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쟁] 무리한 강공으로 제 발등 찍은 미국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8 10: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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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맞대응 카드로 꺼내든 청두 총영사관 폐쇄, ‘신의 한 수’ 평가
“미·중 ‘총영사관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래 미·중 양국은 ‘전쟁’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2018년 3월부터 시작된 ‘무역전쟁’으로 포문을 열었던 양국은 홍콩 사태로 갈등이 더욱 첨예해졌다. 중국은 미국이 배후에서 홍콩 민주화세력의 반중(反中) 활동을 사주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은 외세의 개입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홍콩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해 왔고, 지난 6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를 전격 통과한 홍콩보안법은 7월부터 시행됐다.

홍콩 사태는 급기야 미·중 양국의 ‘총영사관 전쟁’이라는 새로운 격돌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은 그동안 홍콩에 부여해 왔던 특별지위를 박탈했고, 뒤이어 두 나라의 대립은 상대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강수로 이어졌다. 7월24일 미국이 먼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휴스턴 총영사관)을 폐쇄하자, 사흘 뒤 중국은 곧바로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청두 총영사관)을 폐쇄하는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궁지에 몰아넣었던 미국의 초강경 드라이브가 너무 지나쳤던 것일까. 총영사관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중국 쪽으로 기울면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두 총영사관이 폐쇄되던 날, 중국 SNS에는 ‘린제웨이(林傑偉) 총영사가 떠나기 전 청두와 서남 지역 인민에게 인사하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떠돌았다. 청두 총영사관의 짐 멀리낙스 총영사가 중국인들에게 남긴 작별 인사였다. 린제웨이는 멀리낙스 총영사의 중국 이름이다.

ⓒEPA·AP 연합
ⓒEPA·AP 연합

청두 총영사관 폐쇄로 ‘대반전’의 서막 알려

멀리낙스 총영사는 시종일관 유창한 중국어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는 서두에 “30년 전 처음 중국에 와 쓰촨(四川)사범대학에서 중국예술을 공부하며 중국인과 인연을 맺었다”며 청두와의 인연을 풀어 나갔다. 청두는 쓰촨성의 성도이다. 멀리낙스 총영사는 말미에 “지난 3년 동안 총영사로 일하며 청두는 이미 저와 제 가족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고 감회를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한다는 두보의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이 시는 두보의 대표작인 《춘야희우(春夜喜雨)》다. 두보가 ‘안사의 난’으로 청두에 피난 왔을 때 지었다. 멀리낙스 총영사가 동영상을 찍은 곳은 두보가 머무르던 초당의 대나무 골목길이었다. 인사를 끝내며 멀리낙스 총영사는 “영원히 청두를 잊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동영상은 중국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청두가 고향인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청두방송국의 한 PD도 필자에게 “멀리낙스 총영사가 인연을 앞세워 중국인의 마음을 저격한 마지막 외교 행위”라고 말했다. 사실 동영상은 7월1일 청두영사관 웨이보에 이미 공개됐었다. 이를 누군가 ‘대국의 풍모’라는 부제목을 더해 다시 퍼뜨렸던 것이다.

7월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텍사스대학이 27일 소속 교수와 연구진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 주 전에 연방수사국(FBI)에게 조사받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포함한 미국 대학의 연구를 불법으로 입수하기 위해 연구진과 접촉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FBI가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텍사스대학의 연구진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여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보도는 미국이 휴스턴 총영사관을 폐쇄한 이유를 말해 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휴스턴 총영사관이 “중국의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중심지였다”고 비판했다. 총영사관 폐쇄에 앞서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 등 각종 기업정보를 10여 년 동안 노린 혐의로 중국인 2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움직임에 크게 반발했다. 7월29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미국의 일방적인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에 관한 거짓과 진실’이라는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휴스턴 총영사관을 폐쇄하게 된 책임은 모두 미국에 있다”며 미국이 영사관을 폐쇄하며 내세운 주장 10가지를 반박했다. 코로나19 백신 등 지식재산권을 훔쳤다는 주장에 대해 인민일보는 “미국은 어떠한 관련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은 이미 지식재산권 대국이 됐다”며 “코로나19 백신 기술에서 앞서 나가는 상황에서 미국의 것을 훔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티베트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든 유일한 외국 외교관

중국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적지 않은 해외 언론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고 중국을 비판했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의 각종 지식재산권과 군사기술을 탈취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민일보가 ‘영사관 전쟁’이라고 명명한 미국과 중국의 총영사관 폐쇄전은, 언뜻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기술의 절도를 막아낸 승리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중국이 맞대응 명분으로 삼은 청두 총영사관 폐쇄가 ‘신의 한 수’로 떠오르며, 대반전의 서막을 알렸다는 것이다.

