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셜록 홈즈’ 등장하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3 14: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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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 국회 통과…1만5000여 명 일자리 창출 가능한 신(新)직업 시장 열릴 가능성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 화물선에서 국내 민간조사원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항해 도중 발생한 도난 사건에 대한 의뢰였다. 사라진 건 선장실 금고 속 달러 뭉치. 민간조사원에게 의뢰를 맡긴 건 공해상에 떠 있던 외국 배에서 외국인이 벌인 범죄여서 한국 경찰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현장에 나간 민간조사원은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장을 포함한 6개국 선원 22명의 지문을 채취했다. 그리고 3시간여 만에 금고 등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의 지문을 찾아내 사건 해결에 일조했다.

유우종 한국민간조사중앙회 회장(왼쪽)과 요기 다니엘 한국민간조사중앙회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사저널 박정훈
유우종 한국민간조사중앙회 회장(왼쪽)과 요기 다니엘 한국민간조사중앙회 국제조사위원회 위원장 ⓒ시사저널 박정훈

8월5일부터 ‘탐정’ 명칭 사용 가능해져

#한 기업이 복수의 철강사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은 뒤 대금을 ‘먹튀’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 철강사는 16곳, 피해 규모는 5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가해기업 대표가 잠적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부인은 해외로 도피하고, 남편은 강원도의 한 절에서 숨어 지낸다는 소문만 나돌 뿐이었다. 전전긍긍하던 피해기업들은 민간조사원에게 조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가해기업 대표가 소문과 달리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거주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기관은 민간조사원으로부터 이런 정보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한국판 셜록홈즈’가 등장할 수 있게 됐다. 올해 2월 국회에서 탐정 명칭 사용 금지 조항이 삭제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이 통과되면서다. 개정 법안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8월5일부터 시행된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제약이 사라지면서 국내에서도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내에 탐정이라는 직업이 없던 건 아니다. 사용이 불가능했던 ‘탐정’이라는 명칭 대신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 수집이 주요 업무다. 교통사고·보험사기·의료사고 등 조사, 산업스파이 적발, 해외 도피자 추적까지 영역은 다양하다. 때론 형사사건의 수사기관 조사 결과나 민사사건의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기도 한다. 민간조사원은 공권력의 공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공인된 탐정은 아니다. 국내에서 민간조사원으로 활동해 온 이들 대다수는 ‘민간조사(PIA)’라는 민간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다. 민간 협회 9곳에서 민간조사원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범죄학과 범죄심리학, 법학개론, 민간조사학개론 등 4~5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실기 평가와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민간조사원은 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대다수 선진국에선 ‘탐정’이 합법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을 제외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35개국)이 탐정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도 탐정 제도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은 계속 있었다. 2005년 17대 국회에서 공인탐정법이 정식 발의된 뒤 지금까지 총 7차례 발의됐다. 그러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법안이 폐기됐다. 지난 제20대 국회에서는 두 차례 법안이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이처럼 공인탐정법이 그간 통과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법조계의 반발이 있었다. 변호사협회는 탐정업이 활발해질 경우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가 심해지리란 점을 들어 공인탐정법 제정을 반대해 왔다. 또 관리·감독의 권한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 벌인 행자부(경찰)와 법무부(검찰)의 줄다리기도 관련법 제정을 지지부진하게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간조사업 제도화되면 어떤 변화 생길까

