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원 논란을 보며 정태춘의 노래 《인사동》을 떠올리다
  • 강헌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09 15:00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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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문화재와 음악 그리고 기막힌 자본주의

새해 벽두부터 여의도 정가를 뒤흔든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 달이 지난 설날 연휴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손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직 사퇴는 물론 민주당까지 탈당했다. 자신을 비난한 언론과 정치권에 전면전을 선포했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연일 ‘투기’ 프레임으로 손 의원을 공격했다. 

사실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에 대한 명확한 법령이 미비한 지금 상태에서 손 의원의 목포 부동산 매입을 ‘투기’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유효한 전술이다. ‘투기’라는 프레임이 적용되는 순간 대한민국의 그 어떤 누구도 빠져나가기 어렵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투기로 인한 막대한 한탕주의 이익을 마음속에 꿈꾸면서도 타인, 특히 공직자가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를 폭발시킨다. 

손혜원 의원은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해충돌’ 문제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 연합뉴스
손혜원 의원은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과 ‘이해충돌’ 문제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 연합뉴스

투기인가 보존인가 질문 던진 ‘손혜원’

정말이지 인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존재일까? ‘손혜원 파문’을 둘러싼 목포 시민들과 외부 사람들의 입장이 묘하게 엇갈린다. 데일리안의 여론조사 결과 손 의원의 부동산 매입이 ‘투기’라는 응답이 47.6%로 ‘아니다’는 응답 39.8%보다 조금 앞섰다. 반면 여론조사 기관 STI가 목포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라는 응답자가 36.6%인 반면 목포 구도심을 재생하려는 노력이라고 응답한 이가 57.3%로 현저히 앞섰다. 또한 손 의원의 계획이 목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선 ‘그렇다’가 무려 63%, ‘아니다’는 응답이 28.3%에 불과했다. 나아가 목포 시민들은 ‘위법 사항이 없다면 문제 될 것 없다’가 49.5%, ‘국회의원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지적한 이가 44.2%로 균형을 이루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개인적으로 나는 손 의원의 의도가 순수했음을 믿는다. 그 사람 개인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상품 디자인과 네이밍으로 자수성가한 그가 뒤늦게 나전칠기를 비롯한 우리의 전통공예에 빠져 사라져가는 가구와 공예품들을 사비로 사 모은 열정을 알기 때문이다. 남산에 있는 그의 박물관에서 보았던 나전칠기 옷장은 내 어린 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안방의 ‘자개옷장’이 아니라 하나의 압도적인 예술품이었다.  

상품의 디자인은 가장 첨단의 자본주의가 시장에서 펼치는 마술이다. 살아남기 위해 시장의 성공만을 추구해 왔던 사람이 전통이라는 가치에 눈을 뜨고, ‘옛것’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익장의 열정을 어찌 투기라는 반도덕적인 프레임으로 엮을 수 있으랴. 

투기는 타인의 손실과 자신의 비시장적인 이익을 전제로 한다. 투기로 몰아붙인 SBS도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한 발짝 발을 빼 이해충돌의 문제로 이 사안을 몰아간다. 이 이해충돌의 문제에서 손 의원 자신이 공격당할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좀 더 공익적으로, 좀 더 희생적으로 자신의 투자를 선명하게 공식화했으면 비(非)목포인의 목포 사랑으로 칭송받아 마땅했을 터인데, 오얏나무(자두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는 의심을 피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골동품을 수집하는 행위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 행위이기도 하고 옛것을 사랑하는 문화적으로 고결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쪽으로 귀결되는지는 그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인지 자신과 자신의 후손을 위한 것인지로 결정된다.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며 얼마나 많은 문화재들이 유실되고 유출됐던가? 

가수 정태춘은 반문화적인 폭력을 통쾌하게 직설적으로 풍자한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다. ⓒ 연합뉴스
가수 정태춘은 반문화적인 폭력을 통쾌하게 직설적으로 풍자한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다. ⓒ 연합뉴스

천민자본주의 시대의 가객, 정태춘

이런 반문화적인 폭력을 통쾌하게 직설적으로 풍자한 정태춘의 노래 《인사동》(1989)이 떠오른다. 올해로 활동 40주년을 맞은 정태춘은 김민기와 한대수, 그리고 조동진의 뒤를 잇는 위대한 한국의 싱어송라이터다. 경기도 평택의 농촌 출신인 그는 토속적인 감수성과 도시 시민의 비판적인 지성을 동시에 노래를 통해 구현한 천민자본주의 시대의 가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의 막바지에 데뷔한 그는 전혀 정치적인 언술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국가 검열기관은 그의 표현을 시비 삼았고 끊임없는 수정 지시를 내리곤 했다. 연말 방송사의 신인상도 수상한 제도권 안의 가수였던 그가 1987년의 시민항쟁을 거치며 ‘딴따라’로서의 순응적인 연예인의 옷을 벗어던지고 한 사람의 시민예술가로 거듭난다. 전두환 시대의 국책가요 《아! 대한민국》을 패러디한 《아! 대한민국》을 담은 동명의 앨범(1989)은 그러한 치열한 내면 투쟁의 산물이다. 

그는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부하고 ‘불법적으로’ 이 음반을 발표했고, 당연히 사전심의 조항 위배로 기소된다. 표현의 자유를 향한 그의 이로운 투쟁은 결국 199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이끌어내게 되고,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의에 의한 대중음악의 국가적 검열을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역사적인 음반 안에 실린 《인사동》은 모든 전통적 유산까지 상품으로 만드는 기막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놋요강에 개 밥그릇까지/가마솥에 누룽지까지/두메산골 초가 마루 밑까지/뒤져뒤져 쓸어다 돈딱지”.

본의 아니게 목포가 사람들의 관심 속에 떠올라 이 잊힌 예향(藝鄕·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고을)을 찾는 사람들이 이번 파문으로 크게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정이야 어쨌든 목포 구도심 재생사업이 ‘문화적으로’ 잘 이루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손 의원의 ‘나전칠기 박물관’도 꼭 들어서기를 새해 아침에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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