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가 필요한 손흥민…토트넘에 남을까, 떠날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6 16: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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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출전 실패’, 손흥민은 ‘커리어 하이’…이적설 솔솔

토트넘이 2019~20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 라운드에서 크리스털 팰리스와 1대1로 비기며 6위로 시즌을 마쳤다. 일찌감치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에 실패한 토트넘은 막판 6경기에서 4승 2무를 기록해 가까스로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4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나섰던 토트넘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 결과다. 특히 지난해에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어 5년 만에 유럽 최고의 무대로 가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 개인 손흥민은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EPL에서만 11골 10도움을 기록, 단일 시즌 ‘10골 10도움’을 달성했다. 골과 도움 모두 능한 만능 공격수의 상징인 이 기록은 EPL에서 손흥민 외에 맨시티의 케빈 데브라이너(13골 20도움),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19골 10도움)만이 기록한 성과다. 여러 난관을 뚫고 만든 최고의 시즌이기에 더 빛난다.

시즌 중 감독이 바뀌는 상황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에게 매우 큰 변수지만 무리뉴 감독은 ‘월드클래스’ 손흥민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팀의 주포인 케인이 빠진 상황에서 공격을 이끌었다. 시즌 중 오른팔이 부러지는 큰 부상에도 복귀하자 보란 듯 맹활약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되는 변수 속에도 해병대에서 4주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토트넘의 막판 상승세를 이끌었다.

일부 스타 선수의 경우 소속팀이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실패하면 출전 티켓을 따낸 팀으로 과감하게 이적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무대가 주는 매력은 달콤하다. 챔피언스리그 출전 실패는 토트넘 입장에서도 다음 시즌을 운영하는 데 재정 부담을 준다. 상금 규모 면에서 챔피언스리그는 토너먼트(32강)에 오르면 성적에 따라 최소 1300억원에서 150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반면에 한 수 아래인 유로파리그는 우승을 차지해도 상금이 600억원에 불과하다.

그만큼 같은 클럽대항전이라도 중계권료와 스폰서 수입이 하늘과 땅 차이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혹은 클럽대항전 출전 실패에 따라 스폰서로부터 받는 금액과 옵션 적용이 달라질 정도다. 작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홈구장(토트넘홋스퍼스타디움)의 건설비용으로 이미 1조원 수준의 채무가 있는 토트넘으로서는 챔피언스리그 출전 실패의 여파가 다른 팀들에 비해 유달리 혹독할 수밖에 없다. 

토트넘의 손흥민이 7월19일 레스터시티와의 EPL 경기에서 교체되어 나오며 무리뉴 감독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트넘의 손흥민이 7월19일 레스터시티와의 EPL 경기에서 교체되어 나오며 무리뉴 감독과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흥민이 이적 시장에 나오면 많은 클럽이 탐낼 만

다니엘 레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손흥민, 케인 등 주축 선수를 잡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출전 실패에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익 급감, 이로 인한 재정 압박의 현실은 그 기조와 다른 방향의 전개를 만들 수 있다. 이미 토트넘은 핵심 수비수인 얀 베르통언과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이적료 없이 보냈다. 대형 센터백 보강이 필요하고, 다음 시즌 우승 경쟁을 위해 무리뉴 감독이 요구하는 새로운 선수 보강도 필요하다. 자금 확보를 위해서는 1000억원 이상의 큰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손흥민과 케인 중 한 명을 이적 시장에 내놔야 할 수도 있다. 

베르통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토트넘이 눈여겨보는 선수는 김민재(베이징 궈안)다. 무리뉴 감독이 손흥민과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A대표팀 감독의 평가까지 확인하며 영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토트넘은 베이징이 원하는 230억원 규모의 이적료를 제시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그 밖에 수비형 미드필더 호이비에르(사우샘프턴)의 영입과 케인을 도울 백업 스트라이커, 무리뉴 감독의 전술을 수행할 수준급 풀백 보강 등이 당면 과제다. 올여름 전력 보강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 공교롭게도 손흥민의 시장 가치인 1000억원 내외에 준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각 구단들이 이적 시장에서의 지출을 줄이려는 분위기지만 손흥민이 이적 시장에 나온다면 원하는 팀은 다수다. 실적과 내용 면에서 중앙과 측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만능 공격수인 그는 유럽의 어떤 클럽이든 탐낼 만하다. 실제로 지난 1년간 손흥민과 이적설로 얽힌 클럽은 맨체스터시티·리버풀·레알 마드리드·유벤투스·PSG 등 유럽 내 최고의 팀들이다. 

손흥민에게도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바로 트로피다. 자신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지만 커리어를 채워줄 트로피는 함부르크·레버쿠젠·토트넘을 거치는 동안 단 하나도 없었다. 선배 차범근·박지성의 경우 자신의 능력으로 혹은 동료들과의 조화로 복수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과 가장 대조되는 부분이다. 선수가 후일 평가를 받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우승 트로피이고, 우승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면에서도 전성기를 맞은 손흥민이 트로피를 수집할 수 있는 더 강한 팀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는 데 실패한 손흥민에게 올여름은 자신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팀으로 이적해 자신의 가치를 한층 올릴지, 입지와 신뢰가 확고한 토트넘에 잔류해 팀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의미 있는 우승에 도전할 것인지. 코로나19 여파로 10월까지 연장된 유럽 이적 시장에서 손흥민의 행보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벌써 많은 기대를 낳는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위상 차이는?

유럽축구연맹(UEFA)은 유럽 각 리그 상위권 팀들이 출전하는 대회를 통해 최고의 클럽을 가린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가 바로 UEFA 주관 양대 클럽대항전이다. 같은 클럽대항전이라도 챔피언스리그는 상위, 유로파리그는 하위 대회로 인식된다. 챔피언스리그에는 이른바 빅4 리그(영국 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의 상위 4개 팀이 출전한다. 유로파리그는 FA컵 챔피언과 리그 차순위 3개 팀이 나선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3위로 탈락한 팀이 유로파리그 토너먼트에 합류하는 것만 봐도 두 대회의 수준 차를 알 수 있다. 

총상금 규모도 3배 가까이 차이가 나서 챔피언스리그 출전 실패는 각 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최고의 무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선수들도 챔피언스리그 출전 여부를 이적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해 세계 최고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역시 월드컵이 열리는 해를 제외하면 챔피언스리그의 활약이 수상의 주요 기준이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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