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집 문 앞까지 쫓아간 남성, 강간미수 될까?
  • 남기엽 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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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10회
여성 집 문 앞까지 쫓아간 남성의 행위, 강간미수죄는 되지 않는다.

기사엔 항상 전문가가 등장한다. 전문가 혹은 고위관계자로 통칭되는 이들은 익명으로 대중을 현혹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문가는 샤먼(주술사)이다. 전문가란 그들 외에 남들은 못하는 업(業)을 수행하는 이를 뜻하는데 샤먼은 날씨를 예견하고 질병을 치료했으며 장례절차를 주관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었고 불순한 자는 처벌하기도 했다.

현대도 전문가의 시대이다. 언론·비즈니스·정치에 곧잘 등장하는 이들은 장막 안에서 화려한 사술(詐術)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들이 전적으로 옳을까.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의 저자 데이비드 프리먼은 지금 시대를 ‘전문가 덕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시대’라 정의한다.

투자가·경제학자·은행인은 넘쳐났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경고한 전문가는 없었다. 요즘도 여론조사 조작, 언론의 오보, 의사의 오진은 빈발하다. 익명은 자신 없는 경우일수록 더욱 유용하다. 그럼에도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법절차의 전문가들은 엄정해야 한다.

 

강간 적용되려면, 그에 해당하는 행위를 시작해야

신림동이 뜨겁다. 남성 A는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까지 따라 들어가려 했고 이를 눈치 챈 여성은 급히 문을 닫았다. 남성은 문고리를 흔들며 “문을 열라”했고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기도 했으며 음란행위까지 했다. CCTV가 공개됐고 대중은 경악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① 주거침입의 죄를 범한 사람이 같은 법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및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죄를 범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경찰은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청구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주거침입강간은 처벌이 매우 센 범죄이다. 법정형 최하가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미수범이라고 꼭 감경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안에서 ‘주거침입강간미수’가 인정될까. 일단 주거침입은 인정된다. 주거란 집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공용으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와 계단, 복도 역시 사는 사람들이 감시·관리 하므로 주거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맘에 드는 여성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탄 뒤 추행을 하였다면 주거침입강제추행죄가 적용되어 징역 5년 이상의 처벌을 받는 것이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5월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30대 남성이 5월3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간이 적용되려면 그에 해당하는 행위를 시작(실행의 착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옷을 벗겨 입을 틀어막고 쓰러뜨리는 행동이 그렇다. 법원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개시한 때” 행위를 시작했다고 본다. 말만 들어도 꽤 높은 수준의 폭행 협박이 행위 시작의 요건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법원은 자고 있는 여성의 속옷을 내렸다가 남자가 들어오자 도주한 경우 속옷을 내린 행위만으로는 강간 행위를 시작하였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강간미수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강제추행으로 처벌될 뿐이다.)

이 경우는 어떨까. B는 변태적 성욕을 풀기 위해 건물 7층에 있는 홀로 사는 여성의 방에 침입했다. 여성은 팬티만 입은 채 잠자고 있었는데 B는 누워있는 여성의 가슴과 허리를 만진 뒤 지긋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여성이 B를 보고 놀라 고함을 지르자 B는 여성의 몸 위에 올라타 뒷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입을 막았으며 여성은 이 과정에서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법원은 이 사안에서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슴과 허리를 만졌을 뿐이고 여성에 대한 폭행은 강간의 수단이 아니었으므로 강간미수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거침입성폭력 범죄 판례 중에서는 비교적 최근 선고된 판결이다.

신림동에서 여성을 따라가 10분 동안 문고리를 잡고 늘어진 A는 주거침입강간미수 혐의가 적용되어 ‘행위의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만약 방안에 침입하였다면 무얼 하려 했던 것일까. 인테리어를 구경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음에 든다고 고백하러 들어간 것도 아니다. 성범죄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딱히 죽이거나 다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러나 이건 생각이다. 생각만으로 많은 경우의 수 중 강간이 딱 떨어지므로 강간죄를 적용하자고 하는 것은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샤먼 또는 변사의 몫이지 법률가의 역할은 아니다. 설령 A에게 강간계획이 있었다 하더라도 현행법으로는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 형법은 강간의 경우 예비·음모를 벌하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A를 구속하려 했다면 무리하게 주거침입강간미수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주거침입만을 적용하였어도 되지 않았을까. 입법자는 이런 질 나쁜 주거침입을 상정하여 미리 3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 가능하도록 법조항을 두었고 양태와 정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구속요건을 심사하면 된다.

A의 범행은 우리의 상식을 깨고도 남았다. 아찔했고 특히 당시 여성이 느꼈을 엄청난 공포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아울러 법은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여성의 집에 침입하여 속옷을 벗기고 가슴을 만지다 발각되자 상해까지 입혔음에도 강간의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은 차후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최근 2년간 법원은 전 국회의원의 강간미수를 인정하였음에도 집행유예(징역)를 선고했다. 얼마 전 부산 모 대학의 여자 기숙사에 침입하여 여성의 이빨을 부러뜨리고 강간하려다 실패한 남성에게도 술이 취한 사정이 참작되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야간에 전북 무주군의 어느 주택에 침입해 여성을 추행하고 강간미수를 한 사안에서도 집행유예, 50대 남성이 공원에서 여대생을 성추행하고 업고가 강간미수를 한 사안에서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법원은 압수수색영장과 달리 구속영장 발부엔 매우 신중하다. 심지어 강간을 한 경우에도 기각되는 경우가 있으며 합의한 경우에는 더욱 기각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무에서도 낮지 않은 확률로 기각된다.) 그렇다면 문고리 잡은 A는 재범의 위험성 및 도주의 우려가 있고 강간하고 합의한 범죄자는 없는 것일까?

앞서 거론한 샤먼은 적어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날씨· 질병에 잘못된 예측을 한 샤먼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법리 없는 재판과 기준 없는 영장은 결국 법적안정성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멍들게 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비디오 재판 시대가 열렸음을 실감한다. 2년 전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성 투숙객을 성폭행하려다 상처를 입혀 체포된 C는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러나 구속요건에 있어 C의 행위가 결코 A의 행위보다 가볍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비디오의 존재 여부는 여론에 결정적이다.

A의 여성을 따라가 문고리를 잡은 행위는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런데 수많은 강간·집단강간·중감금·강도 등 범죄자들의 범죄행위가 비디오로 나온다면 A의 행위는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일 것이다. 세상엔 그만큼 잔혹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영상은 참혹하여 차마 공개되지도 않는다.

대중은 충분히 분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가 성범죄에 대한 또 다른 엄격한 기준을 세워 보다 개벽할 안전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중의 미디어리터러시(독해력)에 형사사법절차의 전문가들이 함께할 것은 아니다. 비디오 보편주의는 몰랐던 현상에 대한 대중의 처형담론을 모색하는 순기능과 더불어 정작 대중에조차 공개되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범죄는 제외하는 불합리함이 있다.

앞서 전문가는 그들 외에 남들은 못하는 업(業)을 수행한다고 했다. 그 전문가들이 고대 샤먼보다 못한 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집 문 앞까지 쫓아간 남성의 행위, 강간미수죄는 되지 않는다.

남기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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