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단체장들 성범죄 왜 계속될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0 08: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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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 석권하며 절대권력 된 민주당의 도덕적 해이와 오만이 낳은 결과

이번에도 또 더불어민주당이다. 과거 민주당이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을 가리켜 ‘성(性)누리당’이라고 야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민주당이 집권당이 되고 176석의 공룡정당이 된 후 ‘더불어만지당’이라는 낯 뜨거운 야유를 듣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유독 민주당 소속 단체장들의 성추문들이 이어지고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다. 어째서 유독 민주당에서만 그런 성범죄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3건의 성범죄 사건이 갖는 공통점은 단체장이라는 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는 사실이다. 정의와 약자와 촛불정신을 말했던 사람들이 권좌에 앉게 되면서 윤리적 긴장이 무장해제된 결과가 이들 사건이다. 여당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범죄 사건들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음은,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대처에서 드러난 집권세력의 젠더 감수성 부재를 통해 확인된다.

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3명씩이나 성범죄로 유고 사태가 빚어졌으면 민주당은 즉각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무릎 꿇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이해찬 대표는 성추행 의혹을 거론하는 기자를 향해 ‘XX자식’이라는 욕설로 대응했다. 고인에 대한 추모에 나선 민주당 정치인들 가운데 장례 기간 동안 피해 여성에 대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전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윤준병 의원은 “고인은 죽음으로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며 미투 조작 의혹까지 제기했다. 보수정당의 성추행 사건 때는 앞장서서 비난하던 당내 여성 의원들도 침묵하다가 여론에 떠밀려 뒤늦게야 사과 입장을 밝혔다. 성폭력 문제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역시 “입장 없다”며 꼼짝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입장을 내놓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7월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7월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진영’만 남고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모두들 고인의 명예에 한 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에는 충직했지만, 고통을 간절히 호소하는 피해 여성의 존재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모습들이었다. ‘촛불정부’의 집권세력은 그렇게 피해 여성이 고통받는 상황을 방조하거나 심지어 2차 가해에 합세하는 모습을 보이고 만 것이다. 어째서 민주당에서 연이어 성범죄 추문이 이어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민주당의 무책임한 모습에 여론이 들끓자 이해찬 대표가 결국 직접 사과를 했지만, 상처받을 대로 받은 국민들로서는 엎드려 절 받기였던 셈이다.

서울시의 모습 또한 다르지 않았다.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반대 청원을 해도 굳이 서울특별시장(葬)을 고집하며 논란과 갈등에 불을 붙이고 피해 여성이 ‘위력’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 것이 서울시였다. 장례는 그렇게 결정해 놓고 성추행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고 검토를 못 했다”며 입을 닫아버렸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성추행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뒤늦게 밝혔지만, 이제까지의 상황만으로도 책임질 일은 많다. 어느 곳보다도 성폭력에 대한 엄정함을 강조하고 젠더특보까지 두고 있는 서울시에서 시장에 의한 성추행이 4년 동안이나 지속되고, 피해 여성의 호소조차도 내부에서 외면당했다는 사실은 서울시 차원의 형사적·행정적 책임이 따라야 함을 말해 준다. 도대체 서울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4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인지, 서울시는 모든 질문에 답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고인의 성추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해 여성을 향한 온갖 조롱과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2차 가해의 야만적 행위가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어느 구석방에 숨어 지내는 이상한 사람들 얘기가 아니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세월호 리본을 달고 사람·약자·정의·배려 같은 말들을 즐겨 쓰던 멀쩡한 사람들이 그 짓을 하고 있다. 2차 가해의 대열에는 진보임을 자칭하는 대학교수들과 현직 여검사도 제일 앞 열에 서 있고, 수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누르며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어떻게든 고인을 방어하려는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여성을 고통의 감옥에 가두는 잔인한 화살이 되고 있다. 강자는 죽어서도 강자이고, 약자는 여전히 약자다. 우리는 집단적 광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진영’만 남고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일까.

가장 정의롭다고, 약자 편에 서겠다고 자처했던 정권이 들어섰고 그들이 청와대·국회·지자체장·지방의회 등 권력이란 권력은 모두 석권했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덧 절대권력이 된 민주당의 도덕적 해이와 오만이 낳은 결과다. 3년여 전 ‘촛불정부’임을 그렇게도 내세웠던 민주당 정권은 이제 ‘고여 있으니 썩은 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터져 나온 광역단체장들의 성범죄 앞에서 민주당은 어떻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 국민의 질타에 대해 집권여당으로서 가장 무겁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민주당 당헌에 명기된 대로 내년에 치러질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도리다. 서울과 부산이 야당에 넘어가면 어떻게 하냐고? 대통령선거에 불리할 텐데 어떻게 하냐고? 가장 무겁고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선택은 정치적 계산을 고려하지 않는다. 

 

2030세대에겐 ‘권력자에 의한 성범죄’일 뿐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기성세대들이 너무 오랫동안 무대를 차지했다. 2030세대에게 이 사건은 ‘서울시장이라는 권력자에 의한 성범죄’일 뿐이다. 그들은 건조하게 사안의 핵심을 말한다. 하지만 고인의 삶을 부정하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동질적 의식을 가진 기성세대는 그것을 한사코 막으려 한다. 그러니 이 상황은 낡은 것을 지키려는 기성세대들의 최후 저항인지 모른다. 그래서 싸움이 이렇게 격렬해진 것이다. 하지만 기우는 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듯이, 낡은 것은 죽었지만 새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아니, 새것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그 또한 낡은 것이었다. 박원순을 기리는 기성세대들은 그 마음을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이제는 무대에서 물러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더 이상 자신들의 역사를 말하며 젊은 세대들을 훈계하고 있기에는 너무도 내로남불 했고 이율배반적이었다. 박원순이라는 개인의 성추행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문제를 대하는 기성세대들의 자기모순적 태도였다. 이제 우리 세대의 신화는 도덕적으로 파산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되었다. 민주화 세대든, 586세대든, 지난 역사가 달아준 훈장을 너무 오래 달고 있었다. 이제 그 훈장을 떼고 세상의 주인공을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것이 삶의, 그리고 역사의 순리이겠다. 어차피 언젠가는 물러가야 할 세대, 더 이상 추하지 않게, 아름답게 물러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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