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내년 미국 대선판도 변수될까
  • 김원식 국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0 11:00
  • 호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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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취한 펠로시’ 조작영상 놓고 SNS마다 가짜뉴스 기준 달리해 논란 가중

“가짜뉴스(Fake News)에 대한 규정도 모호하고 대응책도 부실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최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마치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듯한 장면을 담은 이른바 ‘술 취한 펠로시 동영상’ 확산 사건을 두고 워싱턴의 정치평론가가 내놓은 말이다. 5월22일(현지 시각)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와 보수진영의 일부 사이트에 펠로시 하원의장이 마이크 앞에서 마치 술에 취해 횡설수설 연설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올라와 삽시간에 확산됐다. 더욱 큰 문제는 그다음에 펼쳐졌다. 사실 이 동영상이 가짜일 가능성은 누구나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짜 동영상을 만드는 데 별다른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동영상 재생 속도만 늦춰 만든 것인데, 기가 막히게도 마치 펠로시 의장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듯한 장면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사실 동영상 조작을 통해 가짜뉴스가 범람할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2018년에는 ‘딥페이크(DeepFake)’라는 첨단 영상물 편집 기술까지 등장했다. 정계나 연예계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는 가짜 포르노 영상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유포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유명인들이 등장하는 다른 일반적인 동영상에서 표정 변화 등 모든 데이터를 축적해 포르노 영상과 그럴싸하게 합성하면 마치 유명인이 진짜 포르노에 등장하는 듯한 동영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이른바 ‘모나리자 동영상’으로 알려졌듯이, 과거 그림이나 사진 한 장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말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는 등 첨단기술은 끝을 모르고 확장하는 추세다. 그런데 별다른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단지 동영상 재생 속도만 조금 늦춘 ‘펠로시 동영상’이 마치 술에 취한 듯이 횡설수설하는 동영상으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페이스북등SNS에서낸시펠로시하원의장이술에취한듯한‘가짜동영상’이확산되고있다. ⓒ 연합뉴스·freepik
최근페이스북등SNS에서낸시펠로시하원의장이술에취한듯한‘가짜동영상’이확산되고있다. ⓒ 연합뉴스·freepik

유튜브는 바로 삭제, 페이스북은 삭제 거부

그런데 이번 ‘술 취한 펠로시 동영상’ 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유명 SNS 기업들이 해당 동영상의 삭제 여부를 놓고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더 확산됐다. 유튜브는 해당 동영상에 관한 논란이 제기되자 “게시할 수 없는, 명백히 규정을 위반한 동영상”이라고 밝히고 바로 삭제했다. 하지만 트위터는 해당 동영상과 관련해 명시적인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트위터의 게시물 정책은 선거를 조작하거나 유권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 한 선출된 정치인의 정확하지 않은 발언은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트위터에는 ‘술 취한 펠로시 동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페이스북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해당 동영상이 조작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페이스북에 게시되는 정보가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해당 동영상 자체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페이스북은 표현의 자유와 안전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입장을 공개했다. 한마디로 해당 동영상이 조작됐다 할지라도 삭제까지 할 가짜뉴스라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페이스북은 동영상을 삭제하지 않는 대신 뉴스피드에서 노출을 크게 줄였다. 또 이용자가 공유하고자 할 때는 해당 동영상을 ‘거짓’이라고 밝힌 독립 ‘팩트체킹(fact-checking)’ 단체 사이트로 연결되는 참고 링크를 첨부했다.

같은 동영상을 놓고도 유력한 거대 SNS 기업들이 판단을 완전히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파문은 또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각종 언론매체에 이러한 내용이 보도되자 오히려 해당 동영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폭발했다. 특히 펠로시 의장이 속한 민주당 의원들은 가짜 동영상이 분명한데도 이를 삭제하지 않는 페이스북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한 일을 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언론에 해당 동영상이 게시된 사이트로 지목된 ‘폴리틱스워치독(Politics WatchDog)’은 “펠로시 의장이 술에 취해 있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글을 올리며 반박했다. 또 “여기는 자유국가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까지 컨트롤할 수 없다”라면서 자신들은 보수적인 뉴스매체도 아니고 그렇게 보도한 언론들이 ‘가짜뉴스’라고 되레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오히려 해당 동영상은 다시 수백만 회의 조회 수가 증가하는 등 파문은 번져갔다. 페이스북이 해당 동영상을 유지하는 입장을 밝히자, 사용자들이 이를 공유하거나 다시 게시하면서 오히려 더 확산됐다. 페이스북의 이러한 입장에 대한 논란도 더 거세지는 형국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페이스북의 방침을 지지하는 쪽도 있지만, 조작된 동영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짜 정보 확산에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행위를 방조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범람하는 가짜뉴스에 여론조작 우려 확산

미국 유력 매체인 워싱턴포스트(WP)는 5월28일, 이러한 논란에 대해 “가짜뉴스의 다음 경계(next frontier)에 대한 미국의 준비 부족을 뚜렷하게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그나마 이번 동영상은 조작되지 않은 원본 동영상이 있어 서로 비교해 그래도 쉽게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첨단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앞으로 나올 가짜 동영상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2020년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앞으로 등장할 이러한 가짜뉴스나 가짜 동영상들이 미국 대선판도 좌우할 수 있다는 우려다. 가짜이고 조작된 것임을 알면서도 널리 퍼진 술 취한 듯한 동영상 탓에 펠로시 의장의 이미지가 상당히 훼손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펠로시 의장의 딸마저도 트위터를 통해 “비열한 가짜 영상”이라며 “하원의장은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고 적극 방어하는 글을 올린 것은 역설적으로 그 파괴력을 증명하는 셈이다. 현직 대통령과 주류 언론들이 서로 ‘가짜뉴스’와 ‘거짓말쟁이’라고 싸우는 사이 첨단기술도 아니고 간단히 조작한 동영상 하나만으로도 미국 사회가 여론 조작의 도가니에 빠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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