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권력이동⑥] 유재석·봉준호·방탄소년단의 공통점은 ‘인터넷 플랫폼 선호’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 10:40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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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유튜브가 뒤흔드는 콘텐츠 생태계

이른바 ‘국민 MC’ 유재석의 행보는 언제나 방송가의 관심사다. 유재석 정도면 국내 모든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골라서 출연할 수 있다. 그런 유재석이 국내 방송사들을 제치고 미국 OTT 업체의 신작 출연을 결정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동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미국의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회사다. 유재석은 넷플릭스의 신작 예능 《범인은 바로 너》에 출연했다. 채널 경쟁의 격화로 요즘은 스타 PD도 귀하신 몸이 됐다. 《범인은 바로 너》엔 《X맨》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등을 히트시킨 스타 PD들이 합류해 화제성이 더 커졌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시즌2 제작을 확정했고, 유재석의 합류도 결정돼 업계를 또 놀라게 했다. 한국 방송사라면 실패한 작품을 다시 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유재석 같은 스타가 그런 프로젝트에 다시 합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범인은 바로 너》가 던진 충격은 또 있다. 바로 한국 제작환경과는 차원이 다른 물적 토대다. 이 작품의 PD들은 “연출과 제작에 관한 한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며 “주간 단위로 방송되는 한국 지상파 예능에서는 설계도 그리기, 세트 제작, 사후작업을 하기 힘들지만, 넷플릿스 제작물은 사전제작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디테일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범인은 바로 너》의 제작환경이 우리 방송사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한국 최고의 스타가 국내 방송사를 제치고 미국 OTT 업체와 신작을 함께하고, 그 OTT 업체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보다도 더 좋은 제작여건을 제공하며, 실패하더라도 후속편을 제작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니 우리 콘텐츠 생태계를 뒤흔든다는 말이 나온다.

 

유재석,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포스터(왼쪽부터) ⓒ 연합뉴스·시사저널 포토

 

현금을 태우는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미국 회사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범인은 바로 너》만 하더라도 25개 언어로 번역돼 190개국에서 방영됐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 내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어느 나라에서건 터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범인은 바로 너》는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 등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입장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국내 시장만 대상으로 했을 때는 국내의 다수·주류 취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190개국을 대상으로 한다면 비록 국내에서 소수 취향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제작에 나설 수 있다. 바로 그런 통로를 넷플릭스가 열어주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고객들의 취향을 2000여 개로 세분해 빅데이터 분석에 나선다. 그런 분석 결과 시장성이 있는 콘셉트라면 특정 국가에서 소수 취향이더라도 세계 시장 차원에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성장할 때부터 저돌적인 제작 투자로 ‘현금을 태운다(캐시 버닝·cash burning)’는 평을 들었다. 그런 제작 투자의 결과 이미 거대 케이블 방송사인 HBO의 아성을 무너뜨렸고, 영화계도 넘보고 있다. 작년 칸영화제에서 넷플릭스 제작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하지 않기로 하면서 넷플릭스 콘텐츠에 각을 세웠지만,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결국 넷플릭스 영화들을 경쟁부문에 초청하고 말았다. 올해 넷플릭스가 오히려 칸영화제 거부 선언을 하자 칸이 당황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칸의 굴복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넷플릭스의 다음 성장동력이 아시아 시장인데, 한국이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적인 측면이 있고, 더 나아가 아시아에서 OTT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콘텐츠 제작기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유추앙극 이사는 “한국 문화의 수출 채널 역할을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신호탄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였다. 제작비 6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지만 넷플릭스엔 당시 제작예산의 1%에 불과했다. 넷플릭스의 제작예산은 올해 약 9조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 후 《범인은 바로 너》 제작에 이어 이병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해외 방영권에 300억원을 투입했다. 이 작품은 제작비 부담 때문에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포기했는데 넷플릭스의 가세로 만들어졌다. 넷플릭스의 자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회당 제작비가 최대 20억원에 달하는 드라마 《킹덤》 등 다양한 콘텐츠를 국내에서 제작 중이다. 국내 제작사들이 본격적으로 넷플릭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해외 방영권도 적극적으로 사들인다. 올여름까지 550여 편 정도를 확보했다고 한다. 《비밀의 숲》이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 소개됐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가 됐다. 우리 드라마 사상 최악의 방송 사고라는 《화유기》 사태는 넷플릭스와의 계약 일정을 맞추려다 터졌다. 이미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우리 방송계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도 선언한 상태다. 당장 제작비를 조달해야 하는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의 투자를 반기지만, 방송사와 같은 플랫폼 업체들은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넷플릭스가 기존 방송사들을 밀어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 플랫폼 위협하는 유튜브의 영향력


유튜브도 우리 플랫폼 업계에 위협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최근 1개월 동안 유튜브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15~34세 소비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어떤 채널이 없으면 일상이 가장 지루해질까?’라고 물었을 때 유튜브가 44.5%로 1위를 차지했다. 젊은 세대에게 유튜브가 절대적인 매체가 돼 간다는 뜻이다. 이들은 상품 정보도 연예인(26.6%)보다 유튜버(73.4%)가 알려주는 정보를 신뢰했다. 이러니 유튜브 스타가 줄을 잇는다. 


개그맨 정유미, 에이핑크의 윤보미, 개그맨 김기수 등 기존 연예인들도 속속 유튜브 세계에 ‘데뷔’하고 있다. 오로지 방송사의 섭외만 기다리던 시대가 끝나간다. 방송사 절대권력도 끝나간다. 한류 콘텐츠는 유튜브를 통해 세계로 진출해 싸이와 방탄소년단 같은 놀라운 성공의 역사가 만들어졌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라는 개별 회사의 명운은 부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 방송사들의 아성을 잠식하는 것은 필연이다. 사람들이 뉴미디어에 빠지면 방송 시청시간이 줄어든다.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성장할수록 인터넷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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