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없으면 검찰 개혁 못 한다’는 게 실화냐?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0 14: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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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장관’ 카드를 강행하는 이유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 질서에 대한 모욕입니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청와대가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온 한국당의 예정된 반응이었다. 현직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기용되는 것이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킬지 충분히 알고 있을 청와대가 이미 인사검증 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은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실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큰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은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조국 법무장관 지명을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조국 수석을 대하는 야당과 청와대의 이 같은 극과 극의 시선을 지켜보면서 이런 두 가지 물음이 생겨난다. 한국당은 왜 그렇게도 조 수석을 싫어하는 것일까. 반대로, 문 대통령은 왜 그렇게도 조 수석을 좋아하는 것일까. 먼저 조 수석에 대한 한국당의 거부감을 분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문 대통령 최측근이고 진보진영의 아이콘이며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당이 싫어할 3박자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조국 법무장관’이 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나 선거 관련 법집행을 편파적으로 할 것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을 법하다. 조 수석이 장관직을 거쳐 내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출마라도 하는 경우에는 부산·경남 지역의 선거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어 있다. 한국당이 조국 법무장관 카드를 ‘선전포고’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6월20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20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개혁 임무수행과 대권주자 만들기

그러면 제1야당의 그 같은 거부감을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은 왜 그렇게도 조 수석을 좋아하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래 고위직 인사를 둘러싸고 부실검증 논란이 계속 따랐다. 그런가 하면 ‘김태우 폭로’로 인해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기강해이 문제도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하지만 야당들의 반복되는 해임 공세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한 번도 조 수석에 대한 책임 문제를 지적한 적이 없었다. 다른 인물 같았으면 몇 번은 책임지고 물러나게 되었을 상황이었지만, 청와대는 ‘조국 책임론’을 일축해 왔다. 오히려 문 대통령에게 조 수석은 야당이 뭐라 한들 지켜주고 큰 역할을 하게 해 주어야 할 인물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믿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계속 같이하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조국 수석을 곁에 두고 임기 끝까지 가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텐데 이 시점에 조국 법무장관 체제를 구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조 수석을 통해 검찰 개혁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의지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의 과제는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상태다.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처리로 입법의 길은 터놓았지만, 향후 국회에서 예상되는 협상과 대치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판이다. 이제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국회 처리가 임박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조 수석이 청와대 민정수석보다는 법무장관 자리에 있는 것이 국회와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낫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5월9일 KBS와의 대담에서 조 수석이 권력기관 개혁의 법제화 과정까지 성공적으로 마쳐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배경으로 거론되는 것이 대권주자설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조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설에 대해 “대선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대통령의 구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조 수석이 법무장관이 되어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뒤 총선에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간다면 가능성이 있는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조 수석 본인이 스스로를 ‘행정부형 인간’이라고 말하며 정치인의 길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그런 그림까지 구상했으리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여권의 잠룡들이 즐비한 환경에서 문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대선후보로 생각한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해 보인다. 다만 문 대통령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정치라는 생물이 결국 조국이라는 인물을 대선에 뛰어들게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또한 문 대통령의 낙점에 달린 것은 아닐 게다.

 

특정 인물 아닌 시스템으로 국정 운영돼야

하지만 검찰 개혁 완수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조 수석이 그 역할의 적임자임을 인정한다 해도, 문 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이 따르는 인사다. 국정을 시스템이 아니라 특정 인물 중심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조 수석이 갖는 장점들을 이해한다 해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직행하는 데 대한 비판은 뼈아픈 대목이 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권재진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직행했을 때 민주당은 “총선을 치를 사정라인에 대통령 최측근을 앉히겠다는 것은 선거 중립을 내팽개치고 여당에 유리하게 판을 짜겠다는 불순한 의도”라고 비판했었다. 마침 총선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다. 검찰총장-법무장관-민정수석 순으로 이어지는 사정라인의 일괄교체는 야당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정라인의 정점에는 야당과 견원지간인 조국 수석이 자리한다. 검찰을 통한 편파적인 수사와 법집행을 우려하는 야당들을 향해 “문재인 정부는 ‘착한 정권’이니 그럴 리 없다. 검찰 독립은 보장될 것”이라며 믿어 달라는 식의 대답은 전근대적인 방법이다. 변덕이 심한 인간의 선의를 믿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시스템과 제도를 통해 검찰 독립을 입증해 나가는 것이 오늘의 시대에 맞는 방법이다. ‘착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 독립을 보장하려 하겠지만,  ‘조국 법무장관’ 아래에 있는 검사들이 과연 주저없이 살아 있는 권력들에게도 법의 칼을 들이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믿는 사람은 끝까지 믿으며 쓰는 문재인식 용병술은 인간적으로는 존경받을 수 있겠지만, 이 광대한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의 선택으로는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조국 법무장관 카드를 지지하며 이런 말을 했다. “검찰 개혁을 바라는 국민이라면 조 수석이 법무장관에 적임자라는 점에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은 조국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검찰 개혁에 소극적이라서 그런 것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한국당의 예정되었던 반대야 정해져 있던 것이겠지만, 더 이상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해 나라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검찰 개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조국 수석밖에 없다는 주장은 과연 실화인가.”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매우 허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아직도 몇몇 영웅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에 갇혀 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심모원려(深謀遠慮)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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