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G 배터리, 전자담배에서 ‘퍽’…부상자 발생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4 13:00
  • 호수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첫 폭발 사례…LG화학 “전자담배 업체에서 배터리 함부로 써”

LG화학이 제조한 배터리가 액상형 전자담배에서 폭발해 시민이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앞서 미국에서는 LG화학을 포함한 배터리 제조업체들에 대한 전자담배 폭발 피해자들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번에 국내에서도 부상자가 발생함에 따라 향후 전자담배 배터리의 안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현재 LG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사고 접수와 처리 과정에서 보인 LG화학 측 대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피해자 측에서는 “LG화학이 사고 접수 과정에서 국내에서의 사고 발생을 대비한 처리 절차를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았으며, 사고 발생 두 달이 지난 시점에야 뒤늦게 폭발한 배터리 수거에 나서는 등 사고 조사에 불성실하게 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LG화학 측은 폭발한 배터리 셀의 위험성 여부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전자담배 업체에는 판매를 금하고 있다”며 책임을 전자담배 업체에 돌렸다.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 전자담배가 폭발한 흔적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 시사저널
LG화학 배터리가 장착된 전자담배가 폭발한 흔적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 시사저널

20대 남성, 얼굴뼈 파열·화상

3월10일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이아무개씨(27)는 자택에서 평소처럼 충전한 배터리를 전자담배 기기에 장착하고 가열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이씨의 얼굴 앞에서 전자담배 배터리가 폭발했다. 이씨의 얼굴 바로 앞에서 폭발하면서 이씨는 코 오른쪽 연골이 드러날 정도로 얼굴 피부가 찢어지고 다량의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다. 이씨의 부친은 “그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아들 방에서 ‘뻥’하며 무엇인지 크게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방에 들어가보니 아들이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폭발로 인해 불이 붙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씨 측 대리인이 제공한 피해 사진에서 이씨가 코 오른쪽에 크게 파인 상처와 화상을 입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씨는 곧바로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호송됐다. 병원 진단 결과 이씨는 오른쪽 눈 아래뼈, 오른쪽 위턱, 코뼈 등 세 군데의 얼굴뼈에 골절상을 입었고, 코 오른쪽 날개연골의 손상·파열 및 피부 화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3월11일 새벽 5시30분경 파열된 코의 피부조직을 봉합하는 응급수술을 했으며, 3월18일 골절된 얼굴뼈 세 군데와 코 오른쪽 피부에 대한 복원 수술을 받았다. 시사저널이 피해자 측을 통해 입수한 이씨의 병원 진단서에는 ‘전자담배가 폭발하며 얼굴 여러 곳에 부상 소견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씨의 얼굴 손상은 즉각 회복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씨는 9월에 복원 수술이 예정돼 있다. 이씨의 아버지는 “다른 부위의 피부조직을 떼어서 복원하는 수술을 할 예정인데, 병원에서도 완벽한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수술 직후인 3월27일 대리인을 통해 LG화학에 피해 상황 접수를 요청했다. LG화학 CS팀에서는 약 1주일 지난 4월4일 메일을 통해 피해 내용과 폭발 배터리 셀의 모델명 등을 보내 달라고 이씨에게 요청했다. 이씨 측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담은 경위서를 보내자 LG화학은 4월10일 준법지원팀을 통해 처리 절차에 대한 안내메일을 보냈다. LG화학 측은 사고 처리 절차를 안내하면서 “국내의 경우에는 PL(제조물책임) 보험 처리에 대한 내부적, 공식적인 처리 Process(절차)가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후 이씨 측과 LG화학은 어떠한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폭발한 배터리를 수거하는 절차도 없었으며, 추후 진행상황에 대한 통보도 없었다. 이에 이씨는 대리인을 교체하고 4월말 LG화학에 추후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씨 측 새 대리인은 “내용증명을 보낸 뒤 5월3일에야 회신이 왔다. 처음에는 ‘배터리를 택배로 보내라’고 말하더라. 너무 어이가 없어 항의했더니 그제야 직접 수거하겠다며 5월 중순에 수거해 갔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LG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학에서는 폭발한 배터리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자 측은 폭발로 인한 부상 사례가 발생했음에도 LG화학의 조치가 매우 미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씨 대리인은 시사저널에 “LG화학은 전자담배에 자사의 배터리가 부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한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폭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사고 처리에 어떠한 적극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미국에선 화상 사고 나 소송 중

LG화학 측은 문제가 된 배터리를 전자담배 제조업체에 판매한 바 없으며, 불법적으로 유통된 배터리가 부주의하게 전자담배에 사용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LG화학 관계자는 “자세한 폭발원인에 대한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문제가 된 배터리 셀은 전자담배 업체에 전혀 판매하지 않고 있는 제품”이라며 “외부에 판매된 배터리 중 불법적으로 전자담배 제조업체 측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폭발한 배터리는 안전한 회로장치가 부착되지 않을 경우 폭발위험이 있기 때문에 취급에 주의하고 있는데, 어떻게 전자담배 제조업체에 흘러들어갔는지는 의문”이라고도 말했다. 

LG화학 측은 배터리 안전과 관련된 조치에 대해 “관련 법규에서는 KC인증을 거치지 않은 단전지를 개인에게 판매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이 법규에 따라 개인 소비자 및 배터리 탈착이 가능한 전자담배 회사에도 납품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단전지 표면에 전자담배 사용금지 관련 등 경고 문구를 부착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도 취급 시 주의사항 및 금지사항, 전자담배 제품 관련 안전경고를 게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LG화학 배터리가 전자담배에 부착돼 폭발한 사례는 해외에서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1월28일(현지 시각) LG화학의 원형 리튬이온 배터리가 장착된 전자담배(e-cigarette)가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한 시민의 주머니에서 폭발하면서 화상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피해자 측은 “다리 위아래로 순간 100도 이상의 화염과 화학물질이 흘러나오며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LG화학이 폭발 위험에 대해 소비자에게 경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코르도바에 거주하는 25세 남성이 전자담배를 피우던 중 폭발해 입술과 왼쪽 뺨에 화상을 입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피해자는 리튬 배터리를 제조한 업체로 LG화학을 지목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