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위기’ 주가는 ‘상승’…거품일까 新시대일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6 14: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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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초저금리’가 만들어낸 ‘그레이트 디커플링’
“리스크 이미 선반영” vs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글로벌 주요국 증시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드디어 ‘1만 고지’에 올라섰다. 6월10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1만20.35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지수가 종가 기준으로 1만 선에 안착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를 무색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경제는 V자형보다 더 빠른 ‘로켓 반등’을 보일 것”이라는 말이 최소한 증시에서는 허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글로벌 증시의 ‘거침없는 하이킥’

우리 주가도 강력한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6월10일 기준(2195.69 마감) 연저점(3월19일 1457.64) 대비 50.6% 상승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기록했던 연중 최고점(2267.25)도 목전에 두고 있다. 연고점 대비 주가 회복률은 세계 주요 20국(G20) 중에서 2위다. 코스닥 지수도 저점 대비 77.1% 상승해 주요국 주가지수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한국도 주가만 놓고 보면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다.

최근의 주가 강세에 대해서 무엇보다 코로나19발(發) 쇼크에 따른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정책금리를 제로로 낮춘 데 이어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풀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인 0.5%까지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연준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7주 동안 1조 달러를 공급했는데, 이번 코로나19 확산 초기 7주 동안에는 2조3000억 달러를 풀었다. 코로나19로 투자처를 잃은 시중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예상과 달리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셈이다. 

실물경제와 주가 간 괴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확대되자 ‘초유의 디커플링(great decoupling)’이 나타났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글로벌 증시는 전혀 딴판으로 ‘거침없이 하이킥’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초유의 디커플링’ 상황을 두고 한쪽에서는 2분기 바닥을 친 세계경제가 3분기부터 본격 회복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반대 측에서는 코로나19라는 불확실성은 아직 그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았고, 그 영향과 강도는 훨씬 더 장기적이고 셀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악의 지표, 이미 주가에 반영”

향후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최근의 글로벌 증시 활황세는 예상되는 악재를 이미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논리는 이렇다. 주가는 경기에 선행한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올 2~3월에 기록적인 급락세를 보였다. 당시 발표됐던 경제지표들은 의외로 충격적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이후 발표된 2분기 경제지표 등은 매우 심각했다. 하지만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는 현재 기준 이미 2~3개월 전에 선반영됐다. 투자자들은 3분기 이후의 경기 회복에 베팅했고, 이런 흐름이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몇 가지 이유에서 흥미롭고 논쟁적이다. 이런 논리라면 이들의 말처럼 3분기부터 경제 지표상 ‘V자형’처럼 뚜렷한 경기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주식시장의 반응은 밋밋할 수도 있다. 이미 투자자들이 이런 기대를 주가에 투영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경기 회복이 있지 않는 이상 주가는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NH투자증권은 3분기에 증시는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본다.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그동안 오른 주가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7~8월 증시가 분기점에 이르러 이후 조정과 함께 변동성 장세에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센터장은 “코스피가 3분기에 내년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까지 당겨와서 2300선 부근까지 오를 수는 있지만 이때가 고점이 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글로벌 경기 회복 시점은 내년 2분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여 일정 부분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다만 유동성의 힘이 워낙 강해 조정의 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센터장은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없다는 전제하에 코스피 지수는 1900~20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주가가 높지 않고 적정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역대급 저금리와 유동성 팽창을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적정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일각에서 지적하는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이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6월10일 기준 코스피의 PER은 25.16배로 지난해 6월 12.32배, 올해 1월 17.56에 비해 크게 올랐다. 그는 “과거 어떤 쇼크로 인해 경기선행지수가 무너졌을 때 PER을 보면 항상 고평가 논란이 있었다”며 “역대급 저금리와 유동성 팽창이 있음을 감안할 때 현재 PER은 오히려 적정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유동성은 엄청난 수준이다.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주축인 미국과 유로존은 코로나 사태 이후 각각 7조600억 달러(약 8472조원), 6조2500억 유로(약 8500조원) 등 총 1경7000조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919조원의 약 9배에 달하는 규모다. 우리도 코로나 사태 이후 350조원 이상의 돈을 풀기로 했다.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여전히 낮다는 분석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보다 낮은 수준”이라면서 “최근 코스피 지수가 급등했지만,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과 초저금리라는 상황을 감안하면 주가는 더 오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PBR은 주가 대비 주당 순자산 비율로, PBR이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위기 경고음 울리는 경제기관들

정반대 목소리도 있다. ‘초유의 디커플링’ 현상은 버블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유동성의 힘만으로 주가 상승이 이어진다면 펀더멘털과의 괴리로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경제기관들은 올해 세계 주요국의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실제 생산·고용 등 경제지표는 나올 때마다 최악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들도 감원에 이어 핵심사업까지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의 터널에 이제 막 진입했다. 코로나 2차 대유행과 미·중 갈등 같은 대내외 불확실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객관적 지표를 보자.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5.2%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직전인 지난 1월 내놓은 전망치보다 무려 7.7%포인트 낮다. 세계은행은 올해 경제 상황을 “세계 2차대전 이후 최악의 불황이자 2009년 금융위기보다 3배가량 가파른 경기 침체”라고 평가했다.  

제일 큰 문제는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6월8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128개월의 경기확장 국면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128개월간의 파티’가 끝났으며, 경기 침체 진입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NBER은 “고용과 생산이 전례 없는 규모로 감소한 게 경기 침체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보통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면 경기 침체로 보는데,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은 -5%(전분기 대비 연율 환산)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두 자릿수로 본다. 이런 관점에선 주가가 이미 최악의 경제지표를 미리 반영했다고 해도 경기 침체는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기에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 2차 확산 가능성이 있는 데다 기업들의 비용절감이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돈이 과도하게 풀리고 저금리가 장기화하면 2001년 엔론 사태나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처럼 대형 금융사기와 기업 도산 등이 일어나면서 증시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 당국도 신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최근 “주가지수 반등 이면에서 벌어지는 실물경제 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단기 과열에 따른 시장 참여자들의 주의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는 증시는 자칫 경제 전반에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경제주체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고 정책 결정에 혼선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투자자들도 섣부른 투자에 나서기보다 기업 실적을 냉정하게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은 금물이다. 추가적인 수익률에 대한 눈높이도 낮출 필요가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증시 격언을 모두가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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