 

그런데 막상, 이삿짐을 따라 서너 평 남짓한 딸의 방에 짐을 풀면서 내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있다. 굶고 살 것도 별로 걱정 안 되고 외로울 것도 걱정이 안 되는데, 방문 잠금장치 확인했냐? 더 달아도 되냐? 혼자 있을 땐 문 꼭 닫아라 등등, 보안에 대한 염려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 있다. 무의식 깊숙이 들어앉아 잘 사라지지 않는 성폭력사회에의 공포다.

 

이런 공포를 남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이 들어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선 공포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어느 날 깨달았을 때 정말 생경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이는 젊은 사람들이 착각하듯 나이 든 여성은 성적 대상화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벼슬인 사회에 살기 때문이다. 성적 폭력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수컷 됨’이 아니라 ‘권력 지님’이라는 것의 방증 아니겠는가. 권력을 어떤 식으로든 부림질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남성들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는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취약한가를 너무 잘 알다보니 나도 모르게 거듭, 문 잘 잠그고….

 

딸은 태권도 유단자고 복싱을 오래 해서 도장에서는 스파링 상대를 하려는 남자가 없을 정도로 주먹이 세다. 그러니 내 두려움은 실제로 물리적 폭력에 취약할 것 같아서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이런 두려움 또한 마음을 부패하게 하는 적폐다. 돌아오는 길 육교에 매달린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 글귀가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다. ‘서울부터 성폭력 성차별 OUT’.

 

이따위 두려움이 아니라, 이 ‘독립’ 덕분에 명실상부하게 수많은 1인 독거인간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우리 가족의 생각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며 이사를 돕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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