이처럼 민간조사업의 법제화는 오랜 기간 지지부진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제도 도입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부가 공인탐정을 ‘신(新)직업’으로 보고 있어서다. 2018년 1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공인탐정은 ‘미래 유망분야의 새로운 직업’ 9가지 중 하나로 꼽혔다. ‘사실 조사를 지원하는 공인탐정제도 도입 추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다. 경찰청이 2017년 4월 실시한 공인탐정제 도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72.3%가 탐정 법제화에 찬성했다.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는 탐정의 역할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한 민간조사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민간조사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높았음에도 법과 제도의 미비로 탐정이 합법적인 직업으로 정착되지 못했다”며 “오히려 법적 제한이 없어 자유업으로 분류되는 심부름센터 등이 불법적인 조사활동을 수행하면서 2차 피해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조사 업계는 탐정업의 긍정적 측면을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먼저 민간조사원이 인력과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이 처리하기 어려운 미제 사건이나 실종 사건 등의 영역까지 대신 조사하는 등 사법기관을 보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법절차에 얽매이지 않아 좀 더 유연하고 전문적이며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제시했다. 업계는 또 지금까지는 개인이 담당해 왔던 민사소송에서의 증거 수집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업계에선 향후 탐정업이 도입될 경우 그 경제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 장현석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 탐정업 도입 시 연간 1조30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에 따르면 탐정 수임료는 교통사고 조사의 경우 300만~400만원, 상표법 위반이나 특허 침해 사건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또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1만5000여 명의 고용 창출 효과도 예상된다. 이처럼 탐정이 향후 새로운 취업 시장으로 주목받으면서 경찰행정학과와 경호학과 등이 있는 대학들은 앞다퉈 탐정학과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동국대는 2018년 법무대학원에 탐정 전공을 신설했는데, 최근 주상용 전 서울청장이 동국대 PIA민간조사(탐정) 최고위과정을 수료하며 탐정 자격증을 취득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신용정보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민간조사원의 역할과 업무 범위 등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식 없는 탐정사무소가 난립해 각종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로선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누구든 탐정사무소 개업이 가능하다.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도 탐정사무소로 간판을 바꿔 달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불법 흥신소를 탐정으로 격상시켜주는 격이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국내 민간조사원에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 화물선에서 항해 중 발생한 도난 사건에 대한 의뢰가 접수돼 조사에 나선 모습 ⓒ유우종 제공
국내 민간조사원에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 화물선에서 항해 중 발생한 도난 사건에 대한 의뢰가 접수돼 조사에 나선 모습 ⓒ유우종 제공

“흥신소를 탐정으로 격상” 우려도

실제 그동안 흥신소나 심부름센터 등에선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활동을 벌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신용정보법은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흥신소와 심부름센터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개인정보 조사다. 법 위반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탐정사무소가 우후죽순 생겨나 경쟁이 심화될 경우 조사에 불법을 동원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선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공인탐정법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가 법으로 탐정 자격 및 권한을 정하고 관리·감독해야 부작용을 방지하고 순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우종 한국민간조사중앙회 회장은 “탐정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이 민간조사원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호주의 경우만 봐도 탐정의 불법행위 적발 시 자격을 박탈하고 보증인 3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규제로 민간조사원들의 불법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탐정 제도 모델은 ‘공인제’와 ‘관리제’

향후 탐정 제도 법제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업계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모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국가가 시행하는 자격시험을 통해 자격(면허)을 가진 사람에게만 탐정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인제 탐정법’이 있다.

미국이 이런 경우다. 연방정부 차원의 민간조사원 제도는 없지만 각 주 정부가 독자적으로 민간조사원 제도를 민간보안산업에 포함시켜 운용하고 있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사 경력이나 3년 이상의 조사보조원 경력이 있으면 탐정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민간조사원에 대한 관리는 주 정부나 경찰, 법무부, 일반 면허기관 등이 맡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자격증을 취득해야 민간조사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영국은 내무부 산하의 독립기관인 보안산업위원회가, 프랑스는 내무부에서 각각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민간조사원이 되기 위해선 정부에서 발급하는 탐정 면허를 취득해야 하며, 이를 위한 훈련학교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또 일정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이 등록(신고)하면 탐정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적절히 관리하는 ‘관리제 탐정법’도 있다. 일본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에서 탐정업법에 따라 신고를 한 사람만 탐정업을 영위할 수 있으며, 신고 없이 영업하는 경우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30만 엔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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