첫째, 미국 정부가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결정을 내린 직후부터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가 미국 내에서 나왔다. 7월23일 CNN의 보도가 대표적이다. 제프 문 전 무역대표부 고위 관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면 실리콘밸리를 관장하는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휴스턴 총영사관이 중국 스파이 활동의 중대한 매개체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없었다”고 밝혔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적 국수주의를 내세워 승리한 경험이 있다”며 “백악관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 ‘중국 때리기’의 일환으로 휴스턴 총영사관을 폐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둘째, 중국의 대미 외교에서 휴스턴 총영사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7월22일 뉴욕타임스는 “휴스턴 총영사관은 중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위한 비자 업무를 주로 맡고 경제무역 교류에 치중해 왔다”고 보도했다. 휴스턴 총영사관에는 약 60명의 외교관과 현지 고용인이 근무해 미국 내 중국 영사관들 중 직원 수가 가장 적다. 중국은 휴스턴 외에 뉴욕·시카고·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등에 총영사관을 두어 왔다.

셋째, 중국이 폐쇄한 청두 총영사관의 숨은 위상과 역할은 엄청났다. 청두 총영사관은 지역적으로 중국 서부에서 유일한 미국 영사관이다. 중국 서부는 경제와 무역은 뒤처지지만, 전략적·군사적 측면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청두 총영사관은 1985년 개관했다. 당시 중국 서부에 영사관을 개설한 국가는 미국이 유일했다. 중국은 외국 총영사관이 새로이 개관할 경우 관할하는 지역을 최대 4개 성으로 한정한다. 당시 청두 총영사관은 관할지로 쓰촨성·윈난(雲南)성·구이저우(貴州)성·티베트(西藏)자치구 등 4곳을 선택했다.

7월26일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현판이 제거되고 있다(왼쪽 사진). 7월24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서 영사관 직원들이 짐을 챙겨 나오고 있다. ⓒEPA 연합
7월26일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현판이 제거되고 있다(왼쪽 사진). 7월24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서 영사관 직원들이 짐을 챙겨 나오고 있다. ⓒEPA 연합

“청두 총영사관 폐쇄한 중국은 앓던 이 빼낸 격”

1997년 중국 정부는 충칭(重慶)을 서부 지역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쓰촨성에서 떼어내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따라서 그 뒤 중국 서남부에 진출한 외국 영사관은 모두 관할지가 충칭·쓰촨·윈난·구이저우로 한정됐다. 충칭이 새로 추가되면서 티베트가 빠진 것이다. 이는 현재 각각 청두 주재와 충칭 주재 총영사관을 둔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관할지는 외교관에게 굉장히 중요한 활동영역이다. 영사관의 외교관은 관할지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두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외교관은 오직 충칭·쓰촨·윈난·구이저우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나 활동에만 참여한다.

티베트를 이미 관할지로 둔 청두 총영사관의 미국 외교관들은 티베트를 방문허가서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외국 외교관이었다. 티베트는 일반 관광객들도 방문허가서 없이는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청두 총영사관의 미국 외교관들은 티베트의 실상을 직접 눈으로 봐왔다. 또한 현지에서 다양한 티베트인들을 만나 정보를 캐왔다. 이런 과정에서 티베트에 광범위한 휴민트(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를 구축했다. 미국이 중국의 휴스턴 총영사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력을 청두 총영사관에 근무시켰던 배경이다. 청두 총영사관에서는 중국인 고용인까지 포함해 최대 200명이 일했다.

청두 총영사관의 규모가 방대했던 또 다른 이유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비롯됐다. 관할지 내 군수기업과 군사시설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7월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베이더우(北斗) 위성항법시스템 구축 및 개통식이 개최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3일, 55번째 위성이 발사되는 영상을 배경으로 베이더우의 개통을 공식 선언했다. 베이더우는 미국의 GPS망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이 2000년부터 구축한 위성항법시스템이다. 베이더우 위성의 대부분은 쓰촨성 시창(西昌)위성발사기지에서 발사됐다. 중국이 간쑤(甘肅)의 주취안(酒泉)기지나 하이난(海南)의 원창(文昌)기지를 제쳐두고 시창기지를 이용한 이유는 간단했다. 시창기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보안성이 뛰어나다. 또한 베이더우 위성을 실어 발사한 창정(長征) 3호 장거리 로켓의 핵심부품을 쓰촨에서 개발하기 때문이다.

쓰촨·충칭·산시(陝西) 등은 1960년대 중반부터 ‘3선 건설’의 주요 대상지였다. 3선 건설은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선제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창한 후방건설 프로젝트였다. 즉 중국을 지역별로 나눠 연해(1선)와 중부(2선)에 있던 군수기업을 서부(3선)로 옮기고 새로이 생산기지를 조성했다. 그로 인해 지금도 중국 국영 군수기업의 본사는 베이징에 있어도 주요 사업장은 서부에 위치해 있다. 중국항공공업그룹·중국항천과기그룹·중국병기장비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공군 스텔스 전투기인 ‘젠(殲·J)-20’은 청두에서 개발되어 시험비행을 진행했다.

국내 정보기관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둘 다 각각 미국 남부의 유일한 중국 영사관(휴스턴 총영사관), 중국 서부의 유일한 미국 영사관(청두 총영사관)이라는 특징과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왜 청두 총영사관에 훨씬 더 많은 인력을 배치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는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제 집 드나들 듯 다니고 현지에 휴민트를 구축했던 청두 총영사관을 이번 기회에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의 보복으로) 폐쇄할 수 있어 마치 오랫동안 앓던 이를 빼낸 듯 시원했을 것이다. 미국은 이제 청두 총영사관을 다시 개관한다 하더라도 티베트는 관할지로 둘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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